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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6호 (알렙, 2024.) 본문

잡冊나부랭이

서울리뷰오브북스 16호 (알렙, 2024.)

Dog君 2025. 2. 20. 21:28

 

  애초부터 포체투지와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 나아가 장애운동 전반의 목적이 대중들의 공감과 동정을 유발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안일한 착각일 수 있다. 분명 기어가는 행위는 활동 당사자들에게도 수치스러운 행위이지만 이들은 "생존을 위해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는 자기 몸을 내던지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전사들의 노래』, 108쪽) 이 권리 주장은 나아가 단지 기존의 권리 목록을 단순히 답습하면서 정부에 이를 반영할 것을 행정적으로 요구하는 차원의 주장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는 한 사회 내에서 권리를 생각하는 기존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며, 이를 국가와 동료 시민들 앞에서 정당화하려는 주장이다. 이들은 이동권과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등의 요구들이 단지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권이자 사회가 모두를 위해 의무적으로 마련해야만 하는 기본 구조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권리를 생각해 온 우리의 일상적 사고 방식의 변혁을 요구하는, 따라서 새로운 권리의 목록을 생산하고자 하는 급진적 주장이며 자신들의 주장이 사회가 정당히 받아들여야 하는 요구라는 것을 이들은 온몸으로 상연하고 있다. 자신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 신체적 존엄성을 내던지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 또한 동료 시민에게 기존의 권리 체계가 정당한지 논의해 보자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존엄성을 증명해 보인다. 기어가는 몸짓에 권리 주장이 체현된 이러한 장면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동정이 아니라 숭고다. 우리가 포체투지 장면을 바라보며 일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두려우면서도 낯선 당혹감은 이들 또한 권리의 정치적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느끼는 숭고함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이렇게 포체투지는 기어가는 행위의 의미가 단지 동정의 몸짓에만 국한되던 기존 시선을 깨트리고 정치적 주체의 숭고한 몸짓으로 이를 전용하는 전복적 행위가 된다. (김도형,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 - 『전사들의 노래』·『출근길 지하철』」, 10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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