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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독후감이 독백이라면, 서평은 대화입니다. 독후감은 독자가 없어도 됩니다. 혼자 쓰고 끝내도 상관없지요. 감정을 풀어 놓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반면 서평은 이를 읽어줄 독자가 필요합니다. 서평의 독자는 서평에 반응합니다. 즉 서평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게 됩니다. 이것이 서평을 쓰는 이와 서평을 읽는 이의 대화입니다. 서평을 쓰면서 서평의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독자를 설득하고자 성찰하며 언어와 논리를 구성하고 배열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성찰은 정련되며, 정신의 성숙을 이루기도 합니다. (...) 서평은 서평에서 다루는 책에 대한 성찰을 전달합니다. 서평을 쓰는 이의 사유가 서평을 통해 공유됩니다. 이러한 공유는 대화적이지요. 누군가가 내가 쓴 서평을 읽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책에 ..

문과와 이과로 크게 나뉘는 한국의 교육체계를 기준으로 하면 나는 과학과는 퍽 거리가 먼 사람이다. (과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을 2차함수에서 포기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물리-화학-지구과학-생물 순으로 한 과목씩 포기하면서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과학책에 손을 대고 과학 팟캐스트를 즐겨듣게 된 건 꽤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시험의 압박이 없다는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과학을 알면 내 주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가 누리는, 실내난방을 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보통의 일상 대부분이 과학의 발전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

이 책은 (마치 한강이 그러하듯) 두 개의 물줄기에서 발원했다. 이 책의 북한강은 광해군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다. 광해군이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에 대해서는 이미 수없이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한명기와 오항녕의 책인 것 같다. 한명기의 관점이 대중문화와 상식 선에서 가장 지배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고, 오항녕의 책이 이에 대한 안티테제를 제시하여 지배적인 통설이 수정되는 중이라고 하겠다. 기존의 두 관점이 정과 반의 관계라고 할 때, 이제 슬슬 합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시점에 이 책이 나왔다. 계승범은 기존의 두 관점이 광해군 개인에 대한 평가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광해군의 치세가 조선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지에 ..

친구들과 늦은 시각까지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슬슬 혀가 꼬일 무렵 자리는 파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건지 버스와 지하철은 이미 끊겼기에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술이 꽤 취했는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집 근처에 도착했다. 찬바람이라도 좀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 집에서 좀 못미친 곳에 택시를 세우고 어둑한 새벽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집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내 어떤 지인은 자취방을 옮길 때마다 비싼 보증금과 불리한 주거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로변, 아니면 최소한 가로등이 많은 집을 택한다. 또 어떤 지인은 절대로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타지 않는다. 또다른 어떤 지인은 대중교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지 ..

사학과에서 학부 4년을 꼬박 채웠지만, 정작 고전이라고 할만한 책은 별로 읽지 않은 것 같다. 대표적으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있고, '마르탱 게르의 귀향'도 거기에 들어간다. 근데 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내가 학부를 다니던 2000년대 중반이면 문사철 공히 포스트주의의 폭풍의 스톰이 몰아치던 시기라 여기도 포스트 저기도 포스트, 아주그냥 오만데서 탈이 어쩌고 탈이 저쩌고 해서 인문대 학생들이 인문대 앞 족구장에서 봉산탈춤을 추고 그랬더랬다. 나도 덩달아 후기- 후기- 후기- 하면서 지마켓보다 더 많은 후기를 써대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한국에서 미시사/신문화사가 소개된 맥락이 바로 그 탈-마르크스주의의 연장선이었단 거지.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