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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피에르 르메트르, 열린책들,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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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피에르 르메트르, 열린책들, 2019.)

Dog君 2021. 5. 19. 21:54

 

  대통령의 참석은 단지 작고한 은행가에 대한 우정의 표시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르셀 페리쿠르와 함께 〈프랑스 경제의 한 상징이 사라지다〉라고 일간지들은 이번에도 절도 있게 제목을 뽑았다. 반면 〈그는 아들 에두아르의 비극적인 자살이 있은 지 7년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논평한 신문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상관없었다. 마르셀 페리쿠르는 이 나라 금융계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의 서거는 이 1930년대가 다소 어두운 전망 속에 시작되고 있기에 더욱 불안한 어떤 시대적 변화를 나타낸다고,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12쪽.)

 

  그러자 정원사 레몽이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휠체어가 너무 갑작스레 움직이는 바람에 첫 번째 계단을 지나자마자 사람들은 참사의 규모를 예감하고는 조심하라고 외쳤다. 레몽은 뒤로 몸을 활처럼 당기며 버텼지만, 이내 휠체어의 무게에 끌려가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그 바람에 손잡이를 놓쳐 버렸다.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너무 늦어 버려, 휠체어는 점점 빠른 속도로 요동치며 현관 층계를 굴러 내려갔고, 마들렌과 레옹스는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비켜섰다. 폴은 시선을 고정한 채 파국이 다가오는 것을 꿈쩍도 않고 지켜보았다. 휠체어는 쇠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에 처박히고는 무겁게 옆으로 쓰러졌다. (74~75쪽.)

 

  간호사는 무척이나 말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치 무성 영화의 여배우처럼 그녀의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데 방안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휠체어에서 물러서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행주를 눈으로 찾아, 뭐라고 웅얼웅얼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폴의 침으로 더러워진 목판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모포를 당겨 폴의 다리를 덮어주고, 그의 잔을 가져다 물로 헹군 다음, 폴이 볕을 받을 수 있게 휠체어를 옮겼다. 너무 눈이 부시지 않도록 커튼을 살짝 치고는, 그가 사용하지 않는 머리맡 탁자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그가 읽지 않는 책 몇 권을 한데 쌓아 놓았다. 이 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그 재잘거리는 말들이, 마치 그녀가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하는데 질문들은 자신의 귀에도 너무나 재미있고 대답들은 너무나 엉뚱하게 들리는 듯, 갑작스럽게 터뜨리는 웃음으로 끊기곤 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심지어 폴조차 그녀가 일벌처럼 부지런히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는, 마치 저 여자의 정체는 과연 뭘까 궁금해 하는 것처럼 가늘게 찡그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이의 표정은 결국 희미한 미소로 바뀌었는데, 그가 집에 돌아온 이후 이렇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적은 정말이지 한 번도 없었다. (122~123쪽.)

 

  질문이 이어짐에 따라 여자들 간에 모종의 연대 의식이 생겨 고객이 하나둘 상점을 떠나게 했다. 성질이 났지만 패배를 인정한 발레 씨는 그뤼예르 치즈 한 덩이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고, 마들렌은 버터 반 파운드와 함께 그것의 무게와 가격을 꼼꼼히 확인했다. (420쪽.)

 

교정.

284쪽 15줄 : 경매장에 -> 경마장에

493쪽 24줄 : 독일이 군침이 -> 독일이 군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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