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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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추적단 불꽃, 이숲, 2020.)

Dog君 2022. 4. 20. 20:11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슬슬 혀가 꼬일 무렵 자리는 파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건지 버스와 지하철은 이미 끊겼기에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술이 꽤 취했는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집 근처에 도착했다. 찬바람이라도 좀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 집에서 좀 못미친 곳에 택시를 세우고 어둑한 새벽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집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내 어떤 지인은 자취방을 옮길 때마다 비싼 보증금과 불리한 주거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로변, 아니면 최소한 가로등이 많은 집을 택한다. 또 어떤 지인은 절대로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지 않는다. 또다른 어떤 지인은 대중교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이 ‘여성’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거개의 여성들이 저런 일상 속에서 ‘일상적으로’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나는 한참을 살아오는 내내 몰랐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오랜동안의 내 일상이 대체로 그러했다.

 

  내가 무던하게 느끼는 그 ‘일상’이라는 것이, 실은 말도 안 되는 젠더의식에 기초하여 축조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나 역시도 일상적으로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따라서 성폭력에 맞서는 싸움은 바로 그 ‘일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내가 안온하게 누리는 그 ‘일상’과, 성폭력의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그 ‘일상’이, 사실 다 같은 '일상'이라는 사실. 그래서 ‘성폭력’에 대한 성찰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는 것.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모두 마친 탓에 꽤 오랫동안 캠퍼스 안에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후배들과 보낸 시간이 길었다. 대학이라는 곳이 좀 재미있는게, 불과 1, 2년 밖에 안 되는 경험/나이 차이 만으로도 꽤 튼튼한 수직관계가 만들어진다. 가진 거 쥐뿔 없어도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권력과 위엄을 누릴 수 있는 곳이 학교다. 4학년까지 다 합해도 100명 남짓 되는 작은 학과라서 그런 경향은 훨씬 더 심했는데, 대체로 그런 관계에는 ‘과 생활’이라거나 '끈끈한 인간관계'라거나 하는 표현이 덧씌워지곤 했다.

 

  사실, 후배들과의 자리를 꽤나 즐겼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참 부끄럽지만) 그 몇 년의 경험/나이 차이에서 생겨나는 권위에 도취되었던 것 같다. 그런 적 없었다고 떳떳하게 부인할 수가 없다. 언제 생각해도, 매우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범했을지도 모르는 폭력들이, 모르긴 몰라도 꽤 많을 것이다. 그게 폭력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저지른 폭력이 얼마나 많을까. 무심코 던진 말들과 술에 취해 했던 일들,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 나누던 음담들까지, 누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 일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저지른 폭력이 얼마나 많을까. 심지어는, 여태까지도 그걸 모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SNS와 뉴스에서 성폭력 이야기들을 보고 들을 때마다 심장 아래쪽 어딘가를 쿡쿡 찔리는 것만 같다.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는 그저 내가 그 방에 들어있지 않았다 뿐이지, N번방이 태어날 수 있는 토양에 거름을 뿌리고 있던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적잖이 불편했다. 저건 결국 내 얘기니까. 내가 저질러왔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 때문에 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냉큼 사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못 읽고 있다가 추적단 불꽃 중 한 사람이 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계기가 있을까 싶어서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조심성과 신중함이다. N번방 류의 강력범죄를 다루는 글은 그 범죄 자체를 잔인성을 드러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그저 선정적인 황색잡지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노출되고,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으로 자기 정의감을 채우기에 급급한 이들의 목소리만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은 범죄를 단호하게 고발하되 그것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하면서도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2차 피해를 막으려고 여러모로 고심한다.

 

  종종 (어떤) 페미니즘은 사회의 모든 모순을 섹스와 젠더에 대응시킨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문제제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어떤) 페미니즘에 대한 (어떤) 남성들의 목소리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추적단 불꽃의 마음이 이렇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이라면,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도 분명 사려깊을 것이라 믿는다.

 

  텔레그램에는 N번방 말고도 성희롱과 강간 모의, 지인능욕 등 각종 성범죄가 판치는 대화방이 너무나 많았다. 대체 어떤 시태를 어디까지 기사화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고담방에 모인 가해자들은 종종 N번방에서 벌어진 일이 비현실적이라 영상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면서 N번방에서 일어난 일은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내용이므로 국내 언론은 믿지 않을 테고, 따라서 기사화될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마음을 놓았다. 그들은 이 일이 잔인한 '성착취 사건'임을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안심했다. (...) (27쪽.)

