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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일기 4 - King's Day 본문

잡事나부랭이

네덜란드 일기 4 - King's Day

Dog君 2019. 5. 6. 00:30


  네덜란드의 가장 큰 공휴일은 King's Day다. (네덜란드어로는 Koningsdag. 발음은 [코닝스다흐]라고 하더라...) 현 국왕인 빌럼-알렉산더르Willem-Alexander가 2013년에 즉위한 후부터는 (2014년부터) 4월 27일이다. 왕의 생일이기 때문에 왕이 바뀌면 King's Day 날짜도 바뀌고, 국왕이 여성이면 이름도 Queen's Day가 된다.


  부활절이니 추수감사절이니 하는 보통의 명절과는 느낌이 좀 다른데, 경건한 느낌보다는 즐긴다는 느낌이 강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그 날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주택가에서는 필요 없는 옷가지나 가재도구 같은 것들을 내놓는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따로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잘만 하면 쓸만한 물건을 싼값에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시내 중심가는, 뭐랄까, 중심가 전체가 거대한 클럽이 된다. 에이 뭐 모르겠고, 오늘 하루는 허리띠 끌러놓고 질탕하게 놀아보자! 는 분위기인데, 네덜란드의 상징인 오렌지색의 옷과 악세사리를 하나씩 걸친 사람들이 한 손에는 술잔, 다른 한 손에는 담배(혹은 마리화나)를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우고 하루 종일 웃고 노래하며 떠들고 논다.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닫는데, 맥주를 잔뜩 마신 사람들이 화장실 좀 쓰게 해달라고 귀찮게 하는 일이 엄청 많아서란다. 술집은 파티를 여는 경우가 많다.



  저녁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풀린 눈으로 (술에 취한건지 마리화나에 취한건지)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15년쯤 전 대학 대동제 때 하던 과주점을 확장한 느낌이랄까.


 나는 혼자서 돌아다니는 데다가 그런 것을 즐길 줄도 모르니 그냥 핫도그나 하나 사먹는 걸로 혼자 기분을 냈다. 노점에서 핫도그를 주문하면 그냥 데운 빵에 소시지만 하나 끼워주는데, 각종 토핑과 소스는 자기가 알아서 취향껏 넣고 뿌려서 먹게 해준다. 그런데 나는 이런 핫도그를 즐기지도 않기 때문에 (한국에선 핫도그는 튀긴 건데 말입니다...) 그냥 모든 토핑 다 넣고 소스는 나에게 친숙한 케첩과 머스터드...



  이미 오래 전에 민주공화정을 천명했던 한국인의 눈에 2019년에 여전히 국왕의 생일을 요란스럽게 챙기는 네덜란드인의 모습은 좀 낯설다. 더욱이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잖은가. 그런 사람들이 중세봉건제의 잔재에 열광하는 모습이라니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은 유독 왕가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이끌었던 빌렘 판 오라녀Willem van Oranje와 그의 가문인 오라녀-나사우Oranje-Nassau 가문에 대한 역사적 애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왕가에 대한 네덜란드인의 애정을 이야기하려면 저 멀리 카를 5세(1500~1558)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카를 5세는 유럽사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금수저였다.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와 아버지인 미남공 필리프를 통해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대를 물려받았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유럽의 최강대국 중 하나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그리고 어머니인 광녀(狂女 맞다...) 후아나는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사이에서 나온 무남독녀였으니 자연스럽게 스페인 왕국과 그 식민지까지 물려받았다. 거기에 더해 할머니인 부귀공 마리는 부르고뉴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였기 때문에 부르고뉴 공작령도 물려받았다.


  땅만 넓은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 때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로마가 아닌 독일에서 대관식을 했는데, 이것은 신성로마제국이 더 이상 로마교황청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 뒤를 이은 카를 5세 역시 로마 교황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세속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카를 5세는 여러모로 중세 유럽이 최강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카를 5세는 중세 왕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관료제와 중앙집권체제 대신 지방권력의 수장을 느슨하게 묶는 중세적 방식으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단지 비서(물론 총리에 가깝지만) 하나만을 두고 만기친람해야 했던 카를 5세의 방식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결국 카를 5세를 마지막으로 그의 영토는 곧바로 분할되었다. 독일 지역은 동생 페르디난트 1세가, 스페인 지역은 아들인 펠리페 2세가 통치하게 되면서 두 지역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이 때의 영토분할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과 독일이 탄생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독일과 스페인으로 깔끔하게 분할이 됐으면 모르겠는데 어찌된 일인지 독일 옆에 붙은 네덜란드는 페르디난트 1세가 아닌데 펠리페 2세의 몫이 되었다. 네덜란드 지역은 일찍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한 알짜배기 영토였는데, 펠리페 2세는 삼촌인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감투를 양보하는 대신 이 지역을 확보한 것이다.


