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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는데, 미등록이주민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미등록이주아동이라고 하면 그저 불법체류자가 낳았기 때문에 교육이나 의료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은 한참이나 부족하고 왜곡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등록이주아동이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까지라도 다닐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게 아닙니다. 미등록이주아동은 그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제 주변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겁니다. 하긴, 제가 무심코 쓴 '..
이 책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무슨무슨 투쟁이니 무슨무슨 협의회니 하는 돌출적인 사건이나 단체, 사람의 이름들보다는 사회 전반을 장악한 폭압적인 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이 대항적인 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좀 더 주력하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민중'이란 국가가 호명한 '국민'에 대항하여 역사 진보의 주체이자 독재에 맞선 민주화담론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때 86세대 때리기가 거의 온라인 민속놀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80년대 학번으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가 지금은 정치권에 들어가 '꼰대'가 된 '86세대'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게 '들불처럼' 번졌죠. 저 역시도 누구보다 86세대의 한계..
업계 격언으로 '(글) 생산력은 남아있는 마감 기한과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격언에 격하게 공감하며 사는, 그래서 가끔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일부러 마감의 지옥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어넣기도 하는 모든 글쟁이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마감이 다만 개인의 일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의 마감은 타인의 마감과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글만 해도 그렇다. 내가 마감 기한을 어기는 순간, 다른 작가님들이 아무리 기한 안에 글을 마감해도 이 책은 완성될 수가 없다. 만약에 출간일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데드라인에 맞춰 허겁지겁 마감을 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에디터와 디자이너의 야근으로 이어질 것이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일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 역사의 첫 몇십 년을 다룬 이 책의 문제의식은 확고합니다. 저자는 예수 사후 초기 예수운동에서 작금의 기독교 공동체가 지향할 모델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 해방신학을 공부했고, 누구보다 작금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은 저자이기에 그런 문제의식은 누구보다 확고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찾아낸 1세기 예수운동의 미덕은 개방성과 다양성, 평등함 같은 것들입니다. 당대의 역사적 조건이나 다른 종교에는 없는 몇 가지 특징들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개방, 다양, 평등 같은 가치가 준수되었기에 예수운동은 기존 종교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고, 나아가 그들을 연대하게 하고 헌신하게끔 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이데올로기나 종교에서 지금은 없는 ..
이 책의 원제는 'Carbon Colonialism'입니다. 『탄소 민주주의』와 『탄소 기술관료주의』에 이은 '탄소 연독連讀'이네요. (그런데 '연독'이란 말이 있긴 하나...) 첫 두 책이 과거의 역사를 다룬 것에 반해 이 책은 현재의 탄소배출과 기후위기의 불평등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첫 두 책보다 훨씬 명징하게 자기 주장을 피력합니다. 기실 '기후위기'라는 소재는 이제 별달리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산업화시대에 생태주의는 꽤나 공격적인 사회운동의 일부로 이해되었고, 기후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고 말하는 것도 급진적으로 의제를 설정한다는 느낌을 풍겼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듭니다. 지극히 보수적인 윤석열 정권(잘 가라)조차도 기..
농담 반으로 말씀드리자면, 정병준 선생님은 책 길게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시죠. ㅎㅎㅎ 분야가 현대사이다보니 시간적 범위도 불과 몇 년 정도에 불과한데 아니 그걸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써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량을 만드시나 싶습니다. 최근에 내시는 책들은 그나마 '정상적인' 분량으로 나오나 싶었는데, 이 책이 당초 『김규식 평전』의 4부로 기획되었다는 언급 부분에서는 저도 순간 휘청-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ㅋㅋㅋ 하지만 이어 진담 반을 보태자면, 엄청난 분량은 정병준이라는 역사학자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비교적 일찍 미국(특히 미국국립기록관리청NARA) 소재 한국사 자료에 주목한 이래로 방대한 사료를 성실하고 꼼꼼하게 활용해 온 저자의 태도는 역사학자로서의 모범이라 하겠..
어느 자리에서 다른 분의 강의나 발표를 들을 때 탕수육은 종종 '다른 건 모르겠고, 저 사람이 저 주제를 참 좋아하긴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 전공이 아닌지라 발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발표자의 말투나 표정에서 그이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냥 직업으로서의 관성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온전한 애정과 즐거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거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이유 없이 저도 막 힘이 나는 것 같고 즐겁고, 뭐 그렇습니다. 탕수육은 미술사에 대해서는 정말로 문외한입니다. 미술에 대해서도 정말 아는 것이 없다시피 하고 미적 감각도 거의 0에 수렴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 책에 ..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이것을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직업(공부)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며 앎을 키워간다는 것이 좀 고상하고 대단한 어떤 것(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남들 앞에서는 대단한 것 배웠다고 으스대며 세상의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남들 안 보이는데서는 "홍진에 썩은 명리" 탐하는 것은 똑같습디다. 그 격차에 힘들어한 끝에 결국에는 내가 이걸 애초에 왜 시작했더라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구요. 물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어딜 가든 사람 사는 세상은 결국 다 비슷하더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었습니다만 ㅋ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읽고 쓰는 것과 제가 하는 것의 간극을 최대한..
종종 강의를 나갑니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기업체 등 불러주기만 하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다 갑니다. (심지어는 아침 라디오에서 고정 코너를 몇 달 정도 맡았던 적도 있죠. 8분 생방송 하려고 해도 안 뜬 새벽에 왕복 3시간 거리를 매주...) 이 때 청중은 역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거나 역사와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탕수육은 그런 청중 앞에 설 때마다 고민합니다. 역사를 몰라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청중에게 두어 시간을 꽉꽉 채워서 갑오농민전쟁 주도세력의 사회경제적 지향이나 평안도 우물 갯수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 말이죠. 간단한 사실관계는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수월히 검색하게 된 것은 벌써 한참 전의 일이고, 이제는 DBPia에서 논문 내용도 ..
빅터 샤우의 『탄소 기술관료주의』와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탄소에너지 이후를 상상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또 자연스럽게 석탄산업은 어떤 식으로 퇴조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골라들었습니다. 1960년대 일본의 석탄산업은 유례없는 사양의 길을 걸었습니다. 1960년도에 682개였던 탄광 수는 1973년도에는 57개, 같은 기간 탄광 기업은 205개에서 23개로, 석탄 생산량은 1961년 5,541만 톤에서 1973년도에는 2,093만 톤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석탄산업에 관련된 거의 모든 수치들이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 탄광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경제도 크게 위축돼서 이이즈카시(飯塚市)나 유바리시(夕張市)는 비슷한 기간동안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