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서효인·박혜진, 난다, 2018.) 본문
(…) 가장 적은 사람들이 읽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오랫동안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비평서다. 작가도 작품도 남지 않지만 내용이 남아서 책 읽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 아마도 대부분은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누가 썼는지, 작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작가의 이름을 잊어버리겠지. 그러나 『레 미제라블』을 재발견하는 탁월한 사유와 언어는 독서의 역사에 남아 문학의 DNA가 될 것이다. 이런 비평의 말들이 한 권의 위대한 소설을 한 시대의 거대한 벽화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박혜진,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 19쪽.)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인 엠마 게이트우드의 이야기다. (…) 도대체 왜 이 먼길을 걷는 건가요? “그냥” “그러고 싶었으니까” (…)
(…) 폭력적인 남편이 가한 무자비한 폭력의 연쇄를 자기 손으로 끊고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룬 엠마의 삶은 어느 할머니의 도전이기 이전에 억압당하던 여성의 역사에 남겨진 혁명의 발자취다.
요즘은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진 희미한 발자취를 좇는 일에서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이런 책을 만들고 싶어진다. (박혜진,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67쪽.)
『릿터』가 발행되는 동안 이런 호방한 카피, 어디에라도 좋으니 한번만 써보고 싶다. “전국 곳곳이 릿터 인기에 들썩! 주문 쇄도! 칭찬의 목소리 온 곳에 가득!” 그러나 현실은, 이번 호도 무사히 출간되었음에 감사와 안도를. (박혜진, 「속물 교양의 탄생」, 89쪽.)
조카는 태어나 하루를 보냈다. 처제도 엄마가 된 지 이제 하루다. 시간은 멈춤이 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갈 것이다. 처제의 언니에게도 시간은 그러하였다. 조금 더 지치길. 많이 지치면 기대길. 위대한 시간 앞에 인간은 손을 맞잡는 것 말고 다른 적절한 대처가 없을 것이다. (서효인, 「나의 작고 작은」, 96쪽.)
책을 다 읽고 둘째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라고 말한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다시 정정.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엄마라고 한다. 무서운 것은 도깨비, 악어, 마녀, 호랑이, 티라노사우르스…… 생각나는대로 다 말하는데, 최근에 엄마에게 혼이 몇 번 나긴 났었지 싶다. 덧붙여 나도 엄마가 세상 가장 무섭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속말로 맞장구를 쳐보았다. (서효인, 「너무너무 무서울 때 읽는 책」, 170쪽.)
독서야말로 집단 지성으로 완성된다. (…) (박혜진, 「속초에서의 겨울」, 179쪽.)
(…) 토론회 자리에서 맨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특수학교 건립에 찬성해달라 호소하는 학부모의 사진을 나도 물론 보았다. (…) 은재는 특수학교에 다닌다. 사는 곳 가까이에 특수학교가 있어 무릎 꿇지 않아도 되었다. 이걸 행운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은재가 두 돌이 됐을 때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혹시나 컨디션이 좋아 낮은 장애 등급을 받게 될까봐, 우리 부부는 긴장했다. (…) 그렇게 2급 판정을 받고 나서의 안도와 비참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간적 감정?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이것이 인간인가. 목울대에서 질문의 종이 날카롭게 울린다. (서효인,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202쪽.)
종종 다니는 회사와 나라는 존재를 구분하지 못한다. 업무 시간도 아니요, 내 주업무도 아닌데 SNS에 회사 이름을 검색해보고, 주말인데도 집안 거실에서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어쩌면 ‘회사 안에 속한 나’를 더 안정적으로 느끼는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인정받는 일이 내 전부를 인정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 (서효인,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226쪽.)
요즘 내개 가장 많은 책을 추천해주는 건 인스타그램 친구들이다. 인스타그램은 책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책을 그냥 보여주는 곳이다. 책이 옷도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닌데 보여주는 걸로 충분할까 싶지만 사실 우리가 궁금한 건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진이 책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면 인스타그램이야말로 우리의 유행어가 아닐까. (…) (박혜진, 「그해, 여름 손님」, 255쪽.)
운동 에세이를 읽으면 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 좋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이 소진되고 고갈된 마음에는 운동 에세이가 약이 된다. 나는 수영 에세이를 읽고 나서 수영 학원에 등록했고 요가 에세이를 읽고 나서 요가 학원에 등록했는데 입사 이래 나의 화려한 학원 수강기는 독서 시장과 아주 긴밀한 영향 관계를 맺고 있다. (박혜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349쪽.)
교정.
89쪽 10줄 : 『릿터』 발행되는 -> 『릿터』가 발행되는
380쪽 3줄 : 응원 덕이 -> 응원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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