  문제는 종교였다. 펠리페 2세는 독실한 구교도였던 반면, 네덜란드 지역은 칼뱅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신교도의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 신앙심이 너무 독실했던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의 신교도를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점에, 네덜란드의 국부(國父) 빌렘 판 오라녀(Willem van Oranje, 1533~1584)가 등장한다. 


  빌럼인지 빌렘인지, 오라녜인지 오라녀인지, 한국어 표기가 제각각인 빌렘 판 오라녀는 본래 나사우-딜렌부르크Nassau-Dillenburg라는 작은 가문 출신이었다. 그냥 그 가문대로 살았다면 보통의 시골귀족으로 한 생을 마쳤겠지만 그렇게 별 볼 일 없이 살 팔자가 아니었는지, (될놈은 어떻게 해도 된다.) 오라녀Oranje 가문의 사촌 르네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오라녀 가문의 방대한 영토를 통째로 넘겨받게 되었다. 정치력이 남달랐는지 아니면 성격이 좋았는지 뭐 암튼 나는 잘 모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잘 작용한 결과, 빌렘은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펠리페 2세의 신교도 탄압은 그 와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신교도인 네덜란드인은 이에 맞서 독립을 얻기 위해 스페인에 대항해 싸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빌렘 판 오라녀가 자연스럽게 저항의 구심점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빌렘 스스로는 애초 독실한 구교도였다고 하고 소꿉친구 사이였던 펠리페 2세와 굳이 대립각을 세우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카를 5세 재위 시절에 그의 왕실에서 펠리페 2세와 함께 자랐다.) 펠리페 2세가 가혹하게 신교도를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아서 침묵공(De Zwijger)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니까. (의도된 침묵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굳이 어떤 일을 나서서 맡지는 않지만 소임이 일단 주어졌을 때 그것을 굳이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해내는 사람.


  빌렘이 딱 그랬던 모양이다. 비록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는 차이가 있었고 (전쟁이 격화된 후에 칼뱅주의로 개종했다) 소꿉친구인 펠리페 2세와도 맞서야 하는 일이었지만, 빌렘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빌렘은 몇 차례의 군사적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 끝에 스페인 군대를 물리치고 지금의 네덜란드가 만들어지는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400년이 훨씬 넘게 지났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국부國父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오라녀 가문의 상징색인 오렌지색을 기꺼이 국가의 상징으로 인정하고도 있고.


  왕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네덜란드인을 보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왕가를 생각하게 된다. 저항의 구심점 역할을 하다 끝내 암살까지 당한 빌렘과 그의 가문은 이후에도 계속 네덜란드인의 저항을 독려했다. 반면 한국의 왕가는 어땠는가.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에 대한 고종의 집착이 망국의 여러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망국 이후에도 저항은커녕 제 지위를 그대로 인정받으며 식민통치의 꼭두각시 역할에 머무르고 말았고. 독립운동이 일찍부터 민주공화정을 천명했던 것이, 그런 왕가에 대한 실망감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오렌지색이 된 것 역시 왕가인 오라녀 가문과 관련이 있다. 오라녀Oranje는 오렌지색(주황색)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oranje와 철자와 발음이 꼭 같은데,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라녀 가문은 오렌지색(주황색)을 상징색으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색깔 이름으로서의 ‘oranje’와 가문 이름으로서의 ‘Oranje’는 철자와 발음이 같을 뿐, 엄밀히 따지면 아무런 연관이 없다. 색깔 이름으로서의 ‘oranje’는 당연히 과일인 오렌지에서 왔다. (현대 네덜란드어에서 oranje는 색깔 이름으로만 쓴다. 과일 오렌지는 sinaasappel이라고 쓴다. 참고로 sinaasappel을 직역하면 '중국사과'라는 뜻이 된다. 영어의 madarin과 비슷한 맥락이다.) 오라녀Oranje 가문의 이름은 남프랑스의 도시 오항쥬Orange에서 온 것이고, 다시 오항쥬라는 도시 이름은 켈트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 아라우시오Arausio가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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