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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해력 수업 (최호근, 푸른역사,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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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해력 수업 (최호근, 푸른역사, 2023.)

Dog君 2023. 7. 8. 20:15

 

  일단 불만부터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누구나 역사를 말하는 시대에 과거와 마주하는 법'인데요, 저로 하여금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낚시바늘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분과학문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작금의 시대에, 그래도 순수학문의 낭만 한 조각을 힘들여 갈파할 것만 같은 제목 아닙니까. 그래서 제목만 봐서는 이 책에는 뭔가 굉장한 '역사학 선언'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거창한 내용은 없습니다. 엄숙한 선언도, 굉장한 선동도, 없습니다. 이 책은 그저 역사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에 대한 어느 역사학자의 담담한 자기성찰 내지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학의 일반이론을 말하고 있지만 초심자를 위한 입문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사학에서 꼭 짚어야 할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교과서적으로 다루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책은 입문자용 교과서를 읽은 후에 이를 보완하는 용도로 쓰기에 딱 좋게 느껴집니다. 작년에 읽었던 윤진석의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과 이 책을 짝지어서 역사학 입문 수업 커리큘럼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책은 형식상으로는 29개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에세이 모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저자 나름대로 정리한 역사학 일반이론과 역사철학에 대한 한 편의 긴 글처럼 읽힙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목차만 보고 필요한 주제만 발췌해서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앞서 나온 내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꽤 있거든요.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는 역사학에서 다루는 여러 추상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훑어간다는 느낌으로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이 책이 유독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포스트(脫, post-)주의입니다. 심지어 두 번째 등장할 때는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느낌표까지 거듭 사용되죠. ㅎㅎㅎ (7장이다!) 이렇게나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저자가 가장 고심하는 화두이기 때문일 겁니다. (출판사 대표님도 페이스북에서 7장에 저자의 고민이 가장 짙게 녹아있다고 이야기하셨죠.)

 

  거대서사를 해체하고 텍스트에 대해서도 근원적으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포스트주의 역사학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경계심은 이미 다른 서술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에도 탈근대론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이를 두고 동료 연구자와 한참 벌인 논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같은 책에서 탈근대론에 대한 노老역사학자 리처드 에번스의 태도가 소개되기도 하구요. 저보다 윗 세대인 서양사 연구자들께 포스트주의가 준 충격은 지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주제넘게 말씀드리자면, 2023년 현재 포스트주의 이야기는 저에게는 약간 좀 진부하거나 혹은 유행이 지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선배 연구자들께서 이에 대한 우려를 거두지 않으시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언젠가 방송에서, '2000년대 초반 한참이나 탈근대(post-modernism)를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거 조선일보가 제일 좋아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들었노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죠. "수구/진보, 독재/민주, 외세/반외세로 양극화된 우리의 왜곡된 현실 자체를 실천에 의해 해체시키지 못하면서, 말로만 해체를 외치는 행위란 결국 허공을 향해 고함지르는 것처럼 공허하다"(최종욱, 「포스트주의는 무엇을 포스트했는가?」, 1997.)는 지적처럼 한국의 상황에서 포스트주의의 문제의식이 결과적으로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귀결한 경우를 우리는 이미 여럿 보았습니다. 보수/진보의 정치가 아닌 역사학으로만 한정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스트주의 역사학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이는 진리의 획득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순간 역사학의 존재 이유는 사라집니다. 그렇게까지 안 간다 하더라도, 포스트주의는 결과적으로 윤리와 책임을 묻지 못하는 논리가 되기 십상이니 이 역시도 결국에는 저항을 포기하게끔 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논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볼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자는 포스트주의의 특성으로 "객관성에 대한 회의와 불신"(337쪽.)을 듭니다. 저자는 이러한 특성이 소수자/피해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에 근거해 권력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양비론적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런데 이는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객관적 사료(문서 등)의 태부족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사료(구술 등)를 통해 '위안부'의 역사적 주체성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의 바탕에 깔려 있던 것이 곧 포스트주의의 문제의식 아니었냐는 질문을 거꾸로 던져볼 수 있을 겁니다.

