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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강명관, 푸른역사, 20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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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강명관, 푸른역사, 2021.)

Dog君 2022. 4. 14. 06:30

 

  16세기 중엽 대구의 사족 유유가 돌연 집을 나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유유가 나타났다. 하지만 유유를 만난 동생 유연은 그가 진짜 유유가 아닌 사칭범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대구부에 고소했다.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 중 유유는 다시 사라졌다. 이에 유유의 아내 백씨는 유유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으며 형의 재산을 노린 동생 유연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유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자백했고, 결국 사형당했다.

 

  그리고 다시 십수년이 지난 후, 또다시 유유가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유유는 진짜 유유임이 확인되었다. 십수년 전 유유를 사칭했던 이는 채응규라는 자로 밝혀졌고, 그는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채응규는 압송 도중 자살했다. 그리고 유유와 유연의 자형인 이제(이지)가 채응규를 사주해 유유 행세를 하게 한 배후로 지목되었다. 이제(이지)는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결백을 주장했고,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흡사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건을 두고 2021년 여름을 전후하여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부산대 한문학과의 강명관과 고려대 역사교육과의 권내현. (강명관은 2021년 8월 29일, 권내현은 2021년 6월 23일.) 두 저자 모두 일단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준다. 그런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글을 썼다는 건데, 소속된 분과학문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연구상황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알았겠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여진 것이니 독자 입장에서는 둘을 비교하면서 읽는 맛이 쏠쏠할 것이 분명하잖은가! (물론 서로 카운터를 내지르는 맛은 덜하지만...) 이런 꿀잼조합을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두 책을 모두 읽었다. 첫번째는 강명관이 쓴 가짜 남편 만들기.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강명관과 권내현의 접근법은 약간 차이가 있다. 우선 강명관은 주어진 사료를 치밀하게 파고드는 쪽을 택했다.

 

  유유 가출 사건은 이미 당대에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언급한 저술이 꽤 여럿 남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항복의 '유연전'과 권득기의 '이생송원록'이다. 강명관은 두 저술의 생산 경위부터 치밀하게 따져들어서 두 텍스트와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사건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이생송원록'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싣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이생송원록'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사건의 전체적인 배후로 (유유의 아내인) 백씨 부인을 지목한 것이나 그 과정에서 제시한 근거 등은 사실상 이생송원록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책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이 사건의 재구성에 있다고 한다면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사건의 배후로 누구를 지목하느냐일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이생송원록과 거의 같은 입장을 택한 것이다. 강명관의 이러한 결론은 유유 사건에 대한 당대의 일반적인 이해, 즉 이제를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강명관의 최종 목표가 추리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건의 배후로 백씨 부인을 지목하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의 사법제도가 그만큼 허술했다는 것이다. 유유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유의 아내인 백씨 부인을 조사해야 했다. 더욱이 강명관처럼 백씨 부인이 이 사건에 매우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한다면 백씨 부인에 대한 조사야말로 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이 어느 순간 '형의 재산을 노린 동생이 형을 살해한 사건' 혹은 '처가의 재산을 탐한 사위가 꾸민 모략' 등 패륜사건으로 프레임이 전환되면서 형사사법의 중요한 기준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기괴한 상황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유유가 채응규를 대구부로 넘긴 것은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겠으나, 유유의 아내인 백씨를 배제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실수일 수 있었다. 백씨는 유유의 아내였으니 유유(채응규)의 진짜·가짜를 판정할 중요한 당사자였다. 유연이 백씨에게 알리지 않고 채응규를 성급하게 대구부로 넘긴 것은 가짜라는 판단이 들었음과 동시에 분노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백씨에게 알리지 않은 데에는 유연의 의도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가짜라고 확신하는 채응규를 만약 백씨가 진짜라고 한다면 유연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씨는 이미 해주를 다녀온 종들이 두 번이나 채응규가 유유가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연을 압박해 서울로 가게 하지 않았던가. 또 유연이 채응규(=유유)로부터 온 편지를 보자고 하자, 잃어버렸다고 둘러대지 않았던가. (91쪽.)

 

  가능성은 단 한 가지다. 채응규가 첫날밤 이야기를 자신 있게 증거로 제출했던 것은, 그리고 백씨가 그 증거가 진실이라고 확인해주었던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공모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채응규와 백씨 사이에 채응규가 가짜로 몰릴 경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첫날밤의 월경과 '검은 점'을 증거로 내세우기로 이미 약속한 바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백씨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렵다. 백씨가 정말 채응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랐다면, 그는 당연히 관정으로 가서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이미 채응규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채응규과의 공모 외에는 다른 원인을 생각할 수 없다. 채응규가 서울에 올라와 석 달 동안 머물렀을 때 그 공모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103~107쪽.)

