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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탄생 (김희교, 보리,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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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탄생 (김희교, 보리, 2022.)

Dog君 2023. 8. 6. 12:39

 

  문재인 前 대통령의 추천으로 유명세를 탄 책입니다. 저도 그 때문에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으려고 보니 약간 놀랐습니다. 일단 너무 두꺼웠고(600쪽 넘...) '짱깨주의'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의외였습니다. 그냥 '혐중정서'나 '반중의식' 정도로 해도 될텐데 이렇게 선정적인 표현을 제목에까지 집어넣었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짱깨주의'는 단지 선정적이기 때문에 고른 것이 아니라 저자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정교하게 반영된 결과입니다. 저자는 '혐중정서'나 '반중의식'으로는 작금의 對중국 정서를 온전히 포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보기에 지금의 對중국 정서를 단지 특정 국가나 민족에 대한 반대정서 정도가 아니라 더 큰 맥락 속에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즉, 짱깨주의는 중국에 대한 거부감만이 아니라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신냉전주의적 동아시아 질서 재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짱깨주의에 맞서는 것은 기실 우리 사회의 차별주의에 맞서는 일인 동시에 신냉전주의에 맞서 다자주의적 외교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책의 문제의식에는 적극 공감합니다. 한참 전에 '동아시아론'이 학계를 풍미할 적에는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으면서 제법이나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지요. 작금의 중국 정치에 대해서도, 그것을 단순히 '공산당 독재'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중국의 정치적 방식이 우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일단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재적 접근? ㅋ) 참고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폄훼하거나 희화화하는 짤들을 돌려보며 키득대는 것도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편견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퇴보시킬 거라고도 생각하구요.

 

  동의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꽤 있습니다. 이 책은 짱깨주의가 신냉전주의적 동아시아 질서 재편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혐중정서를 다룬 다른 글과 이 책이 변별력을 확보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일텐데요, 이게 어느 지점에서는 좀 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이 책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다루면서, 그에 연대를 표하는 것이야 좋지만 이것이 중국식 정치에 대한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되고,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진압)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신냉전주의적인 맥락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시위를 통해 중국 정부를 압박하고 동아시아 정치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책은 홍콩의 국내정치라는 층위와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라는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하는데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이 책은 사실상 국제정치의 층위에 더 무게중심을 둡니다.

 

  저는 여기서 일단 반발심이 크게 듭니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층위를 구분하는 것까지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층위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냉전주의적 맥락에 대해 경계심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정치적 퇴행와 실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사실 이런 논리는 한국의 정치권 일부 혹은 진보운동 진영 일부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일단 수구세력의 집권부터 막아야하니 노동과 계급 같은 의제는 잠시 뒤로 밀어두자는 논리(파도가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그랬던가)나 계급과 민족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니 젠더나 장애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논리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저자 스스로의 주장과도 충돌하는 듯 보입니다. 저자는 '지식의 지정학' 개념을 빌어와서, 짱깨주의에 대한 성찰이 단지 중국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돌아보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중국의 정치적 퇴보와 실책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층위를 구분하고 선후를 따지면서 중국에 대한 냉정함을 뒤로 미뤄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민주주의적 원칙을 세운다는 측면에서라도 훨씬 더 견실하게 중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날카로움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ps. 사실 제 글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섬세한 서평은 손성욱 선생님의 서평입니다. 아래 주소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간단한 회원가입과 로그인 절차가 있습니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1465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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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을 봉쇄하려고 키신저 시스템을 파기하는 계획은 2021년 1월 기밀해제 된 미국 국가안정보장회의(NSC)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체계(U.S Strategic Framework for Indo-Pacific)'라는 문서에 잘 드러나 있다. 2017 국가안보전략(NSS)을 구현하기 위한 트럼프행정부의 포괄적인 전략 지침인 이 문서는 트럼프행정부 시기 일어난 인도와 중국 간의 분쟁, 대만의 독립 추진, 중국기업에 대한 제재 들이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 아래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가 주장하듯이 '중국의 문제'가 미국의 제대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중국봉쇄 전략이 미중 충돌을 가져왔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는 문서이다. 미국의 계획은 대체로 그대로 시행되었다.
  트럼프행정부의 중국봉쇄 정책은 키신저 시스템의 핵심 축인 '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대만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홍콩의 독립을 부추겼다. 키신저에 따르면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이 미중수교를 체결하는 첫번째 요구였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것은 곧 키신저 시스템 이전으로 돌아가겟다는 가장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
  트럼프행정부의 중국봉쇄 정책은 키신저체제를 버리고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신냉전 전략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신냉전 전략은 1) 다자주의에 입각한 협상이나 대화 대신 미국의 힘을 군사주의 방식으로 사용하여 미국 위주의 일방주의를 강화하고 2) 중국의 목소리가 커진 자유무역 질서인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대신에 미국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고 3) 동맹국에게 주었던 수교를 포함한 국가 간 교류의 자율성을 거두어들이고 동맹국들에게 반중국동맹을 강제해 미국 중심의 새로운 적대 진영 구축을 근간으로 삼았다.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트럼프행정부가 돌발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중국 경제가 부상하는 1990년대부터 미국의 조야는 '중국 위협론'을 내세웠다. (...) 학계와 정계에서 산발적으로 확산되던 '중국 위협론'은 1995년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오바마행정부 2기부터 '아시아회귀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정책화하기 시작했다.
  오바마정부의 아시아회귀 정책은 키신저 협약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중국의 강력한 부상으로 등장했다. 중국은 키신저 시스템을 통해 세계경제로 편입하고, 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핵심적 승리자"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도 키신저 시스템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힘을 키웠다. 미국이 구축한 키신저 시스템이 미국에게 트로이의 목마가 되고 만 것이다. (...) (55~57쪽.)

