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인물사담회 (EBS 〈인물사담회〉 제작팀, 영진닷컴, 2024.) 본문
역사책 읽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만, 역사책을 읽다보면 종종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역량이나 업적을 쌓았거나 신분이 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저는 대단한 역량도 없고 신분도 낮은 (직장인이란 현대의 노비...) 저는 그저 길바닥에 널린 범인凡人에 불과하죠. 역사책 속 인물과 역사책 바깥 현실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그래서인지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종종 야사野史 같은 것에 마음이 끌리고, 위대한 인물의 위대하지 않은 면에 흥미를 가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다룬 『인물사담회』는 꽤나 즐거운 독서경험을 선사합니다. 근대적 의미의 간호학을 정립시킨 인물이자 탁월한 행정가이기도 했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만병의 근원이 나쁜 공기라고 본 탓에(이런 주장을 미아즈마(miasma)설이라고 한다는군요.) 인도에서는 전염병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고, 무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이란의 서구식 세속적 근대화를 주도했지만 지나치게 사치스런 사생활과 대외의존적 정책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산 끝에 결국 이란의 종교국가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등 해당 인물의 명암이 부드러운 문체로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인물사담회』가 그러하듯 어떤 인물의 낯선 면을 발견하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우리에게 지적 즐거움을 줍니다. 몰랐던 사실과 의외의 사실을 알 때, 그래서 전보다 나의 지식이 좀 더 확장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우리는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니까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하지 않은 면을 안다는 것은 역사책 안팎에서 독자가 느끼는 허무함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도 나처럼 실패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무능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들도 결국에는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그저 역사 속에서 찾아낸 가십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지점에서 보다 깊은 질문까지 던져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보통의 사람에 불과한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 역사적인 결단을 내리고 역사적인 실천을 하고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 말이죠. 역사책 속의 인물을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타인의 자신을 깊이 파고 들어가 이해한 경험을 통해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리려 애쓰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조형근의 『우리 안의 친일』을 읽고 처음 시작했으며, 구체적인 표현은 작년 말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했던 기자회견 내용에서 빌어온 것입니다.)
방송에서는 이 책이 더 많은 탐구와 독서를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물사담회』는 독법에 따라서 훨씬 더 깊은 앎과 성찰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스낵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내용과 구성이니 가볍고 편하게 읽는 것에서 그친다 해도 그 역시 매우 훌륭한 독서 방법입니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책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독서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나는 전쟁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나자 제대로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여름 중간까지는 천황이 '신'이라면서 그의 사진에 인사를 하게 하고, 미국인은 인간이 아니라 귀신이나 짐승이라고 말씀했던 선생님들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는 완전히 반대로 말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수업 방식은 잘못된 것이었으니, 그 점에 대해서 반성한다고 우리들한테 제대로 말씀도 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황은 인간이고, 미국인은 친구라고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_《'나의 나무' 아래서》 중
오에는 갑자기 천황과 미국인에 대해 반대로 말하는 선생님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신뢰할 수 없게 됐을 테죠.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한다는 건 이중 국적자로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태어나면 얻게 되는 나라도 있지만 문학을 하는 순간 소설가는 문학이라는 나라에서도 살게 되는 것이니까요. 오에는 주어진 국적인 일본보다 본인이 선택한 문학이라는 나라에 더 소속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1권, 146~147쪽.)
그렇다면 제갈량은 왜 유비를 세 번이나 찾아오게 만든 걸까요? 제갈량에게 유비가 필요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수락할 수 없었던 겁니다. '삼고'는 당대 인재를 얻기 위한 단순한 관례였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제안이 들어와도 두 번 정도는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거절하는 문화였다는 것이죠. 삼고초려라는 연출을 통해 세 번은 찾아가야 얻을 수 있는 인재라는 명성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비는 3형제의 임협(任俠)으로서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을 겁니다. 유비 3형제는 의리로 뭉쳐 수평적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이 의리는 유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 사이에 강력한 유대감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임협만으로는 왕조를 창건하고 유지하기에 부족했죠. 무력을 앞세운 용병 진답에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창업 집단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었고, 군사적 연합을 넘어 정치적 신뢰와 지지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보다 구조화된 리더십과 체계가 필요했죠.
제갈량의 합류는 유비 집단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열쇠였습니다. 그는 군사 전략가일 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치적 깊이를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삼고초려 과정은 단순한 인재 등용을 넘어, 유비의 리더십과 국가 운영 방식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정치적인 의지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제갈량은 유비 집단에서 필수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며, 유비 집단이 용병 같았던 수준을 벗어나 국가 창설을 위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권, 206쪽.)
나이팅게일은 먼저 위독한 환자를 따로 분류해 집중 관리하는 구역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집중 치료실' 개념이 이때 처음 도입된 것이죠. 또 공급실 창고를 조사하고 물품 공급 장부를 적어서 재고가 바닥나지 않도록 관리했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침대와 매트리스를 제공하고 환자들이 일주일에 2번씩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조치했죠. 간호사의 역할 그 이상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냈습니다.
특히 '수학 천재'였던 나이팅게일은 웬만한 계산을 암산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통계 프로그램 없이도 데이터를 척척 뽑아냈다고 합니다. 또 타고난 소통의 달인이어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계속 의견을 내고 정부에 보고서를 보냈는데, 무려 80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하네요. 특히 이 보고서로 정부와 언론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텍스트가 아닌 그림으로 정리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프레젠테이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나이팅게일은 '비주얼 리프레젠테이션(Visual Representation)'을 보고서에 활용했습니다. 비주얼 리프레젠테이션은 자료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그래프가 예시로 들어갑니다. 나이팅게일은 특히 파이 차트(Pie Chart[하나의 원을 여러 영역 또는 조각으로 나눈 원그래프])의 원조로 불리기도 하는데, 병사들의 병원별 사망 건수와 사망 원인을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작성한 '장미 도표'가 대표적입니다.
과거 나이팅게일에게 통계학은 관심사나 취미에 불과했지만,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위대한 통계학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이런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으로 환자들의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1855년 겨울에는 입원한 환자의 52%가 사망했지만, 3~4개월 만에 20%로 떨어졌고 이후 전쟁터 사망률은 42%에서 2%로 급감했습니다. (...)
전쟁이 끝난 후 1859년, 나이팅게일은 웬만한 통계학자들도 되기 어렵다는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첫 여성 회원으로 임명됐습니다. (108~110쪽.)
교정.
1권 95쪽 밑에서2줄 : 튜터 -> 튜더
1권 177쪽 1줄 : 독인 -> 독일
1권 209쪽 1줄 : 비의 -> 비위
1권 213쪽 7줄 : 삼국 지연의 -> 삼국지연의
2권 218쪽 12줄 : 방품림 -> 방풍림
2권 220쪽 3줄 : 일하하면서 -> 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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