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영국 일기 1 - 雜感 본문

잡事나부랭이

영국 일기 1 - 雜感

Dog君 2019. 8. 20. 04:00


타고난 눌변이다.

특히 임기응변이 잘 안 되는 편이어서 미리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면 더 말이 꼬인다.


낯가림도 심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잘 없다.


인생의 첫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런 성격을 고치려고 애썼다.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연극을 했고, 일부러 사람도 많이 만났다.


사람 성격이라는 것이 의외로 쉽게 바뀌는 것이라서, 그런 식으로 의식적으로 두 학기 정도 살고 나니

말수와 말주변이 꽤 늘었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간혹 들었고, 달변이라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났다.


낯가림이 심한 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둘 모두 내 인격의 일부가 됐다.


친한 사람을 만나면 수다 떨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동시에 가급적이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을 때는 거의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연고가 없는 도시에 살았던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말과 문화가 낯선 외국에서는 특히 말수가 더 없어지는 것 같다.

몇 달 뒤면 떠날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그렇다. 굳이 적응할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

(누군가와 불편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영어가 능숙하지 않기도 하고.)


이웃에 사는 지인을 만나거나 한국에 전화할 일이라도 없으면

하루 종일 서너 마디만 말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아카이브에 있는 매점이나 숙소 앞 카페 점원한테 하는 말이 전부.


“안녕하세요."

“라떼 보통으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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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본 일도 별로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내가,

벌써 5개월째 외국에 머무르고 있다.


한 때 제국이었던 나라라서 그런가 (네덜란드, 영국)

이들 나라에서는 무척한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 도시에 모여들게 됐을까.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제 한 몸을 건사할까.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또 어떤 가족들과 남은 하루를 보낼까.

저 사람도 나처럼 이 도시를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일까.


오가는 전철에서, 아카이브 매점 좌석에서, 숙소 앞 카페에서,

그런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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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한국을 벗어나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은 아니고,

단지 다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6월 말에 런던에 온 이후로

달리기 속도가 놀랄 정도로 늘면서 달리기에 더 재미가 붙었다.

(7월 이후로 계속 12km/h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번 뛰면 9~10km 정도 달리는데,

재미와 별개로 몸에 꽤 무리가 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평소의 걸음은 꽤 느려졌다.


성질 급하고 걸음 빠르기로 소문난 런더너들 사이에서

혼자서 느적느적 걷다보면,

뭐랄까 고속도로에 처음 나온 초보운전 느낌이 난다.


걸음걸이에서마저 이방인 티를 내는구나 싶어서

혼자서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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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취미생활에서는 유독 물성物性에 집착하는데,

십자수와 음악이 그렇다.


음악은 꼭 CD를 사고, 그걸 MP3로 리핑한 다음 스마트폰에 집어넣어서 듣는다.

스트리밍이 일상화된 시대라는 걸 생각하면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나도 잘 알지만, 보수적인 천성 때문인지

한 번 굳어진 습관은 잘 바꾸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한국을 떠난 후로 내 스마트폰의 음악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앨범을 사도 리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있던 음악만 계속 반복해 듣고 있다.


같은 것만 계속 듣자니 지루하기도 하지만,

들을 수록 계속 좋아하지는 앨범도 있다.


강아솔의 ‘사랑의 시절’(2018),

그리고

가을방학의 ‘세 번째 계절’(2015).


음악을 듣다가,

주변의 사람들과 지나간 기억 같은 것이 한꺼번에 머리에 떠올라서

“하-” 하는 짧은 탄식을 뱉은 것이 여러 번이다.


늦은 오후 햇살에 이 음악을 들으면 가끔 눈물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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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신임 총리 보리스 존슨이 취임연설을 하는 그 날 그 시간,

보리스 존슨 반대 시위를 구경하러 나갔다.

(나는 촛불시위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올시다, 엣헴-)


총리는 영국 행정부를 대표하는 최고권력이지만,

그것의 결정에 참여한 것은 전체 영국인의 2% 남짓에 불과하단다. (내각제 때문이다.)


증오와 배제, 그리고 혐오가

한 때 세계제국이었던 나라의 최고권력의 자리에 올라선 셈이다.


시위에 모인 사람들의 분노는 컸지만,

글쎄, 이런 상황이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


사랑과 협동, 호의와 연대.

사람을 짐승이 아니게 하는 가치들을 위한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인간의 문명이 거대한 미끄럼틀 위에 올라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바닥을 향해 중단없이 내려가고 있는 것 같은 상황.


아주 크고 느려서 체감하지 못할 뿐.


패러디하자면,

“망해가는 문명을 위하여 건배”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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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으면 숙소 앞 스타벅스에 간다.

혼자 앉아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휴일을 보내곤 했는데,

습관이라는게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여기 카페는 주문을 받을 때 꼭 이름을 묻는다.

이름으로 주문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 이름이야 말하고 적는데 불편이 없겠지만

한국 이름을 이 나라 사람들이 친숙하게 듣고 쓸 수 있을리가 없다.


그나마 좀 쉽게 해보겠답시고

이름 끝자만 "훈"이라고 불러주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꼭 "H. O. O. N."하고 철자까지 불러준다.


그런데

인파로 북적이는 시끄러운 카페에서 그게 잘 전해질리가 없다.

지난 번 언젠가는 'KOON'이라고 썼고, 어제는 'KON'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Koon이라고 영어이름을 해버릴까 보다.


"쿤."


한국어로 쓰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어감이 좀 나쁜 것도 같지만,

(어른들은 이름 지을 때 “창이 좋아야 한다”고들 하셨다. 그 ‘창’은 아마 ‘唱’일 것이다.)

뭐 어때,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쿤도 있잖아, 이만하면 괜찮네.


일일이 발음에 철자까지 알려주기도 귀찮은데,

이 참에 영어이름 하나 지으면 좋을 수도 있지, 뭐.

이런 식으로 나도 세계인으로 거듭나는 거 아니겠어.


...하는 등등의 잡스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토마스 쿤은 ‘Kuhn’이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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