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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휴머니스트, 20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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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휴머니스트, 2017.)

Dog君 2019. 4. 15. 00:28


1-1. 오항녕 선생님의 최근 발표 논문 중에서 한 부분을 심재훈 선생님이 자신의 담벼락에 옮겼고, 그리고 얼마 후 본인의 경험을 담은 글을 하나 더 추가하였다.


https://www.facebook.com/jaehoon.shim.399/posts/2332677330086753

https://www.facebook.com/jaehoon.shim.399/posts/2338946462793173


1-2. 공감하는 바가 매우 크다. 평소에 생각해 오던 것이기도 하다. 특히 내가 일하는 직장이 ‘국사’를 내걸고 있는 곳이기에 더 그렇다. (다만 이에 관해서는, 내부에서도 여러 움직임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몇 년 전에 직장에서 역사학계의 여러 학회 관계자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외국사’(부적절한 표현인 것을 알지만, 편의상 잠정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니 양해해주시길...) 전공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는 업무 범위를 한국사로만 한정짓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내 직장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료의 조사 및 수집 업무인데, 개인 연구자(혹은 민간 연구단체)로서는 이 업무를 지속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국가기관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한국사 연구자만의 어려움일리는 없잖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외국사’(거듭 죄송한 표현...) 연구자의 그러한 요구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마 장기적으로 내 직장도 그런 식으로 업무범위를 점차 넓혀가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현실화시키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내 또래의 젊은 동료들과 함께 이런 문제의식을 점차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싶다.


1-3. 서론이 너무 거창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유럽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 주경철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재미있다. 일면식도 없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학부 때부터 그의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다.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일단 재미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3-1. 재미 말고 의미라는 측면에서도 할 말이 좀 있다. 사실 이 책이 아주 새로운 관점이나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가 공부를 게을리 해서 잘 몰랐을 뿐이지 ㅎㅎㅎ) 이 책에서 제시하는 ‘중세’나 ‘근대’의 개념 역시 전통적인 기준에 충실하다. 따라서 서양사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런 책이 딱히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3-2. 하지만 나처럼 학부 시절에 몇 자 주워들은 정도 뿐인, 따라서 보통의 독자와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에게는 입문서로서 정말 가치가 있다.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중세유럽의 정치사를 대략적으로 훑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관습적으로 무감하게 사용했던 ‘중세’와 ‘근대’ 같은 말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하기 때문이다. 잔다르크와 헨리8세를 통해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의 길항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카를 5세의 고군분투를 보며 중세적 통치 시스템의 몰락을 목도하게 되며, 프랑수아 1세와 오스만 제국의 동맹을 통해 근대적 국제관계의 태동을 보고, 코르테스와 말린체의 이야기에서 근대의 식민지적 폭력에 대해 곱씹게 되는 식이다.


4. 그렇게 얻은 통찰이 유럽 이외 지역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당장 한국사에서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는 ‘자본주의 맹아’니 ‘자생적 근대’니 하는 등등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 다시금 찬찬히 곱씹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 몇 년 동안 하도 포스트 어쩌고 탈 저쩌고 하는 말들 때문에 정작 애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가끔 헷갈리고 그러는데, 그럴 때는 이런 책 읽으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5. 물론 (다시금 말하건대) 이렇게 어려운 시대구분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재미로만 읽어도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 아래의 쪽수는 내가 읽은 전자책 기준이다. 전체 482쪽이었다. 


  다시 묻노니 잔 다르크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애국자? 성녀? 마녀? 신비주의자? 성 정체성 이상자? 페미니스트? 그 모두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다. 15세기에 프랑스 변경 지역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어린 소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백년전쟁을 거치며 오늘날의 프랑스, 오늘날의 영국이 만들어져갔다.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정치와 종교가 함께 작동했다. 잔 다르크라는 소녀로 인해 이 격동의 역사에 신비가 더해졌다. (70쪽.)


  미리 말하자면 선량공 필리프와 그의 아들의 ‘성공’이 아니라 ‘패배’가 근대국가 건설에서 핵심 요인이다. 만일 이 가문의 꿈이 실현되었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프랑스보다 영토가 작은 부르고뉴라는 이름의 국가가 유럽 중앙부에 들어서서 이후 유럽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부르고뉴 가문의 라이벌인 프랑스 왕실이 여러 지방 세력을 누르고 중앙 권력을 강화해갔다. (102쪽.)


  사실 당시 사정으로 보면, 이 이상 영토를 확장하기는커녕 현재의 땅을 제대로 지키는 것조차도 지극히 힘든 일이었다. 제국의 영토는 광대하지만 분산되어 있고 제각기 독립성이 강해서 통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독일 지역의 경우 그 안에 7개 선제후령, 33개 독일계 주권 왕조, 약 30개의 비독일계 왕조, 107개의 백작령, 4개의 대주교령, 46개의 주교령, 63개의 수도원령, 13개의 수도원, 85개의 자유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151쪽.)


