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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대학이고 뭐고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냥 덜커덕 대학에 붙어버렸다. 별 생각 없이 본 수능에서 인생에 다시 없을 잭팟이 터졌고, 그 덕에 내신이고 논술이고 면접이고 없이 오직 수능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에 붙어버렸다. 우편으로 응시서류를 보내기만 했는데, 붙어버렸다. 팔자에 없을 것 같았던 서울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게 서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조차 세련된 서울 말씨를 구사하는, 그야말로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도시였다. 선배를 제외하고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녀석이 있었다. 재수를 했다고 했고, 눈에 띌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빨간 낙타에 어버버-가 되곤 했던 나는, 아 서울 애들은 다 이런가보다 했다. (고등학교는 의정부에서 나왔..
지인 중에 아직 싸이월드 블로그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 블로그 글을 볼 때는 Feedly를 이용하는데 언젠가부터 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사람들 참 바쁜가보다...하고만 있었다. 그러다 별 생각없이 블로그로 직접 가보니... 응? 그간 글은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뭐지 하고 슥슥 찾아보니 싸이월드 블로그가 RSS 기능을 꺼버린 모양이다. 아니 뭐여 그럼 그건 블로그가 아니잖아...하고 생각했는데, 이름도 '싸이홈'으로 바꼈네;;; (인터페이스도 많이 바뀌어 있다. 그것도 엄청 불편하게...) 싸이월드는 이제 RSS로 오가는 트래픽도 감당 못 하는 상황인가보다. 블로그의 시대도 이제 거의 끝나가는 이 판국에, 블로그의 일부 기능에 불과한 RSS의 트래픽도 감당 못 할..
그래, 요즘같은 겨울,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이 아니고... 오늘은 오꼬노미야끼 되겠다. 뜻하지 않았던 굴국 1승, 더더욱 뜻하지 않았던 김치지즈계란말이의 1패로 현재 스코어 1승 1패인 가운데, 세번째 도전은 오꼬노미야끼. 흔히 '오코노미야키'라고 표기를 많이 하지만, 뭐 나는 내 맘대로 소리나는 그대로 쓰겠다. 어쩐지 그래야 더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딘지 모르게 약간 욕 같기도 해서 발음도 잘 되는 것 같다. 그래, 오꼬노미야끼가 될지 야이개노미새끼가 될지 그래 한 번 해보자. 재료 (가격은 우리 동네 마트 기준...인데 영수증 잃어버려서 가격은 거의 생략) 오징어(2마리) : 4500원 - 오꼬노미야끼 한 판에 한 1/3마리 정도 들어간다. 계란 : 집에 있는 거 부침가..
1박 2일짜리 엠티를 가면 이튿날 아침 풍경이란 어디건 대개 일정하다. 하는 것도 그렇지만 먹는 것도 대개 일정하다. 대충 삼겹살에 소주 좀 빨다가 고기 다 먹고 나면 과자 좀 먹다가 새벽 정도 되면 소주 안주로 맥주 마시는 개꽐라의 경지에 도달하다가... 아침 해장은 당연히 라면이고. 하지만 솜씨 좀 있다 하는 고학번이 따라와주면 그나마 좀 메뉴가 다양해졌는데 그 때 꼭 나오는 메뉴가 계란말이. 후라이팬에 기름이야 엠티 기본 장착이고 계란에 소금이나 케찹만 있어도 꽤 고급 안주가 되는 계란말이. 내가 참 계란을 잘 말았다. 계란물 간은 못 맞춰도 계란말이는 잘 말았다. 계란물이 너무 흥건해서 이건 아무도 못 말아! 할 때도 난 말아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숟가락 2개만 주면 무조건 말았다. 식용유가 ..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아니 뭐 이런 노래 부르면서 굳이 신세한탄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대충 공익군대 다녀오기 전까지 확실히 우리집은 가난했다. 우리집만 그랬겠나. 그 동네가 얼추 다 고만고만했다. 역 뒤편으로 철길을 끼고 있는 동네였고 그래서인지 땅값도 꽤 쌌던 모양이다. 그 동네에서 1년 반 정도 살았다. 그 동네에서 학교 가는 길은 참 아스트랄했던 것이 건널목 없는 철길을 건너서(;;;) 허접한 시장통을 지나서(;;;) 사창가(근처)를 경유하면(;;;) 학교가 나왔다. 그 이야기는 좀 천천히 하기로 하고. 그 시장통이란데가 좀 웃겼다. 원래부터 시장이었던 것이 아니고 그냥 사람 다니는 길에 물건 파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 시장처럼 된 것이었..
작년 말에 아팠다. 좀 많이 아팠다. 그 한 달 사이에 죽을 수도 있다는 둥 장기이식을 해야 한다는 둥 온갖 흉한 말이 돌아다녔다. 2015년이 다 가도록 완전히 건강을 되찾지 못했고 결국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잘 먹기로. 이미 잘 먹고 있지만좀 더 격렬하게 잘 먹기로.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 쓰게 될 글들은15년째 자취중이지만제대로 하는 요리는 없는, 하지만 더 격렬하게 잘 먹기 위한, 남자 자취생의 요리분투기가 될 것이다.
1. 한 달 넘게 앓았다. 아니, 앓고 있다가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병가를 내고 직장도 쉬었고, 병원에도 3주 가까이 입원해 있었다. 병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멈춰있었던 것이 얼마만이더라. 아, 처음이구나. 2. 10월 말 정도부터 얼굴빛이 좀 어두워 보인다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했다. 그 때는 그냥 얼굴이 좀 탔나 보다 했다. 그러다 어느 주말에 친구 결혼식 때문에 잠시 고향에 다녀왔고 그 날 먹은 점심은 하나도 소화가 안 돼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 토해버렸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냥 몸살이 좀 심한가보다 했다. 3. 월요일에는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얼굴빛이 안 좋아졌고 나도 몸상태가 영 안 좋아서 가까운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니 간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초음파..
1. 괜히 울적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간 뭘 했는지도 모르겟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는 순간순간, 팔 한 쪽 정도를 잘라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생각도 든다. 2. 우울병이 도졌구나 싶다. 잊을만하면 늘 이렇다.
서해안 수산자원의 씨를 말리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지만, 정작 선장님께서는 "요새 비가 많이 와서 고기는 별로 안 잡힐 거에요"라고 시작부터 김 빠지는 소리. 몇몇 놈들은 배멀미로 골골대기까지 했고, 나는 낚시 시작하자마자 채비를 두 개 연속으로 잘라먹는 참사가 발생해서, 아 이거 뭐야... 했다. 그런데 ㅋㅋㅋ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가 막 낚이기 시작했다. 나 빼고 나머지 친구들 잡은 것 다 더해도 나보다 덜 잡은 듯 싶을 정도니까. 하다하다 바닥에 있는 가리비가 낚여 올라오질 않나, 어떤 놈은 낚시바늘이 입이 아니라 뒤통수에 꿰여서 낚여 올라오질 않나... 아, 의외로 낚시에 재능이 있구나 싶었다. 연신 고기를 낚아 올리자 친구들이 '이젠 고기 그만 낚고 아가씨를 좀 낚아야지'하고 축하해주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