 

  7월 말, 공모전 제출 마감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공모전을 통해 N번방 기사를 발표하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까 싶어 염려되었다. 기사가 나갔어도 그대로 묻힌다면, 텔레그램 N번방을 홍보해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사화가 조심스러웠고 두려웠다. (...)
  국민일보 박 선배는 경찰이 협조한다면 조심스럽게 공론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차 피해를 우려하면서도 '피해자가 없는 사건은 없다'며 기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박 선배의 조언 이후, 며칠간의 고민 끝에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보도해야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도 이후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두려워 눈앞의 1차 가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한 달간 지켜본 끔찍한 '가해자 연대'를 하루라도 빨리 해체시켜야만 했다. 법의 사각지대에 무방비 상태로 버려진 피해자를 보호하고, 껍질 속에 꽁꽁 숨은 소라게처럼 텔레그램에서 살고 있는 가해자를 엄벌하기 위해 이 사건에 관한 기사를 써내려갔다. (28~29쪽.)

 

  며칠 후, 학교 후배의 사진이 신상 정보와 함께 올라왔다. 후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학교에서 후배를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차마 그런 이야기를 전할 수 없었다. 범인을 잡기엔 정보가 너무 미약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후배를 보면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피해자가 계속 늘나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다. 막을 수 있는 만큼이라도 막아야 했다. 먼저 SNS에서 해시태그 기능을 이용해 특정 직업군을 검색했다. 지인능욕방에 올라온 사진과 해시태그 기능으로 찾은 사진들알 하나하나 대조해 특히 피해가 심한 이들을 찾아 나섰다. 피해자를 찾아도 이야기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SNS 개인 메신저를 통해 우리를 소개하고 피해 사실을 전했다. 당신의 사진이 수천 명의 이용자가 있는 방에서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전해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질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알려야 했다.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했다. (...)
  '잡지도 못하는 가해자, 오히려 모르는 게 나을 일을 공연히 알려서 피해자들만 괴롭게 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나을까.' 고민했다. (...) (46~47쪽.)

 

  '기자님들 제발 N번방 관련 기사 써주세요.' '그렇지만 기살르 자극적으로 쓰면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우리는 언론에 이 두 가지를 함께 주문하고 호소했다. 그런데 박사가 검거된 후 언론은 가해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를 악마로 만들어 '가해자 서사'를 보도하는 데 혈안이 된 듯 했다. 이런 언론의 태도에 절망했다. 피해자의 안위는 뒷전이었다. (...) (74쪽.)

 

  사실 그전에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사회성 없고 덜 떨어진 애들 집합소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머러스하고 사교성도 좋은 오빠가 텔레그램 방에 들어오다니, 충격이었다. 배신감마저 느꼈다. 가해자는 가상공간뿐만 아니라 현실 공간에도, 내 주변에도 도사리고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이미 사진 찍히지 않았을까? 공포는 갈수록 커져갔지만, 끝까지 파헤치고 말겠다는 결심 또한 이상하리만큼 커져갔다. (181쪽.)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이야 잘 알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었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매번 얼굴을 숨겨야 하니 답답했다. 오히려 얼굴을 드러내고 나며 활동 제약이 덜할 테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지난 3월부터 수십 번 고민해봤지만, 답은 늘 '안 돼'였다. 우리가 기사를 익명으로 내보낸 이유가 떠올랐다. 그때는 '합성' 능욕을 걱정했지만, 추적단 불꽃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지금은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 걱정스럽다. 지금 당장은 위험하지 않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순 없다.
  혹시 내가 이미 불법촬영물에 노출돼 있으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찍힌 영상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호아인데, 신상이 공개되면 "이거 불꽃 나오는 야동"이라며 '인기작'이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
  내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일 역시 두렵다. 동창이나 친구, 이웃 중에 가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정말이지 나를 참혹하게 한다. 디지털 성범죄 유형 중 하나인 '지인능욕'의 무서운 점은 분명 지인이 범인인데도 잡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세상을 믿기 어려운데, 지인마저 의심해야 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다. 사건이 다 해결되고 내가 안심하고 얼굴을 드러내도 되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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