  이 시기에는 국정을 운영할 관료제가 발달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국정 전반을 도와줄 ‘비서’를 한 명 두었다(비서라고 해도 오늘날 국무총리 수준의 관료이다). 그리고 주요 현안들을 처리하는 몇몇 위원회를 두고 명망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겨우 이런 수준의 조직으로 제국을 운영한다는 게 어불성설로 보일 수 있다. 핵심은 각 지역의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둔 채 과거 방식대로 돌아가도록 두고, 다만 그 제도의 수장만 장악한다는 점이다. 제도 전체를 잘 돌아가게 하려면 황제가 제국 전역을 순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동선을 보면 쉬지 않고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돌아다닌 것을 알 수 있는데, 평생 길 위에서 지낸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아무리 카를이 전심전력 통치에 매진한다 해도 광대한 영토 전체를 홀로 다스린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친족들에게 일부 지역의 통치를 위임했다. 특히 동생 페르디난트에게 많은 권한을 양도하여 독일-오스트리아 지방을 담당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국은 크게 에스파냐 지역과 동유럽 지역으로 서서히 분할되는 과정을 밟았다. (155~156쪽.)


(…) 기독교권 군주가 (…) 이슬람 국가와 정식 외교ㆍ군사 관계를 맺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를 압박하기 위해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오스만 제국 및 이슬람 해적과 제휴한 것을 지칭-옮겨쓴이) 이는 세기의 스캔들이 되어 전 유럽의 양식 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근대적 국제관계가 이런 식으로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173쪽.)


(…) 국왕은 임종하기 직전에 메리에게 ‘사랑하는 당신께 내 죽음을 새해 선물로 주리다Mignonne, je vous donne ma mort pour vos etrennes’라고 말해 아재 개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204쪽.)


(…) 종교 문제에서 잉글랜드 국왕은 더 이상 교황의 지배하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 최고 존재라고 선언하면 된다. 교황의 파문을 두려워할 필요도, 교황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218쪽.)


  종교를 장악한 국왕은 신민들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지배하는 절대군주가 되었다. 국왕의 명칭 변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1509년에는 ‘신의 은총에 의한 국왕 헨리 8세’로, 1547년에는 ‘신의 은총에 의한 국왕, 신앙의 수호자이며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교회 영토의 수장인 국왕 헨리 8세’로 불렸다. (234쪽.)


  저명한 역사가 제프리 엘턴Geoffrey Elton은 특히 1530년대에 주목하여 이즈음 정치·행정 면에서 혁명이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소위 튜더 혁명론이다. 토머스 크롬웰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조치들로 인해 중앙정부의 관료제가 발전하고 전국적 행정 체계가 만들어졌으며, 다시 말해 근대국가로 발전해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들은 그보다는 점진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구식의 왕실, 궁정, 파당 등이 잔존해 있었다는 것이다. (237쪽.)


  게다가 메스티소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 혁신적 인종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에서 너무 비천한 대접을 받았다. 메스티소를 구성하는 요소 중 유럽적인 것이 우월한 반면 원주민적인 것은 열등한 요소로 취급받곤 한다. 따라서 말린체는 열등성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멕시코가 국민국가로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히 주도권을 쥔 것은 크리오요criollo(유럽계 아메리카인)이며 이들에게 원주민은 열등한 타자에 불과했다. 그럴진대 백인 정복자 코르테스와 원주민 노예 말린체의 결합은 ‘유럽 백인 남성성’의 우위의 상징을 표현하는 데에 유용했다.

  이제 역사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는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면서 만들어진 식민제국의 한 조각도 아니고, 아메리카가 침략자를 이겨내면서 형성해낸 구제국의 계승자도 아니며, 신대륙과 구대륙의 두 문명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국민국가다. 분명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이런 멋진 표현이 역사의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둘의 결합 과정이 지극히 폭력적이고 부당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멕시코, 더 나아가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이런 고통스러운 물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있다. 그 출발점에 코르테스와 말린체가 있다. (351~352쪽.)


  “너희들 중에 한 놈이 배신 때린다.” 이 말에 모두들 경악한 표정을 짓거나 기절하려 한다. 예수 왼쪽의 여성스런 이는 ‘예수의 숨겨진 연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 사도 요한이다. <최후의 만찬>, 1495~1497. (373쪽.)


(…) 1516년에 에라스뮈스가 편집한 그리스어본을 저본으로 하여 그야말로 생생한 생활 독일어로 옮겼다. 번역 원칙은 시장 사람들, 가정주부들,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터가 사망할 때까지 이 성경은 10만 부 정도 판매되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 독일어 성경이 표준 독일어의 기반이 되었고, 후일 독일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40~441쪽.)


교정.

3쪽 : 대항의 시대 -> 대항해 시대

34쪽 그림 설명 : 샤를 만나러 -> 샤를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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