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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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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뛰어내려 가든 누워있다 가든 가는건 가는거. 그렇게 '그나마' 존중할만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한해가 되고 있다. 나야 그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훨씬 더 많지만 (노무현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그의 죽음이 나의 개인감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나도 그의 죽음에 대해 마냥 시니컬할 수만은 없겠지만은 이하의 말투에서 묻어나오게 될 예의없음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1-2. (역시 노무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사회는 스스로가 망자亡者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음과 함께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괴한들에 납치되어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으며 한때는 군부에 의해 사형수 신세가 된..
1. 진주MBC사옥에서 진주역 방면으로 가는 길인 새벼리길을 지나다보면 왼쪽으로 갈색의 팻말이 하나 서있다. 전국 최초의 백정해방운동이었던 형평衡平운동을 이끌었던 백촌栢村 강상호姜相鎬 선생의 묘소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주인없는 무덤 마냥 방치되어 있었던데다가 정비 이후에도 정기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찾았을 때는 잡초가 무성했다. 2. 강상호는 1887년 경남 진주에서 강재순의 4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재순은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내기도 한 천석꾼으로 부유한 가정환경 덕에 강상호는 일찍부터 신학문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진주는 전통적으로 경상우도 학맥의 중심이었고 당시에는 축산업과 면포생산의 중심지로 신문물의 유입이 활발했다. 1910년에 진주에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학생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