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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만큼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 해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도 드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그 숭고함과 아름다움 덕분이겠지요. 이 무시무시한 도구들을 대령하자마자, 두 남자는 나를 붙잡고 거칠게 옷을 벗겼다. 말했던 대로, 내 두 발은 바닥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래드번은 나를 끌어당겨 벤치 위로 엎어지게 했고, 내 손목의 쇠고랑 위로 무거운 발을 얹고는, 손목 사이를 고통스럽게 바닥에 짓눌렀다. 버치가 노를 들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내 몸 위로 연거푸 타격이 이어졌다.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팔에 힘이 빠지자, 그는 매질을 멈추고 아직도 내가 자유인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고 나면, 가능한 만큼 아까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치고 미궁을 도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의 실 덕분이었습니다. 미궁 속으로 들어가면서 풀어둔 실타래를 다시 거꾸로 밟아나오면서 미궁을 탈출한 것이지요. 들어간 길을 그대로 복기할 수만 있다면, 제아무리 복잡한 미궁도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모니까의 『DMZ의 역사』는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의 역사를 다룹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영국이 남북 양측의 완충지대를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으로 비무장지대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한국전쟁에서 영국은 일단 확전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전략적 가치가 낮은 한반도 때문에 굳이 전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영국의 이해관..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알고 보니 의외로 어두운 면을 갖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사실 흔합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렸던 『독재자 뉴턴』이나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 외에도 그런 책은 많죠. 요 근래에 읽었던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도 우리가 존중해 마지않는 헬렌 켈러가 우생학을 지지했노라고 지적합니다. 그런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진취적인 분류학자인 동시에 폭력적인 우생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 먹고 찾으면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을 겁니다. 그간 우리가 존중했던 역사적 인물 역시도 결국에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인격적인 결점도 있을 수 있죠. 자신이 속했던 시공간으로부터 ..
문해력이 어쩌고저쩌고 말들이 많습니다만, 단군 이래로 요즘만큼 글을 많이 읽는 때도 없을 겁니다. 당장 우리의 일상이 SNS와 단단히 달라붙어 있고, 스마트폰으로든 컴퓨터 모니터로든 틈만 나면 뉴스 보고 커뮤니티 게시글도 보잖습니까. 이런 일상이 가능해진 것은 다 한글이 '활자화'된 덕분입니다. 그런데 한글을 '활자화'한다는 것은 단지 글자를 먹(잉크)으로 종이에 쓰던 것을 활자로 바꾼다는 정도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낱글자를 줄줄이 이어놓기만 하면 되는 알파벳이 불과 스물몇개 하는 활자만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무한히 조합해야 하니 (경우의 수가 11,172라던가요...) 이게 말처럼 간단할리가 없습니다. 김태호의 '한글과 타자기'는 그 어려운 일이 어떤 과..
연구자 열 중 아홉은 '역사의 쓸모'라는 제목에 위화감을 느낄 겁니다. '역사'와 '쓸모'를 연결시키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쓸모'라는 말은 '시장에서의 가치'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마련인데, 역사학을 논할 때 시장가치라는 잣대는 썩 좋은 도구가 아닙니다. 역사학(을 비롯한 기초학문들)이 겪고 있는 작금의 위기가 학문에 대한 시장화 압력에서 시작된 측면도 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역사'와 '쓸모'가 완전히 별개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쓸모도 없는 학문을 왜 공부하냐'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구요.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또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그게 취미생활과 뭐가 다를까요. 대학원 다닐 적에 자조적으로 했던 '노동으로..
10년쯤 전 지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정이 이어지면서 그 결심은 이루기 어려워졌지만 지금도 틈틈이 진주의 역사에 대해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곤 합니다. 제가 지역사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주요한 계기 중 하나는 1998년 진주문화원에서 펴낸 『진주이야기 100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공룡시대 화석 발견지부터 임진왜란과 3.1운동의 기억은 물론 현대사의 현장까지 100개의 키워드로 담아낸 진주의 역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진주에서 나고 자랐고 역사 공부를 직업으로 삼은 저조차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기에 지금도 종종 들춰보는 책입니다. 저만 이런 것도 아닙니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숨겨진 명저로 꼽히지요. 하지만 간행되고 시간이 많이 지..
'서울리뷰오브북스' 11호를 읽었습니다. 작년 가을호를 이제서야 읽었네요;; 고백하자면,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읽으면서 살짝 피로감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서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피로감 같은 것이 있는데, 서리북도 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필자 섭외나 책 선정은 물론이고 글의 구성에서도 그런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호마다 기획이 충실해서 독자로서 참 기쁩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덕후라서 그런가, 이번에도 역시 박훈의 역사책 서평에 가장 먼저 손이 갑니다. 갑오개혁 관련 연구서라면 저도 대학원 과정 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오래된 책이라는 말인데, 신간 위주로만 짜여진 서평 문화에 은근히 거부감이 큰 저로서는 일단 반가운 마음..
저는 이 책이 이토록 가독성이 좋은 것이,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구성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흡사 드래곤볼 같은 구조라고나 할까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피콜로, 프리저, 셀, 마인 부우의 순서로 점차 강해지는 적을 상대했던 것처럼, (이런 구성/장르를 '배틀'물이라고 한다지요) 이 책은 린나이우스가 분류학을 정립시킨 이후 '진화의 계통'을 들고 나온 진화론, 각 생물개체의 특성을 수량화한 수리분류학, DNA를 통해 진화의 계통과 생물의 분류를 추적하는 분자생물학, '진화상의 새로움'에 주목한 분기학 등, 차례로 강적을 만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그 결과도 드래곤볼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의 드래곤볼은 프리저(1단계)의 전투력이 53만 정도였고 이후에도 뭐 대충 그 언..
저는 역사학 연구자가 늘상 의식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의 본질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에 재현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재현의 결과인 글이 세세만년 남는 것이라면, 연구자는 한순간도 윤리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내 생각과 내 글이 누군가를 대상과 수단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 역시도 나와 똑같은 인격체이자 동료시민이라는 점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위험은 없는지, 늘 긴장해야 합니다. 사회적 참사 생존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또 연대했던 보건학자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는 그러한 긴장이 가득합니다. 누구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를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지요.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과거가 남긴 흔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료도 과거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료를 통해 과거를 살피는 것은 흡사, 안주접시에 담긴 북어포를 보며 명태 어군이 헤엄쳐 다니는 동해바다를 상상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학 연구자는 늘 사료에 목이 마르지요. (반대로 가장 기쁠 때는 사료 찾았을 때 ㅋㅋㅋ) 기본적으로는 문헌으로 남은 것이 가장 주된 사료가 되겠습니다만, 역사학 연구자는 비석에 새겨진 글귀나 구전된 이야기, 땅에 묻힌 유물과 유적 등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무엇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역사학 연구는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더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