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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 (김동섭, 미래의창, 20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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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 (김동섭, 미래의창, 2024.)

Dog君 2025. 2. 12. 14:07

 

  우리나라 지명 중에 '陽'(볕 양)자가 들어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陽'의 뜻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겁니다. 서울의 옛 지명인 '한양(漢陽)'은 '한강[漢水]의 북쪽'이라는 뜻이지만 안양시의 관양동(冠陽洞)은 '관악산(冠岳山)의 남쪽'이라는 뜻이니 '陽'이 어떨 때는 북쪽을 의미했다가 또 어떨 때는 남쪽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하나의 글자가 정반대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고 참.

 

  알고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양지바른 곳'을 뜻하는 '陽'은 강을 기준으로 하면 북쪽을 지칭하고 산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을 지칭하기 때문이죠. 남쪽에서 해가 뜨면 강은 북쪽 사면에 양달이 생기고 산은 남쪽 사면에 양달이 생기잖습니까. 이걸 알고 나면 우리나라의 여러 지명에서 '陽'이 들어간 것들이 새삼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 주변의 지명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별 것 아니지만 글자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가 더해지고 나아가 우리 관점까는 달라지는 거죠.

 

  이번에 읽은 『세계사를 만든 30개 수도 이야기』도 제게는 이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수도를 중심으로 살펴본 세계의 역사 이야기로 읽어도 재미있지만, 언어학자라는 저자의 학문적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읽는 것도 좋은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김동섭은 일전에 저희가 『영국에 영어는 없었다』는 책을 통해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도 저자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어원 추적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의 얽히고 얽힌 역사를 흥미롭게 그려낸 적이 있지요.

 

  그와 비슷하게 이 책 역시 언어가 삶과 역사를 살펴보는 훌륭한 현미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 각 도시의 지명에는 우리가 쉽게 알기 어려운, 그 지역의 특성이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파리의 지명에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녹아있다는 점은 방송에서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바르셀로나에서 흔히 찾는 관광지에서 카탈루냐어의 사용 빈도가 유독 높은 것은 스페인의 국가 정체성과 카탈루냐의 지역 정체성이 치열하게 경합했던 스페인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이름이 '평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최근의 이스라엘 정세와 관련하여 굉장한 역설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눈에 보이는 유물과 유적만이 아니라 이름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독서경험은 이런 점에서도 우리에게 유의미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지명의 의미를 알고 나면, 꼬마들과 자주 하던 수도 맞추기 놀이도 범상치 않게 느껴질 것이고, 해외 여행 가서 보고 즐기는 것에도 훨씬 더 깊이가 더해질 것이며, 여행 사진 올리는 인스타 게시물도 훨씬 더 풍성해지겠지요. 역사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이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명제를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몽골 제국은 당대 세계 최대의 제국 송나라를 멸망시켰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남송의 항저우를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도시"라고 극찬했다.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로서 당시 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하던 대도시였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가장 상업이 발달한 도시인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의 눈에도 중국의 국력은 유럽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송나라의 산업 발전은 당대 유럽의 어느 국가도 견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1078년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788년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철 생산량과 거의 맞먹는 수준인 12만 5,000톤이었다. 인구 면에서도 송나라는 주변 국가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요나라의 정예병은 10만 명이었고, 북송을 멸망시켰던 금나라의 병력은 6만 명, 몽골 역시 전체 인구가 100~200만 명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송나라는 남북을 합해 인구가 1억 명을 상회했다. (...) (71~72쪽.)

 

 

  파리가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기원전 53년이다. 이 해에 루테시아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 갈리아 지방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가 골족의 총회를 소집한 장소가 바로 지금의 파리에 해당하는 루테시아였다. 갈리아를 복속시킨 로마는 지금의 시테섬 좌안에 병영과 원형 경기장을 갖춘 요새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루테시아 파리시오룸Lutetia Parisiorum', 즉 '파리시Parisii족의 루테시아'라고 불렀다. 켈트족의 한 분파인 파리시족은 정복자인 로마인에게 저항을 하지 않고 스스로 로마에 투항한 부족이었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파리시족은 센강 가운데에 있는 시테섬에 요새를 짓고 그 안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파리의 심장인 시테섬이 2,000년 전에도 루테시아의 중심이었던 셈이다. 로마인들은 센강의 좌안에 요새 도시oppidum를 건설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지금의 동東역Gare de l'Est으로 이어지는 가도를 런설하고, 남쪽으로는 지금의 소르본대학교가 있는 생미셸 지구와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했다. 루테시아는 이렇게 로마가 브리타니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훗날 로마인들이 건설한 아그리파 가도는 갈리아 속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루그두눔Lugdunum(지금의 리옹을 지나 북쪽의 루테시아를 거쳐 영불해협 방향으로 나이어진다. 파리는 이때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를 잡았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루테시아는 'Lutecia' 혹은 'Lutetia'로 적혀 있다. 갈리아 속주에 살았던 골족의 언어를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루테시아는 골어語에서 진흙을 의미하는 *luta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센강 주변에 범람하는 진흙이 만든 땅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파리 중심에는 17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마레 지구가 있는데, 마레Marais 역시 프랑스어로 습지를 의미한다. 결국 시테섬 주변의 좌안과 우안은 진흙이 넘쳐나는 습지였던 것이다. 카이사르가 기술한 파리의 지형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편 시테섬에 살던 파리시족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로마 정복 당시 지금의 프랑스 지방에서 살던 골족의 언어에서 솥단지를 의미하는 *pario에서 나왔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골족이 속한 켈트족의 신화에서 솥단지는 저승에서도 풍요를 가져다주는 상징물이었다고 한다. 이 솥단지는 마법의 솥단지였다. 정리하면 파리의 지명은 '마법의 솥단지를 가진 부족들이 사는 진흙의 땅'으로 풀이할 수 있다. (131~133쪽.)

