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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1, 2 (임경석, 푸른역사,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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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1, 2 (임경석, 푸른역사, 2022.)

Dog君 2023. 8. 6. 12:34

 

  켄 리우의 단편소설 「송사와 원숭이 왕」(『종이동물원』에 수록)의 주인공 '전호리'는 양주 대학살 사건을 노래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알려줍니다. 이 사건을 영원히 기억(전승)하기 위해서죠.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 그리고 그걸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는 흔히 하늘, 곰, 호랑이를 각각 토템으로 했던 부족 간의 연합과 분열의 역사로 해석됩니다. 신화학자와 역사학자는 북유럽 신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거인족의 존재를 두고, 체구가 컸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와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기억이 반영된 결과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전호리의 노래와 단군신화와 북유럽신화의 공통점은 노래와 신화라는 형식으로 기록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근대적인 역사학이 있기 이전에, 사람들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했습니다. 마음 넉넉하고 말주변 좋은 노인이 동네의 아이들에게 밤새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아이들이 다시 노인이 되어 또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으로, 과거의 경험은 후대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것이 아마도 태초의 역사학이었겠죠. 그러니 '이야기'야말로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 하겠습니다.

 

  방송에서도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독립운동 열전'은 다른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흔히들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어쩐지 비장하고 엄숙한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 같지만, '독립운동 열전'이 펼쳐놓는 활극과 배신, 음모의 이야기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서사가 가진 힘만으로도 독자를 매료시킵니다. 한 호흡에 읽기 딱 좋은 길이에(애초에 주간지 연재물이었으니까요 ㅋ)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현란한 재주까지 더해지니 독자로서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독립운동의 "한 구절 한 고비"에 절로 몰입하게 됩니다. 당장 저만 해도 이 만만치 않은 분량을 (전체 두 권;;) 거의 만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네요. 특히 마지막에는 카페 마감이 임박해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그러니 '독립운동 열전'은 아주 모처럼만에 만난, 역사책 본래의 즐거움을 보여준 책이라 하겠습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요 ㅋㅋ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것도 좋고 치밀한 논증을 감상하는 것도 만족스럽지만, 아주 오래간만에, 우리가 역사책을 읽기 시작한 가장 근원적인 이유인 이야기의 즐거움에 몰입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이던지요.

 

  물론 저자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최고 수준의 권위를 가진만큼 이야기 중간중간에는 역사학자의 통찰과 주장도 숨어 있습니다. 특히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사 연구가, 여전히 냉전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개탄이 책 여기저기에서 묻어납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서훈에 대해 재검토하겠다는 모 부처 장관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는데, 아마도 저자의 개탄은 최근 들어 더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의 허다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이 대개 '민족'과 '국가'와 '영웅'에 대한 찬미로 이어지거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하더라는, 제 평소의 우려는 여전히 불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건 저자의 의도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독립운동사를 대하는 독자의 태도가 그러해야 한다는 거죠.

 

  젠더의 관점에서도 사실 좀 마뜩찮은 부분이,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왜 꼭 여성 운동가에게만 달라붙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 미남(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는 없지만 미녀(로 알려진) 독립운동가는 있다는 것, 확실히 흠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게 유독 이 책에만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출판을 위해 원고를 다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라도 손질이 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이 책의 미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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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사회주의를 중시했습니다. 왜냐하면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 다수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이런 이유로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주된 지위를 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역사가에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특징이 있습니다. 무명의 헌신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독립운동사는 정의에 헌신했으되 잊혀져 버린 이름없는 투사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3·1운동과 세계대공황기 혁명운동과 같은 독립투쟁의 일대 고조기를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민중이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공동체의 해방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헌신이 독립운동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이지요. 이 책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습니다. 대의에 헌신했던 이름 없는 민중을 독립운동사의 주역 자리에 올려놓고자 했습니다. (1권, 6~7쪽.)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를 잘 몰랐다. 러시아 지역 한국 독립운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조차 그랬다. 엄인섭은 최재형, 이범윤, 유인석, 안중근 등과 나란히 거론되는 의병장이었다. 주요 의병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혔고, 향후 관련 연구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인물로 지목받았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해외 한국사 사료의 수집과 편찬에 노력해온 덕분에 엄인섭이 밀정인지 여부를 확증할 수 있게 됐다. 외무성 산하 일본 총영사관 경찰서에서 작성한 반일 단체 관련 공문서철(불령단관계잡건)에 엄인섭의 밀정 행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1권, 110쪽.)

 

  김성근은 해방 이후까지 살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사망 연월일은 1950년 2월 5일이다. 향년 59세였다.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본영사관 경찰부의 밀정 노릇을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그러기는커녕 사후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1963년 3월 1일 독립유공자상훈심의회의에서 건국공로훈장 단장短章을 수여받았다. 오늘날의 건국훈장 독립장에 해당하는 높은 훈격이었다.
  김성근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어 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에 이름이 올라 있으며, 최근에 발간된 《독립운동인명사전》(독립기념관)에도 실려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구국모험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기림을 받고 있다. (1권, 253쪽.)