 

  저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진실의 획득 가능성과 객관성에 대한 회의가 끝내는 양비론과 냉소로 이어지는 상황 같습니다. 극단적인 상대주의 내지는 주관성에 대한 너무 강력한 강조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책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칼 베커의 논의에 따르면,(333쪽.) 역사가의 자의적인 해석(극단적 주관성)을 막는 것은 학문 공동체 동료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입니다. 그말인즉슨, 역사학에서 말하는 객관성이란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라 논리의 객관성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즉, 자연과학의 실험에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기준 중 하나가 재현replication의 가능 여부인 것처럼, 역사학에서 말하는 객관성도 동료의 사고실험에서 재현이 가능하도록 논리적 타당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통해 확보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책의 바로 다음 단락에서 이에 대한 반론이 나오기 때문에(;;) 제 질문이 아주 온당한 것은 아닙니다. ㅎㅎㅎ;;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대학생활 하면서 탈(脫)이니 포스트(post)니 하는 것들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자라온 덕에 그에 대해 감정적으로 호감이 많은 저로서는 이런 질문을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

 

  뭐 여튼, 2023년 현재 한국의 역사학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런 책이 언제나 반갑습니다. 역사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철학과 일반이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유튜브건 어디서건) 시민을 위한 역사학 입문 강좌 하나 만들고야 말겠다는 작년의 제 결심이 이 책으로 좀 더 확고해졌습니다. 제가요 그거, 언젠가는 하고 말겁니다 ㅎㅎㅎ.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설명한다. 그리하여 어느덧 진실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에 대한 의심, 끝없는 문제 제기, 가치 상대주의가 우리 시대의 특징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다원적 사고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개방적이며 건강하다는 증거다.
  하지만, 진실에 대한 지나친 회의가 우리에게 꼭 유익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록된 역사에 대한 의심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의심은 비판과 더불어 약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기성 권력에 대한 도전이 의심에서 시작되는 것은 틀림없다. 중심의 시각에 대한 도전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다만 '진실은 없다'는 비판 일변도의 사고가 초래할지도 모를 부정적 결과다. 가치 상대주의의 여러 유형 가운데 양비론이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다. 'A도 믿을 수 없지만, B도 사실은 아닐 것'이라는 태도는 때때로 편의적 무관심과 똑같은 결과를 동반한다. 그 결과가 약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77~78쪽.)

 

  게토에 갇혀 있던 지식인들 중에는 (...) 에마누엘 링엘블룸Emanuel Ringelblum(1900~1944)이 그중 하나였다. 링엘블룸은 인류사의 암흑 같은 시기에 파괴되어가는 기억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한 폴란드의 유대계 역사가이다. 이 청년은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히지도 않았고, 대책 없는 절망에 빠지지도 않았다. 이 청년은 나치 치하의 바르샤바 게토에서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는 자기 생명을 기록 보존의 소명과 맞바꾼 사람이기에, 직업적 역사가의 귀감으로 불린다.
  (...)
  바르샤바 게토에서 링엘블룸의 활동은 기록의 생산과 보존에 집중되었다. 나치의 목표가 유대인 파괴와 절멸활동에 대한 은폐였으므로, 이에 맞선 유대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아니엘레비치의 역할이 절멸 자체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링엘블룸의 역할은 나치의 은폐 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힘없는 자들을 위해 링엘블룸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억을 위한 투쟁이었다.
  (...)
  가족과 함께 수용된 링엘블룸은 같은 처지에 놓인 40만 유대인의 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이 생존 불가능한 조건을 강요하는 나치 정책을 집요하게 파악했다. 이 모든 작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직한 모임이 '안식일의 기쁨'이었다.
  링엘블룸이 주도한 '안식일의 기쁨' 활동은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비밀리에 모여들어 관찰 결과와 수집한 자료를 종합했다. 이 가운데 중욯나 사항들은 매월 마지막 주에 추려져 다시 정리되었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폴란드 유대인이 겪은 순교자적 역견에 관한 일체의 자료와 문서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각종 신문과 공식 보고서는 물론 일기와 편지, 포스트와 사진까지 한데 모았다. 그중에는 전차표와 사탕 포장지도 있었다.
  1942년 7월 22일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강제 이송이 시작되면서 모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8월 초가 되자 운동 참가자들은 나치의 정책과 경제 생활, 문화운동과 지하활동에 관해 가장 중요한 자료들만 선별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방수 가능한 금속 우유통 3개와 박스에 담아 게토 안의 세 곳에 나누어 매장했다. (...)
  오넥 샤바트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셋뿐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감추어둔 자료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우유통은 1946년에, 두 번째 우유통은 4년 후인 1950년에 발견되었다. 그러나 지하활동 자료를 담은 세 번째 우유통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
  (...) 희생자들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훗날 역사가들의 노력도 무위로 끝났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직업적 역사가는 승자의 아우성에 파묻힌 약자와 소수자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채증하여 되살릴 수는 있어도, 아예 남아있지도 않은 목소리까지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몇 개의 파편을 가지고 과거의 모습을 재구성하고자 애쓴다. 역사가의 상상은 그 이상을 지향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링엘블룸이 남긴 자료들이 고마운 것이다. 그 녹슨 우유통 두 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바르샤바 게토에 대해 추측과 상상으로 이야기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을 것이다. 역사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그런 종류의 비난이다. (...) (85~89쪽.)