 

  가출한 남편이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돌아온다고 해도 정상적인 부부로서의 삶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남편이 죽은 것이 아니므로 재혼도 불가능하다. 이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정장자의 지위를 대리하고 있는 것은 유연이다. 유연은 앞으로 형망제급의 법과 관행에 의해 적장자의 지위는 물론 유유의 재산까지 차지할 것이다. 이것이 백씨가 처한 상황이었다. 즉 의지할 데 없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씨의 경우, 자신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채응규와 공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112쪽.)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형사사법의 기준은 왜 지켜지지 못했을까. 여기서 두 번째 결론이 나온다. 강명관은 책 초두에서 유유의 성적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우 흔치 않은 어떤 것이었으리라고, 매우 긴 분량을 할애하여 추론한다. 그런데 그러한 유유의 정체성이 만약 백씨 부인의 입에서 나올 경우 이는 사대부 집단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당대의 젠더 질서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에 백씨 부인을 굳이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을 벗어나는, 이면異面에 숨겨진 조선 사회의 진면목이라는 것이고.

 

  (...) 유유는 여성성이 두드러졌고, 그것이 불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방지와 임성구지가 요사한 괴물로 인식되었던 것처럼 유예원은 아들의 과도한 여성성을 납득할 수 없는 비정상성으로 낙인 찍었던 것은 아닐까? (...)
  과도한 여성성, 곧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자신의 비밀이 아내는 물론 아버지에게까지 알려지자, 유유는 집을 뛰쳐나가 종적을 감추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대를 이을 장자가 온전한 남성이 아니고 그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 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아내와 갈등 끝에 집을 뛰쳐나갔다는 사실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그것이 유씨 가문에 불명예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유예원과 백씨 역시 유유의 가출 이유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 (37쪽.)

 

  유유의 상태가 정확하게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관계가 불가능했거나 성관계를 기피했거나 간에 그는 백씨와 성관계가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그의 과도한 생물학적 여성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과도한 여성성을 갖는 남성, 달리 말해 남성과 여성이 겹쳐 있는 사람은 그 시대에는, 앞서 예거한 사방지와 임성구지의 경우처럼 일종의 '괴물'로 인식되었다. (...) 남편이 성행위가 불가능한 불구자이자 괴물이라는 사실이 아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남성사족들은 회피하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유유와 같은 경우 아내가 털어놓는 것이 허용된다면, 사족 가문의 모든 불임에 대해 남성이 절반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백씨를 조사하거나, 채응규과의 관계를 추궁하지 못하는 내밀한 사정이었을 것이다. (187쪽.)

 

  백씨가 유연을 고소한 시점으로부터 투옥, 현풍으로의 이감, 서울 의금부로의 이관, 삼성추국 등을 거쳐 유연이 처형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0일이었다. 사건이 굉장히 조급하게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왜 유연을 처형하는 데 이렇게도 조급했던 것인가.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의 성격이 바뀐 것에 주목해보자. 고소 이전 대구부에서는 채응규가 진짜 유유인지 아닌지를 가리고 있었다. 곧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은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사족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근거인 유교적 가부장제, 나아가 종법적 질서를 근저에서 파괴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족사회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박계현이 대사간에 임명되자 즉시 유연의 체포와 처벌을 요청했던 것은, 바로 그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아우가 형의 자리를 빼앗아 재물을 독차지하려고 한 것' 곧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차지하려 한 것을 사건의 본질로 보았다. 박계현이 사건의 본질적 성격을 '유교적 가부장제'와 '종법적 질서'의 파괴로 정의하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의 제기는 필연적으로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한 자에게 동조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1579년 사건의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유유는 살아 있었고 채응규가 사기극을 벌인 것이 확인되었다. 유연은 종법적 질서를 파괴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사법장치의 모순과 그 집행 과정의 비합리성·잔혹성이 여지 없이 드러났다. 당연히 문제가 제기되었다. 유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야만 하였다. 사법장치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삼성추국의 위관과 추관의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없었다. (...)
  실패한 사법장치가 유연의 죽음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면, 아니 질 수 없었다면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려는 노력은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었다. (...) 1564년 정확한 조사를 회피하고 유연을 악인으로 몰아 사건을 간단히 해결했듯, 국가의 사법 시스템은 1579년에도 조사의 범위를 좁히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곧 1564년에 유연을 악인으로 만들어 사건을 성급하게 덮으려 했던 것처럼 1579년에는 이제를 악인으로 만들어 동일한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
  1579년에도 국가의 사법시스템이 오작동한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자신들의 오류를 덮고자 해서였던가. 그것은 혹 백씨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백씨가 채응규과 성관계를 가졌던 사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음에도 1579년에 백씨를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없었다는 것,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백씨야말로 죽은 채응규와 더불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백씨를 의심할 만한 정황 증거는 차고 넘쳤다. (...)
  왜 백씨를 조사하지 않으려 했을까? (...) 만약 채응규와 백씨의 공모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백씨를 추궁할 경우, 사건은 성性의 문제로 비약할 수 있었다.
  백씨의 입에서 유유가 성불구자인 것이 그의 가출 동기였음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었다. 그것은 '남성이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성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것이었다. (...) 여성에 대한 남성권력의 일방적 관철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에서 후사를 얻을 수 없는 남성의 불임, 곧 남성의 성적 무능력은 은폐되어야 마땅한 것이었고 언어화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그것은 여성의 입으로 나와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218~224쪽.)

