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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시대 (강성호, 나무연필,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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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시대 (강성호, 나무연필, 2022.)

Dog君 2022. 12. 19. 10:01

  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서점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며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죠. (그러고 보면 도서관도 같은 즐거움을 주는군요 ㅋ) 요즘은 오프라인 서점을 못가지만 탕수육도 서점 참 좋아합니다. 예전에 (20년도 더 전인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갔던 곳 중 하나가 종로서적이었고, 어디 여행을 가면 박물관이니 절터니 하는 곳에는 시큰둥해도 그 동네의 작은 서점은 가능한 시간을 내서 찾아가봅니다.

 

  서점이 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때 탕수육은 종종 아래의 구절을 인용합니다.

 

  몇 달 전 나는 내가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텔레비전에 한방 먹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의 권정생 선생이다. 몇 달 전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선생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선정하고 녹색평론사에 연락했다. "최소 20만부를 준비하고, 표지엔 '느낌표 선정도서'라고 박아주고, 어쩌고..." 그러나 녹색평론사에선 "책이 그렇게 팔리길 바라지 않는다며" 그 일을 거부했다. 텔레비전은 다시 권정생 선생에게 연락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텔레비전이 없애려는 거냐." (김규항, 「텔레비전」, 2003.)

 

  물론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권정생 선생까지 인용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ㅎㅎ;;

 

  그런데 권정생 선생이 말씀하신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이 지금의 우리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상업적인 대량출판이 시작되고 이를 다루는 서점書店이 생겨난 근대 이후부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가 마음대로 고르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런 즐거움이 널리 퍼지게 되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근대의 책읽기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서점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고, 책만을 사고 팔기 위해 특화된 공간인 서점 말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세책점貰冊店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근대의 서점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죠.) 강성호가 쓴 『서점의 시대』는 바로 그 서점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입니다. 저자 강성호는 전작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에서 독서가를 살펴보더니 이번에는 서점이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서점도 좋아하기 마련이니 (싫어할리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플로우네요 ㅎㅎㅎ

 

  이번 책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뭔가 대단한 사고의 전환이나 숨겨진 진실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래 전 나와 비슷하게 책덕후였던 이들의 이야기를 착실히 그러모아서 우리에게 차분히 들려주는 것에 집중하죠. 전문적인 도서상이 등장하는 과정과 그들이 대를 이어 서점을 꾸려가는 이야기,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염없이 책이라도 읽으려고 서점에 모여들었던 식민지 지식인들의 이야기들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읽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입니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부분도 있습니다. 서가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고르는 행위는 내가 원하는 지식을 내가 원하는 때에 습득할 수 있는 근대인의 이상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더 나아가 폐가식으로 운영된 학교 도서관 대신 학교 앞 사회과학서점에서 '불온서적'을 돌려읽은 대학생들의 이야기에까지 이르면, 어쩐지 독자까지 덩달아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정색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저자도 고백하는 것처럼, 서점에 대한 자료가 아주 많지는 않은 상황에서 주장을 섣불리 내세우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그런 의미심장함과 비장함 때문에라도 이 책은 우리에게 근대의 독서문화에 대해 여러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관해서 지금까지는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03.)가 흔히 거론되었습니다만, 강성호의 『서점의 시대』도 이제 그 옆에 당당히 자기자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제도권 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1980년대 대학 도서관은 폐가식으로 운영했기에 이용자가 직접 책을 골라 볼 수 없었을뿐더러 신간 구입이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권력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1980년대는 독서 인구가 급격히 늘고 출판시장이 성장하는 시대였다. 이런 사오항이 맞물리면서 수요가 늘어나자 공급이 필요해졌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사회과학서점이다. 1980년대 대학문화에서 사회과학서점은 도서관이자 공부방이었고,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이자 교문이 봉쇄됐을 때 시간을 때우던 곳이었다.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하나의 저항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그야말로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사회과학서점을 들락날락한 시대였다. (69쪽.)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1937년에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를 자진 폐간할 수밖에 없었던 여운형이 늘 찾아간 곳은 서점이었다.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서점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창구이자 잠시나마 근심거리를 잊을 수 있는 장소였던 것 같다. 상하이의 혁명가, 언론과 체육계의 권위자, 중도좌파 정치인, 비운의 영웅 등등 여운형을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그런 그가 마루젠에서 반나절 동안 공짜로 책을 읽는 '얌체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거의 매일 출근하듯이 말이다. 기자에게 자신을 만나고 싶거든 고민할 것 없이 마루젠으로 오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154쪽.)

 

교정.

83쪽 밑에서 8줄 : 이마니스 류는 -> 이마니시 류는

169쪽 5줄 : 박인환를 -> 박인환을
172쪽 3줄 : 시poèsie -> 시Poèsie

203쪽 두번째 문단 전체 : 이병도와 장욱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순경을 설명하고 있다. 문단에서 반복적으로 딸과 아내로서의 이순경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이병도의 딸이라는 사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장욱진이 남편이라는 사실은 205쪽에 나온다.)

206쪽 밑에서 5줄 : 숍인숍Shop in Shop -> 숍인숍shop in shop
206쪽 밑에서 5줄 : 숍플러스숍Shop plus Shop -> 숍플러스숍shop plus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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