 

  베버는 어떤 사건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실제로 생겨난 결과와 그 사건이 그렇게 벌어지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했을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의 크기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베버는 역사가들이 그 간극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았다고 꼬지었다. 스승과 선배들이 갔던 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습하려는 자기 시대의 역사가들에게 베버는 랑케의 경구를 뒤집어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가 해명해야 할 것은 '존재Sein' 또는 단순히 '그렇게 형성되어온 존재So-geworden-Sein'가 아니다. 역사가는 '다름-아니라-바로-그렇게-형성되어온-존재So-und-nicht-anders-geworden-Sein'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명하고 하필이면 그렇게 된 바로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가능하기는 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한 또 다른 방향과 비교할 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
  (...)
  포겔의 논증은 역사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실, 논쟁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추측과 반박, 새로운 가설과 논증으로 이어지는 역사 연구방법의 정제과정이다. (...)
  사고실험을 통해 실현되지 않은 역사를 구성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실현된 역사와 대조하는 작업은 이처럼 생산적인 일이다. 변화에 관한 연구를 자기 직분으로 삼는 역사가들이 방법론적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혁신에 대한 요구와 실행은 만은 경우 역사학 바깥에서 나왔다. (...)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도전이 역사가들에게 통념에서 벗아나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역사 연구에 도입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우리 시대 역사가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발칙한 수준의 상상력일 것이다. (157~161쪽.)

 

  (...)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현재적 판단이 비판적 경향을 띠기 쉬운 데 반해, 역사적 판단이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경향을 띠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물론 역사적 접근이 반드시 어떤 개인의 행동이나 국가 정책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시점에서 그 개인이나 국가 앞에 주어져 있던 선택지들을 따져보고, 어떤 사사로운 욕심이나 오판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했고, 그것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역사적 사고 그 자체가 보수적 정치성향이나 진보적 정치성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사고는 모든 것을 현재의 존재에 한정해서 판단하는 대신에, 시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선과 변화의 조건과 계기들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해당 존재의 특성과 의미를 파악하는 태도와 방식을 일컫는다고 하겠다. (...)
  좁은 의미의 역사적 사고가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해당 시대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화historicization 작업을 뜻한다면, 역사의식은 이 작업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나 인물을 현재의 시공간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현재화 작업까지 포함한다. 과거를 현재화하는 이 작업이 바로 재현representation이다. 역사가는 낯선 시대, 낯선 문화권에 존재했던 사건이나 인물을 과거의 맥락 속에서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쓸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우리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번역'하는 작업까지 수행한다.
  여기서 번역은 단순히 축자적이고 언어적인 해석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번역 작업에는 '지금 여기'에서 통용되고 있는 가치와 의미 기준까지 적용된다. 동아시아의 전통 역사학에서 강조해온, 시시비비를 다져서 빞나하거나 상찬하는 포폄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이끌어내거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미를 찾고, 이에 근거해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까지가 역사의식에 해당한다. (...)
  역사적 사고와 역사의식 간의 차이를 막스 베버가 강조한 가치연관Werbeziehung과 가치판단Werturteil 개념을 통해 일부 설명할 수도 있다. 가치연관에 초점을 둘 경우, 김일성의 남침 결정을 살펴볼 때 어떤 목적과 정세판단이 그런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해명하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가치판단에 초점을 두면 엄청난 인적·물적 희생과 분단 고착화라는 결과에 비추어 김일성의 결정은 무모했을 뿐 아니라 민족 번영과 동아시아 평화에 심각한 해를 끼친 행위로 비판할 수 있다. 역사의식은 이처럼 과거에 '그것이 어떻게 존재했던가'를 해명하는 작업과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성찰하는 작업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82~185쪽.)