 

  1992년 7월 25일, 지중해의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제25회 하계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당시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왜 수도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에서 진행되었는지 다소 의아해 했다. 물론 올림픽은 국가보다 도시가 주관하는 국제 행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대회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시상식 중계 때 올림픽의 공식 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개최국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시상자를 호명하는 것까지는 일반적이었는데, 그 외에 또 다른 언어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바르셀로나 지방에서 사용되는 카탈루냐어였다. 카탈루냐어는 어족상으로는 스페인어보다는 오히려 프랑스어에 가까운 언어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마드리드가 아니라, 아라곤 왕국의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올림픽이 열리는 바르셀로나에는 스페인 국기보다 카탈루냐 주기가 더 많이 보였고,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시내에서도 시민들은 카탈루냐 주기를 흔들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191~192쪽.)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큰 국토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요즘 수도를 천도한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실제로 2022년에 인도네시아 의회는 수도 천도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현지인들도 수도를 어디로 옮기는지 제대로 모른다고 한다. 수도를 이전하려는 이유는 자카르타의 지반이 잦은 홍수로 인해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카르타의 40%가 해수면 아래 잠겨 있고, 지금도 해마다 25cm씩 가라앉고 있다. 지나치게 인구가 자카르타에 집중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자카르타가 군도의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
  보르네오섬으로 옮겨갈 행정 수도의 이름은 열도列島를 의미하는 '누산타라'다. 자카르타는 경제 수도로 남게 된다. 2045년 건설을 마치는 새 수도의 이전 비용은 무려 466조 루피아(약 40조 원)라고 한다. (...) (277~279쪽.)

 

  〈저주의 문서〉에서 예루살렘은 '루샤리무Rushalimu'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예루살렘이 가졌던 최초의 이름이다. 당시에는 도시명을 지방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루샤리무라는 이름은 '샬렘Shalem' 또는 '샬리무Shalimu' 신을 숭배하는 도시라는 의미다. 샬렘 신은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서 숭배하던 신으로, 창조의 신, 완벽함의 신, 그리고 석양의 신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첫음절 '예루'는 '우루uru'에서 왔다. 우루는 가나안어로 도시라는 뜻의 '예루yeru'가 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샬렘 신이 세운 도시라는 의미다. 두 번째 음절인 '살렘'에서는 히브리어의 '샬롬shlom'(평화)과 아랍어의 '살람salaam'(평화)이라는 말이 나왔다. '샬롬'이라는 이스라엘의 인사말과 '이슬람'이란 단어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296쪽.)

 

  미국이 대외적으로 공식 국가로 인정된 이후(1783년) 수도 확정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헌법의 수정과 의원들의 수도 선택에 다시 18개월이 흘렀다. 이같이 긴 시간이 흐른 것은 그만큼 각 도시들이 미합중국의 수도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
  워싱턴 D.C.(이하 워싱턴으로 표기)가 수도로 결정된 배경에는 지리적 이유도 있다. 독립 당시 미국은 13개의 주가 길게 늘어선 모양이었는데, 워싱턴이 그 중간에 있는 도시였기 대문에, 다른 주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 실제로 워싱턴은 각 주의 대표가 연방 수도로 오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한편, 정치적인 고려도 해야 했다. 남부와 북부의 주에 특혜를 준다는 인상을 심어줘서는 안되었다. 워싱턴은 남부와 북부의 경계에 있어, 이곳을 수도로 정하는 것은 남북의 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이었다(사실 워싱턴은 남부 쪽에 더 가까이 있긴 하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이렇게 지리적, 정치적 이유에서 탄생했다. (340쪽.)

 

  워싱턴의 정치적 위상은 다른 주에 비해 특별하다. 우선 각 주에서 2명씩 선출하는 상원의원이 없다. 하원의원은 1명이 있지만 의회에서 투표권은 없다. 상원의원이 없는 까닭에 워싱턴 시민들은 자동차 번호판에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항의 문구를 붙이고 다니면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 대신 연방정부로부터 예산의 약 30%를 지원받는다. 1980년대부터 워싱턴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승격하는 것이 워싱턴 시민들의 숙원이었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됐다.
  워싱턴은 1957년 흑인 인구가 백인 인구를 넘어선 최초의 '블랙 시티'이기도 하다.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하던 1970년대에는 흑인 비율이 71%에 달했다. 워싱턴의 유권자들은 1964년 공화당 후보인 존슨 대통령을 압도적 표차로 몰아준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화당 후보를 선택한 예가 없는 유일한 지역구다. 미합중국의 수도이자 초강대국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의 특이한 일면이다. (341쪽.)

 

교정. 초판 1쇄

81쪽 11줄 : 백만의 마르코Marco millione -> (글꼴 다름)

266쪽 밑에서5줄 : 바우링Jhon Bowring -> 바우링John Bowring

288쪽 8줄 : 켈커타를 -> 캘커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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