 

  노무현정부의 탈식민주의적 균형외교 노선은 한국의 보수주의자에게는 체제적 도전이었다. 동북공정 사태는 무너져 내리는 그들의 세계를 탈환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였다. 동북공정 사태를 계기로 짱깨라는 개념은 중국인을 혐오하는 유사인종주의의 하나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신식민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배척하는 적대 개념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잠재되어 있던 식민주의적 인종주의를 유사인종주의 형태로 부활시켜 신냉전체제를 구축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짱깨주의가 탄생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가 말하는 반동주의자들이 위계질서를 재구축하려는 시도인 '새로운 적대'의 한 형태였다. (97~98쪽.)

 

  한국인이 중국을 바라볼 때 유사인종주의 경향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무감각이나 옹호도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이 옳고, 미국이 이기니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 심지어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에 댛나 예상도 미국인보다 더 미국을 높게 평가했다.
  특정한 국가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도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반중정서와 혐중 이데올로기를 차이나포비아(Chinaphobia)라고 부른다. (...) 그러나 차이나포비아는 국가별로 그 국가의 역사성을 반영하며 각기 다른 차이를 보인다. (...) 짱깨주의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칭키즘(Chinkism)'에 가깝다. 자본의 문제를 중국의 문제로 돌리고, 인종주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짱깨주의와 칭키즘은 차이가 있다. 짱깨주의는 '칭키즘'에는 없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 있다. 짱깨주의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과 상관없는 종주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짱깨주의를 '반중감정'이나 '혐중정서'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대항담론조차 형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식민의 언어 사용이다. 반중감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에 대한 일반적인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여느 국가에서 볼 수 있다. 막연한 경계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막연한 심리상태를 뜻한다. 혐중정서는 극대화된 반중감정의 일종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짱깨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뿐만 아니라 신식민주의적 유사인종주의가 들어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다. (101~102쪽.)

 

  한국에서 짱깨주의가 일상화한 것은 안보적 보수주의의 신식민주의적 기획과 극우진영의 유사인종주의적 기획만으로 가능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 완성하지 못한 근대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 한국은 구식민주의로부터 해방을 신식민주의를 동원하여 이루어냈다. 신식민주의체제 아래서 우리는 우리식으로 중국과 근대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적 샌프란시스코체제를 옹호하는 안보적 보수주의가 주동한 신식민주의적 중국인식 체제가 중국을 인식하는 주류로 자리 잡았다.
  안보적 보수주의자들의 짱깨주의 기획이 급속하게 일상화된 배경에는 네 차례 왜곡된 한중 간의 미완의 근대가 작동한다. (...)
  안보적 보수주의의 짱깨주의는 식민주의적 근대화론의 결정판이다. 친일적 개화파의 식민주의적 중국인식과 친일파의 적대적 중국인식이 친미반공주의자들로 이어져 신식민주의체제의 주된 중국 인식체계로 자리 잡았고, 전후체제의 위기 속에서 짱깨주의로 부활했다. 개화파와 친일파에게는 중국과 "호혜와 협력을 통해서 피지배자의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관계"라는 탈식민주의 의식이 부족했고, 반공주의자들과 친미반중주의자들에게는 완전한 주권을 확보하고 더 평등한 국가 간 체제 속에서 살겠다는 근대적 주권의식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짱깨주의는 영토와 주권이 완전히 갖추어진 근대적 한반도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을 보여 주는 표상이다. (104~108쪽.)