 

  강달영의 어느 날 동선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비서부 일기〉 덕분이다. 뒷날 불행하게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을 때 그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암호 기록을 자신만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문경관 요시노 도조 경부보는 "뼈가 돌이 되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아니 하겠다"는 결심이 그의 몸에서 풍겼다고 회고했다. 결국 강달영은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감시의 눈을 피해 머리통을 힘껏 철제 책상에 부딪쳤다.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 주도면밀한 감시 때문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는 자살 기도를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암호 해독 기술이 알고리즘을 뚫었을 때,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그의 결심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미쳐버렸다. 정신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옥중에 있을 때도 그랬고, 출옥 후에도 그 증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쓸쓸히 지내다가 1940년 7월 12일, 향년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진주 3·1운동의 유공자, 조선 노동운동의 지도자, 평생을 헌신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 그의 명복을 빈다. (1권, 269~271쪽.)

 

  홍범도는 알게 됐다. 왜 보급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으며 파견한 대표들은 하나같이 연락이 두절됐는지를. 첫 번째 밀사 두 명은 이범윤 부대에게 군자금 2만 원을 빼앗기고 옥중에 수감되어 있었다. 두 번째 밀사는 자신의 사명을 잊은 채 이범윤 부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홍범도는 이범윤을 만났다. 냉랭하고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홍범도(41)가 정중하게 물었다. 자신이 파견한 두 사절을 왜 체포했습니까? 왜 감옥에 가줬습니까? 그들을 일본의 밀정이라고 의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범윤(53)의 답변은 명쾌하지 않았다. (...)
  두 지도자 간의 문제는 의병운동 지도부의 출신 차이에서 비롯됐다. 평민 의병장과 양반 의병장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이범윤이 (...) 스스로 대한제국 황제가 임명한 종3품 고위 관료이자 북부 산악 지방의 포수 동업조합을 대표하는 최고위 수장이라고 자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홍범도와 같은 평민 의병장은 마땅히 자신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 홍범도 부대의 파견원들은 자신의 명령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지닌 거액의 자금에 대해서는 상급자인 자신이 마땅히 관할권을 갖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권, 116~119쪽.)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시민사회의 여론과도 배치된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중진들로 구성된 보훈처의 자문기구 '국민 중심 보훈혁신위원회'가 사회주의계 독립운동에 관해 권고한 내용에 귀 기울여야 한다. 판단의 시점을 1945년 8월 15일에 두고, 그때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그 전에 그의 사상이 어떠하든, 또 해방 후 정치적 행적이 무엇이든, 그 사람은 독립운동가로 판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권, 314~315쪽.)

 

교정. 초판 4쇄
1권 47쪽 8줄 : 《독립신문》를 -> 《독립신문》을
1권 143쪽 1줄 : 영국인 기자 톰슨H. E. Tomson -> 영국인 기자 톰슨H. A. Tompson (한국독립운동사 20권 임정편V 기준)
1권 288쪽 9줄 : 서상파 -> 서상파(서울상해파의 줄임말)
1권 349쪽 6줄 : 서상파(서울상해파의 줄임말) -> 서상파
1권 303쪽 2줄 :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РГАСПИ
1권 344쪽 3줄 : 러시아사회정치사기록관РГАСПИ
2권 195쪽 캡션 :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1권 303쪽과 1권 344쪽, 2권 195쪽 표기 다름)
2권 54쪽 캡션 : 다음 지도. -> 다음 지도
2권 108쪽 밑에서 1줄 : 김원홍 -> 김원흥
2권 181쪽 1줄 : 에카테린부르그 -> 예카테린부르그
2권 355쪽 밑에서 7줄 : 러시아 이름, 김아파나시 -> 러시아 이름 김아파나시

(아래의 표기를 통일)
1권 55쪽 8줄 : 이시파
1권 78쪽 밑에서 8줄 : 이시파(이르쿠츠크파)
1권 78쪽 밑에서 4줄 : 이시파
1권 135쪽 3줄 : 이시당(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1권 135쪽 6줄 : 이시당
1권 135쪽 9줄 : 이르쿠츠크파
1권 135쪽 밑에서 2줄 : 이시당
1권 240쪽 3줄 :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1권 260쪽 7줄 : 이시파
1권 294쪽 밑에서 7줄 : 이르쿠츠크파
2권 40쪽 : 이르쿠츠크파
2권 42쪽 : 이시당(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2권 164쪽 밑에서 9줄 :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2권 165쪽 밑에서 4줄 :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2권 179쪽 소제목 : 이르쿠츠크파
2권 181쪽 6줄 : 이르쿠츠크파
2권 354쪽 8줄 :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2권 354쪽 밑에서 2줄 : 이르쿠츠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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