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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슬슬 혀가 꼬일 무렵 자리는 파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건지 버스와 지하철은 이미 끊겼기에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술이 꽤 취했는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집 근처에 도착했다. 찬바람이라도 좀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 집에서 좀 못미친 곳에 택시를 세우고 어둑한 새벽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집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내 어떤 지인은 자취방을 옮길 때마다 비싼 보증금과 불리한 주거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로변, 아니면 최소한 가로등이 많은 집을 택한다. 또 어떤 지인은 절대로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지 않는다. 또다른 어떤 지인은 대중교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지 ..
사학과에서 학부 4년을 꼬박 채웠지만, 정작 고전이라고 할만한 책은 별로 읽지 않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있고, '마르탱 게르의 귀향'도 거기에 들어간다. 근데 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내가 학부를 다니던 2000년대 중반이면 문사철 공히 포스트주의의 폭풍의 스톰이 몰아치던 시기라 여기도 포스트 저기도 포스트, 아주그냥 오만데서 탈이 어쩌고 탈이 저쩌고 해서 인문대 학생들이 인문대 앞 족구장에서 봉산탈춤을 추고 그랬더랬다. 나도 덩달아 후기- 후기- 후기- 하면서 지마켓보다 더 많은 후기를 써대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한국에서 미시사/신문화사가 소개된 맥락이 바로 그 탈-마르크스주의의 연장선이었단 거지.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그..
흡사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떠올리게 하는 유유의 가출 사건을 두고 2021년 여름을 전후하여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고려대 역사교육과의 권내현과 부산대 한문학과의 강명관. (권내현은 2021년 6월 23일, 강명관은 2021년 8월 29일) 두 저자 모두 일단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준다. 그런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글을 썼다는 건데, 소속된 분과학문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연구상황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알았겠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여진 것이니 독자 입장에서는 둘을 비교하면서 읽는 맛이 쏠쏠할 것이 분명하잖은가! (물론 서로 카운터를 내지르는 맛은 덜하지만...) 이런 꿀잼조합을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두 책을 모두 읽었다..
16세기 중엽 대구의 사족 유유가 돌연 집을 나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유유가 나타났다. 하지만 유유를 만난 동생 유연은 그가 진짜 유유가 아닌 사칭범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대구부에 고소했다.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 중 유유는 다시 사라졌다. 이에 유유의 아내 백씨는 유유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으며 형의 재산을 노린 동생 유연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유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자백했고, 결국 사형당했다. 그리고 다시 십수년이 지난 후, 또다시 유유가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유유는 진짜 유유임이 확인되었다. 십수년 전 유유를 사칭했던 이는 채응규라는 자로 밝혀졌고, 그는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채응규는 압송 도중 자살했다. 그리고 유유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