 

  시진핑 황제설은 시진핑의 황제 여부와 상관없이 '시진핑의 중국'이라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다. (...) '시진핑의 중국'이라는 프레임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중국민에 대한 유사인종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중국'이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중국민은 시키면 시킨 대로 하고, 결코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비주체적이고 전근대적인 신민이라는 인식이 있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가지는 전형적인 인식 틀이자 인종주의가 지니는 타국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중국민은 스스로 혁명을 성공한 근대 시민들이다. 봉건지주를 몰아내 경자유전을 실현했고, 일본과 유럽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식민지를 탈환한 주역들이다. 중국의 혁명은 마오의 혁명이 아니다. 마오 사상의 핵심은 각성되어 있는 중국민을 마오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마오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주역은 홍군에 참여한 수많은 이름 없는 병사들과, 근거지를 일군 일반 중국민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군사적으로 열세였던 마오가 그렇게 짧으느 시기에 전 정국을 장악할 수가 없다. 숨많은 중국민은 장제스의 국민당보다 마오의 공산당을 택했다. 그것이 중국 혁명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런 근대 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근대적 신민들로 퇴화했다는 가정은 서구인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한다. (152~153쪽.)

 

  중국민의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시진핑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 혁명 이후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민의 '국뽕'은 동원된 애국주의가 아니라 자발적 참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 영화가 국뽕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빈정거리는 일이 아니라 그런 영화에 왜 중국민이 열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국익에도 이롭고 이웃으로서도 올바른 태도이다. 중국도 이미 중국민의 중국이다. (165쪽.)

 

  다자주의 시대가 왔다. 중국의 보상으로 인한 미중 간의 균형, 아세안의 성장, EU의 다자주의적 노선의 견지 들을 고려하면 이미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필연이나 운명이 아니다. 우리도 "노"라고 말할 힘이 있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할 방법이 있고, 평화체제를 구축할 기회가 왔다. 한국식 투키디데스 함정론에 휘둘려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누가 더 유리한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그런데도 투키디데스 함정론을 강조하는 세력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중국은 이기지도 못할 패권을 추구하는 위험한 국가이니 미국 편에 서라. 미국이 이긴다. 그런 주장을 하며 자기들의 세계를 지키려는 것이다. (188쪽.)

 

  시진핑의 중국몽에 대한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들과 중국의 주류 지식인 사이 결정적 차이는 '화평굴기'의 해석에서 나타난다. 시진핑이 선언한 중국몽이 대내용이기는 하지만 대외적으로 화평굴기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들은 그것을 팽창주의의 하나라고 보는 반면 중국의 주류 지식인들으느 다른 국가들과 '공동부유'하는 전략으로 본다. 전인갑 교수의 주장을 빌리면 세계체제는 문화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문명의 질서'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타으로 한 '권력의 질서'로 구성된다.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는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문명의 질서"였다. 지금의 화평굴기도 '권력의 질서'보다 '문명의 질서'를 구현하려는 의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시진핑이 내세우는 중국몽의 핵심은 중국의 국익을 대중들과 나누겠다는 것이고, 중국의 이익을 위해 중국의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성장이 다른 국가들의 이익과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서구 학자들도 많이 있다. (...)
  이런 논자들의 주장은 한 가지 예측일 뿐이고 중국이 세계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 가지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불분명한 미래의 일이라는 점이다. 설명 중국몽이 팽창주의 성격을 지닌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구현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지금 중국의 외교적 지향을 평가하려면 중화도 아니고 패권도 아닌 전혀 다른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이 중화패권이라는 조악한 개념을 사용하여 중국의 행보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중국을 북한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악의 축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전쟁에 동원하려는 공포 마케팅이다. 중국몽은 그런 공포를 자극하는 좋은 소재이다. (228~230쪽.)