 

  1564년 유연과 유연의 노비였던 김석과 몽합의 사형, 1579년 채응규의 자살, 춘수의 사형, 이제의 고문서로 모두 6명이 죽었다. 그러나 다시 살펴도 반드시 죽어야만 할 정도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죽지 않아야 될 6명이 죽은 것은 조선의 사법절차가 갖는 모순에 있었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엄밀하게 조사하는 합리적 시스템은 물론 그런 의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
  1564년(명종 19)과 1579년(선조 12) 사이에 조정에는 권력의 교체가 있었다. 과거 네 차례의 사화로 진출과 패퇴를 반복하던 사림이 정치권력을 온전히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퇴계와 남명, 율곡이 있었다. 그들은 도덕정치를 표방했고 주자학 텍스트를 철저히 읽으면서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표면적으로 매끈한 시대였다. 하지만 그 매끈한 시대의 이면에는 온갖 인간들의 온갖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로서의 괴로움으로 집을 떠난 자, 적장자에게서 후손을 보지 못해 절망하는 자, 사기극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려는 자, 성불구의 남편을 대신할 가짜 남편을 만드는 자, 형수의 무고로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었다. 이것이 16세기 후반 '매끈한' 조선 사회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었다. (242~245쪽.)

 

  이상과 같은 강명관의 이야기는 일단 이 자체로 읽는 재미가 있다. 사료를 치밀하게 독해하여 행간에 숨은 의미를 끄집어내고, 이를 통해 미스터리와도 같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재미가 있다. 글 재미있게 쓰기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저자니까 일단 그 부분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역사학에 발을 담은 입장에서 말을 좀 보태자면... 같은 자료를 나에게 주었다면 이렇게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권내현처럼 쓸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이 책에는 사실 시대적 맥락과 배경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선의 사법제도, 그리고 유유의 성적 정체성과 그것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라고 한다면, 이 사건이 반드시 14세기 중후반에만 일어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15세기나 16세기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심지어 유유의 성적 정체성만 따진다면 2022년 지금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작은 사건이라도 그것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과 맥락 위에서 일어났는지 혹은 그것이 시대적 배경 및 맥락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밝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역사학의 서술방식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든다.

 

  두 번째는 유유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저자의 추론이다. 이건 사실 내가 이 책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유유의 정체성에 대한 추론이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감하다는 느낌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유의 정체성 문제는 이 책의 최종 결론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유유의 정체성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추측이 좀 과도하지 않나 싶다. 당시 사법제도가 오작동했던 이유가 유유의 정체성이 백씨 부인의 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설명하면 납득이 어려운 것이, 이 말이 맞으려면 당시의 수사관들이 유유의 정체성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유유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것은 아버지 유예원과 아내 백씨 부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유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시점에 유예원은 사망했고 백씨 부인은 정식으로 조사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진짜 유유는 가출로부터 20년 뒤에나 등장했고. 이런 상황에서 당시 수사관들이 유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확히 알았을 거라는 걸까.

 

  이걸 설명하려 우리는 또다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수사관들이 매우 한정된 증거만을 가지고 유유와 백씨 부인 사이의 문제가 단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난임 정도가 아니라 사회의 젠더 질서를 뒤흔들 정도의 정체성 문제라는 점을 알아챌 정도의 셜록 홈즈, 김전일, 코난급 명탐정이었거나 혹은 유유의 첫번째 귀향 단계에서 이미 백씨 부인과 수사관이 매우 은밀한 정보까지 주고받는 사이였어야 한다. 글타. 가정에 가정, 추론에 추론이 계속 더해져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이걸 완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물론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보통의 독자인 내 입장에서의 느낌일 뿐 이것으로 이 책의 의미와 재미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사실 유유의 귀향에 관해서는 사료가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사료를 치밀하게 독해하여 행간의 의미를 추론하는 강명관의 서술 전략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읽는 재미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식의 치밀한 추론은 이미 그 자체로 재미있는 과정이다. 자칫 건조하게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것에 빠지기 쉬운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이런 전략은 독자를 사로잡는데 있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더욱이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 덕분에 그 재미가 몇 배로 더해진 느낌이다. 어릴 때 읽었던 추리소설의 재미가 새삼 떠오르는, 즐거운 독서였다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렵겠다.

 

교정. 1판 2쇄
156쪽 중간제목 : 능치처사 -> 능지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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