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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 부산 (유승훈, 가지, 2017.)

Dog君 2019. 2. 20. 10:48


1.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시리즈의 첫번째(...로 알고 있다.). 하나의 도시를 좀 더 깊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이런 기획은 언제나 반갑다.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2. 그리고 결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글 곳곳에 깃들어 있는 민속학자만의 따뜻한 시선. 개체에 대한 관심을 자칫 놓치기 쉬운 역사학으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막 그렇다.


  부산 서구 아미동은 ‘비석마을’로 알려져 있다. (…) 예전에 아미동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 

(…) 당시만 해도 마을은 까치고갯길 아래쪽까지 조성되고 일본인 묘지가 있는 산비탈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 많은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묘역까지도 집터로 개간되었다. (…) 그래도 아미동 사람들의 마음만은 따뜻했다. 비석마을에서는 제사상을 차릴 때 밥 한 그릇을 더 올리는 관습이 있다. 묘지 위에 집을 지어 고인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179~181쪽.) 


  꿀꿀이죽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모아 끓여서 만든 것이다. 피란 시절 국제시장 근처에는 꿀꿀이죽을 파는 죽집들이 있었다. 음식 재료가 미군과 유엔군으로부터 나왔다고 하여 ‘유엔탕(UN湯)’이라고도 불렀다. (10쪽.) 


오해를 막기 위한 TMI. '유엔탕'이라는 이름은 대체로 부대찌개를 지칭한다. '존슨탕', '케네디탕' 같은 이칭異稱도 있는데, 명칭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조금씩 바뀐 것이라고 보면 얼추 맞다. 익히 알다시피 '꿀꿀이죽'과 '부대찌개'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전자는 잔반을 끓여서 만든 것이고, 후자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이다. 부대찌개를 자꾸 잔반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꿀꿀이죽을 의미할 수 있고, 저자 역시 그런 점을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오독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덧붙이는 TMI.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 쪽에 전차 한 대가 서있다. 지금은 멈춰 있지만 1968년까지 부산을 씽씽 달리던 노면 전차이다. 동아대 설립자인 고(故) 정재환 박사는 안목이 깊었다. 석당박물관에 전시된 빛나는 고미술품들은 물론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근대 교통수단까지 수집했다. 전차를 퇴물로 여기던 시대에 끈질기게 남선전기주식회사(현 한국전력공사)에 요청해 전차 1량을 기증받았다. 이것은 곧 부산에 남아있는 유일한 전차로 부상했고, 2012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494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에 근대 전차가 달리기 시작한 때는 1915년이다. (…) 

  한국전쟁 시절에 부산 전차는 낡고 병들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1952년경 미국으로부터 원조 물자로 전차 40량을 지원받아 서울과 부산에서 운행했다. (…) 전차는 곧 ‘곰보딱지’라 불리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만드는 주범이자 자동차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부산시는 전차 궤도를 뜯어달라고 남선전기주식회사 측에 계속 요청했다. 결국 1968년 전차가 폐지되어 부산 도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73~174쪽.) 


오해를 막기 위한 TMI 하나 더. 남선전기는 조선전업과 경성전기와 통합되었다. 1961년의 일이고, 그 통합을 거쳐 탄생한 것이 한국전력이다. 혹시나 1968년에도 남선전기가 있었을 것이라 오해하는 독자가 있까 싶어서 덧붙이는 또 하나의 TMI.


  얼핏 보기에 조방과 낙지의 결합은 생뚱맞다. 낙지 산지로 유명한 전북 무안과 결합한 것도 아니요, 낙지 음식 커뮤니티로 알려진 무교동과 조합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조방을 그저 음식점 상호이겠거니 생각한다. 만약 조방이 ‘조선방직회사’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조방과 낙지의 결합이 더 궁금해질 것이다. (…) 

  한데 부산 동구 범일동의 ‘조방 앞’에 가보면 조방은 온데간데없다. 1968년 조선방직 공장을 완전히 철거하고 시장과 아파트, 공공기관 등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선방직은 1917년 야마모토를 위시한 일본인들이 설립한 회사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기계로 면방직을 하는 공장이었고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가장 큰 회사였다. (…) 

 공교롭게도 조선방직이 말기로 치달을 무렵 낙지볶음의 여명기가 시작되었다. 조방 앞에서 곱창과 된장찌개를 파는 한 식당에서 손님의 권유로 낙지볶음을 출시한 것이다. (…) 이는 조방을 비롯한 주변 공장 노동자들에게 좋은 술안주이자 한 끼의 식사였다. 그뿐이랴.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에 원기를 돋우는 보양 음식이 되었다. 조방낙지가 유명해지자 주변에 여러 식당이 모여 낙지볶음 거리를 형성했다. 하지만 상전벽해다. 이제 조방은 사라졌고 그 거리도 귀금속 골목으로 바뀌어 낙지 음식점이 몇 집만 남아있다. (…) (74~76쪽.) 


  이밖에도 부산 원도심권에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근대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 토성동에는 다부진 몸체와 굵은 선이 믿음직스런 남선전기 사옥(등록문화재 제329호)이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있다. (…) (157쪽.) 


(…) 소설가 김동리도 피란민들 틈에 끼어 부산에 왔다. (…) 그에게 유일한 낙이 생겼다. 바로 동료 문인들이 꿀벌처럼 잉잉거리고 있는 밀다원(蜜茶苑) 다방에 가는 일이었다. 밀다원은 부산 광복동에 위치한 건물 2층(밀다원 다방 건물은 중구 광복로 68번지에 있었다. 현재 광복동 패션거리의 이니스프리 남포 2호점 자리로 추정된다.)에 있었는데 늘 문인들로 북적거렸다. 그 아래층에 문인과 예술인들의 전국모임인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 부산의 다방은 우후죽순으로 늘어 전쟁 전에 47개소에 불과하던 것이 피란수도가 끝날 즈음에는 123개소에 달했다. 

  환도 이후 김동리는 피란수도의 경험과 밀다원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소설 《밀다원 시대》(1955)를 발표했다. (…) (175~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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