 

  《한겨레》가 보인 신장 지역에 대한 이상주의적 인식이 갖는 첫 번째 문제는 신장 지역의 중층적 권력구조를 인권문제로만 보아, 민주 대 반민주로 단순화시킨다는 점이다. 신장 인권문제는 BBC와 몇몇 인권운동가들이 먼저 제기하였지만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된 것은 프럼프행정부의 전략 때문이었다. 2021년 1월 1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발표한 〈신장 지역의 잔학행위에 관한 국무부의 결정〉은 신장 지역을 어떻게 보고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명확한 지침서였다. 이 지침서는 미국은 중국을 샌프란시스코체제 이전의 공산당 국가로 전환시키는 데 신장 지역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미 국무부는 신장 지역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하며 집단학살로 몰고, 집단학살을 주동한 시진핑의 중국을 공산당 국가로 전환시켰다. 자유기고가 벤 노튼(Ben Norton)은 서방 언론의 대대적인 '대규모 강제수용소' 보도를 꼼꼼히 추적하여 이런 보도를 가장 처음 한 언론과 시민단체가 미국 정부와 밀접하게 결탁되어 있는 것을 밝혀냈다. 《한겨레》는 미국의 세계 전략도 함께 고려하면서 신장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하다. (...) (411쪽.)

 

  미국이 신장 지역 인권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이슬람 세력을 활용해 중국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하게 깔려 있다. 미국의 인권외교에는 늘 이런 전략들이 숨어 있다. 미국의 이런 외교 행위를 두고 데이비드 하비는 "미국은 추상적인 보편주의로 제국의 야망을 은폐하고자 했다"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 서구는 늘 '이중 표준'을 가지고 있다. 서구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를 수사학적으로 옹호하며 자유주의 보편가치를 추구하지만 그런 수사를 주창하는 자들이 침해하는 인권, 자유, 민주주의 문제는 등한시한다. 중국은 자유주의 보편가치를 신장해야 하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서구로부터 주권을 침해받을 때 방어해야 하는 국가이기도 하고 불평등한 국가체제가 중국봉쇄를 감행할 때 저항해야 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415~418쪽.)

 

  중국의 일당제가 비민주주의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유럽중심주의적 판단이다. 물론 일당제가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결과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지금 일당제 내에서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논의의 핵심은 결과적 민주주의에 있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낳을 수 있다면 일당제든 다당제든 상관없다. 지식계 내부에서는 어떤 정당 형태가 중국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유리할지 논쟁이 ㅎ나창이다. 자유주의적 다당제 주장부터 공산당 중심의 다당제, 공산당 일당 내 실질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충칭모델을 지지했던 추이 즈위안은 일당이라고 하더라도 당내 민주주의만 확보된다면 충분히 전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민 민주주의는 결과적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더 많은 구성원에게 민주주의 혜택이 돌아가게 만드는 민주주의를 뜻한다. 전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당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산이 어느 정도 공유되는지가 핵심이다. 그는 강한 정부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왕후이 또한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집권기에 내세웠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제로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서구 민주주의가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가져오고 있다면 중국의 당-국가체제는 정치 활동에 일상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고, 당이 직접 생산관계까지 만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그렇다고 해서 왕후이가 중국의 당-국가체제가 실질적 민주를 늘 반영해 왔다는 교조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혁명과정에서 당이 관료화되면서, 사회 자치와 참여 민주주의를 뜻했던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하게 되고, 권력을 한 곳으로 집중하는 국가 구조로 바뀌었다고 본다. 그는 19세기 민족국가 시스템 아래서는 서구 또한 권력의 관료화와 국가의 강화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424~426쪽.)

 

  안보 보수주의자들의 짱깨주의적 기획은 성공했다. 신식민주의 체제하에 있는 대중들에게 '중국도 문제다'라는 프레임의 글은 신식민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
  리영희 선생의 글쓰기는 실천적 중국학의 한 전형이었다. 그는 단순히 '중국은 좋은 나라'라고 말한 칭중주의자가 아니었고 '미국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반미주의자도 아니었다. 리영희 선생이 쓰는 글의 지정학은 한국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글쓰기를 했다. 리영희 선생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명확하게 규정했고, 누구와 싸울 것인가를 불명히 드러냈으며, 보수주의 프레임과 전선을 형성하며 싸웠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대중을 향해 중국을 이야기했다. 리영희 선생은 중국에 관해 한국어로 쓴 글을 읽는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신식민주의체제하의 식민성에 갇혀 자기들이 한쪽 날개로만 날고 있다는 깨달음을 던져 주었고, 양쪽 날개를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게 만들어 주었으며, 민주화의 싸움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리영희 선생은 누구나 말하는 중국과 싸웠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 중국을 말했다. (...) (448~450쪽.)