 

  그러나 베커는 객관성을 그렇게 빨리 포기하지는 않았다. 역사라는 이름 아래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없게 해주는 약간의 제한 요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의 존재다. (...) 학자공동체가 개별 역사가의 자의적 역사서술을 막아준다. 내가 인용한 사료가 적절한지, 그 사료를 정확하게 읽었는지, 방법적 문제는 없는지, 혹시라도 논리의 비약이 나타나지는 않는지를 다른 전문가들이 세밀하게 살펴보기 때문이다. 책을 쓰거나 논문을 쓸 때 학자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동료 평가peer review를 염두에 둔다. 혹시라도 사료의 오독, 견강부회, 침소봉대, 중대 사실의 누락 같은 치명적 결함에 대한 지적이 나올까 봐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상호 견제 장치가 객관적 역사서술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지나친 속단이다. 베커는 그 이유를 우리 감성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서술할 때 차갑고 딱딱한 사실에만 의존하지는 안는다. 감정적 판단이나 정서적 만족감도 과거를 되살릴 때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인만이 아니라 직업적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양자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333쪽.)

 

  객관성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극단적) 상대주의 이후에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 삶의 다양성, 다면성, 다층성, 다성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아마도 긍정적 유산일 것이다. 이 감각을 통해 길러진 다원주의적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권력의 중심성과 중심부의 폭력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벼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대가로 잃는 것은 없을까?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것 가운데 소중한 것이 섞여 있지는 않을까?
  있다! (...) 권력자를 위한 기록은 넘쳐나는 데 반해, 약자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을 기록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사료의 절대적 비대칭성이 문제가 될 때, 포스트모더니즘 입장에서 역사 비평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이런 경우에 의혹 제기와 정당성 부인이 후대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의 전부일까? 국공립아카이브에 보존된 1차 사료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2차 사료의 증거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박탈하는 것이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행간의 의미 읽기나 텍스트의 결을 거슬러 읽는 것만으로 이미 굴절된 과거를 바로 펼 수 있을까?
  아니다! 문제 제기는 이미 왜곡되어 기록된 과거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제공해줄 뿐이다. (...) Anti의 가치는 제한적이다. 누군가가 모든 기록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때, 과거에 관한 기록과 기억은 주장일 뿐이므로 증거로서 가치를 요구할 수 없다고 역설할 때, 아예 기록으로 남지 못한 과거의 목소리, 흐릿한 기억에 기초한 증언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본군'위안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반인도적 성격의 국가범죄를 여실히 드러내 줄 수 있는 일본 측의 공문서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 측의 사문서도 거의 없다. 남아있는 것은 몇몇 생존자들의 증언뿐이다. 과거에 관한 기록은 '진실 효과'만 표방할 뿐이며, 그 속에는 증거적 가치가 없다는 과격한 주장이 이 경우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 이것도 믿을 수 없지만, 저것도 믿기 어렵다는 식의 양비론 아닐까? 이렇게 제작된 양비론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라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파괴는 누구를 위한 파괴며, 그들이 말하는 해체는 누구를 위한 해체가 될 것인가? 이쯤 되면, 객관성에 관한 상대주의적 주장들의 가치 그 자체도 상대화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직업적 역사가로서 베커가 우려했던 것도 이런 극단적 결과였다. 극단적 상대주의의 대가는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피해는 약자들에게 집중되기 십상이다. (337~338쪽.)

 

교정. 초판 1쇄

21쪽 9줄 : 서구  세계에서 -> 서구 세계에서 (띄어쓰기 2칸인 듯)

101쪽 9줄 : 유엔 진영 21개국(군대를 파병한 16개국과 의무지원 5개국) -> 유엔 진영 22개국(군대를 파병한 16개국과 의무지원 6개국)

101쪽 11줄 : 총 24개국이다 -> 총 25개국이다 (2018년에 독일이 여섯 번째 의무지원국으로 추가되었으므로 숫자를 수정.)
187쪽 12줄 : 知命 -> 知天命
200쪽 4줄 : 카이로스Kairos
201쪽 12줄 : 카이로스Καιρός
229쪽 7줄 : 카이로스Καιρός (200, 201, 229쪽은 원어 표기를 통일하면 좋겠다.)
278쪽 7줄 : 워털루 해전에서 -> 워털루 전투에서
317쪽 밑에서 2줄 : Spirit Capitalism -> Spirit of Capitalism
348쪽 밑에서 8줄 : 프리메이슨freemason -> 프리메이슨Freemason (고유명사로 보는게 옳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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