 

  한국의 진보진영은 홍콩 사태를 두고 '홍콩항쟁'으로 칭송했지만 홍콩 사태의 본질은 중국과 홍콩 간의 1차 층위 민주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위기를 신냉전체제로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이 놓여 있다. 홍콩이 미국과 연합하여 독립하려 할 때 중국은 '일국양제'를 지키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일국을 지키려는 물리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손잡으려고 하는 홍콩 자본의 독주를 막아 내야 했다. 중국은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이완으로 극대화된 홍콩의 자본을 억제하고 이원화된 홍콩의 구조를 혁신해야 했다. 전후체제의 위기 속에서 팽창된 홍콩민의 자본주의적 욕구도 해결해야 했다. 국가주권의 개입이 필수적인 사항들이다. 다면적 민주의 문제를 1차 층위의 문제로 환원해서 '중국도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안보적 보수주의가 '중국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470~471쪽.)

 

  만약 바이든행정부가 트럼프행정부의 중국봉쇄 정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미국이 감당해야 할 미국 내의 이해관계 충돌은 더욱 극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키신저 시스템이 붕괴되는 상황까지 도달하면 중국은 틀림없이 지금처럼 좌고우면하는 신중한 대응방식을 버리고 전면 대응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면 대응한다면 거대한 투자처를 잃게 되는 금융계, 중국 저가상품의 혜택을 얻지 못하는 소비자 단체, 높아지는 노동임금을 감당해야 하는 산업계, 미중 무역으로 먹고사는 상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SCMP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 규모는 약 1,000조에 달한다. 왕희야오 중국·세계화센터 소장은 결국 손실은 미국 투자자들이 볼 것이라고 전망한다. 바이든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중 충돌에 대한 미국 내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2021년 7월 초 미국 내 40개가 넘는 각종 단체가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에 냉전적 태도를 버리고 중국과 협력을 우선할 것을 촉구했다. (515~516쪽.)

 

  샌프란시스코체제나 키신저 시스템이 더 이상 굴러갈 수 없을 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것은 어느 때보다도 한국인의 선택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체결하여 신냉전 시대로 후퇴할 수 도 있고, 키신저 시스템을 포기하고 다시 미국의 '선물'만 바라보며 살 수도 있다. 반대로 다자주의 시대에 걸맞게 미국에게 신식민주의 요소를 줄이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주도적으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한국의 힘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 시기와 분명히 달라져 있다. 그때는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이 배제되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생겼다. 미국이나 중국이 선택했다고 우리가 그때처럼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선택을 할 힘이 있고, 그 선택이 앞으로 동아시아에 생겨날 새로운 체제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555쪽.)

 

  동아시아가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구축될 경우 발생하는 급진성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거대 시장이 주는 새로운 공간들이 새롭게 등장한 다중을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동력으로 전화시켜 평화체제 세력으로 재편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
  두 번째로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지는 거대 시장이 가지는 힘은 국가의 지향성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
  세 번째는 동아시아에 하나의 단일 시장이 구축되면 생태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소규모의 지역화에 비해 훨씬 더 큰 범위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질서에 대항하는 대항체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 (611~612쪽.)

 

교정. 1판 7쇄

9쪽 8줄 : 《한겨례》 -> 《한겨레》

94쪽 7줄 : 괘가 같았다 -> 궤가 같았다

153쪽 밑에서 1줄 : 월등이 -> 월등히

155쪽 2줄 : 폴리페스라는 -> 폴리페서라는

407쪽 9줄 : 괘를 같이한다 -> 궤를 같이한다

466쪽 밑에서 5줄 : 체제에 옹호하는 -> 체제를 옹호하는

470쪽 밑에서 6줄 : 할 수 밖에 -> 할 수밖에

613쪽 7줄 : commonwealth of cvilization -> commonwealth of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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