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미완의 파시즘 (가타야마 모리히데, 가람기획, 2013.) 본문
0. 다른 것보다, '시바 료타로'라는 이름은 볼 때마다 어감 참 묘하다. 그럼 저 양반은 평생동안 어머니한테는 "밥 먹어라, 시바야", 친구한테는 "반갑다, 시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잘 부탁드립니다, 시바 선생님" 이런 말 들었단 건가.
1. 계속 되는 '일본 우경화' 공부 시리즈. 이번에는 대전기 군국주의의 발원지가 어디인가를 찾아보기 위해 고른 책 되겠다. 일본 근대사를 이해하는 간단한 틀은, 메이지유신-청일전쟁-러일전쟁-중일전쟁-2차 대전 뭐 이런 식으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래프로 그리면 피라미드 형태로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뭐 그런 단순한 그래프.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게도 1차 대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2-1. 러일전쟁의 여순전투가 묵묵히 전진하는 보병들에 힘입은 승리였다면, 1차 대전의 칭다오전투는 포병에 힘입은 승리였다. 즉, 병사 하나하나의 전투력과 정신상태, 사기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투에 쏟아부을 수 있는 물량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군은 이미 그 시점에 향후의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를 간파하고 있었단 것 아닌가. 어? 2차 대전이야말로 정신무장이 어쩌고 1억옥쇄가 저쩌고 해서 사람들의 정신무장을 더 강조하지 않았었나?
그리하여 칭다오는, 러일전쟁 후의 일본육군 근대화의 정도를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시험장이 되었다. 보병이 돌격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그야말로 화력의 시대로 포탄을 얼마나 투입하는가, 말하자면 대포의 숫자와 성능과 포탄 보급량이 승부를 결정한다는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인식이 일본 육군에는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p. 62.)
2-2. 20세기 전쟁이 총력전이 될 것임을 내다봤다는 것은, 경제력=군사력임을 알았다는 뜻 아닌가. 그 말은 다시, 일본의 경제규모가 서구열강과 전면전을 치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진작에 알았다는 건데... 자, 여기서 일본 육군 내에서 의견이 갈리는데, '갖지 못한 나라'가 '가진 나라'와 싸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겠지. 열세인 군사력을 만회할 수 있는 특수한 전력과 전략을 개발하거나, 열세인 군사력을 만회할 수 있도록 경제력을 키우거나.
3-1. 황도파는 이런 거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전력 집중을 통한 단기 결전이, 숫적 열세를 만회하는 별도 전력으로는 정신력 같은 것들이 강조되는 거. 반대로 통제파는, 최후결전을 위해 장기적인 경제력을 축적하는 방법을 내세웠는데, 만주국이 그 대표적인 거라고 할 수 있겠지. 중요한 건 양쪽 모두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나름대로는 전략적인 고려가 깔려있다 말이다.
역사의 추세가 물량전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일본의 생산력이 가상적국 여러 열강을 좀처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격차에서 생기는 알력이야말로 1차대전 종결 직후부터 일본 육군을 계속 괴롭혀온 난제였으며, 현실주의를 어느 틈엔가 정신주의로 반전(反轉)시켜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p. 114.)
단적으로 말하자면, 정군(政軍) 관계에서는 정치를 무시하고 군의 독단전횡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는 철저한 속전속결. 병참을 걱정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 작전 면에서는 포위섬멸뿐이다. 속전속결하기 위해서는 바람처럼 번개처럼 포위섬멸하는 것이 최고다. 대담하게 포위섬멸해서 이거에 전투를 마치려면 병사들의 보통 이상의 전의(戰意)가 불가결하다. 따라서 극단적인 정신주의. 포위섬멸에 의한 속전속결에 실패했을 경우의 방책은 없다. 병참에 초점을 옮겨가는 장기전은 '갖지 못한 나라'에게는 패배를 의미한다. (p. 140.)
3-2. 근데 이런 정도의 고려를 하고 있었던 메이지 원로들이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고 나니까, 결국 '정신 전력' 혹은 '최종 결전'이라는 앙상한 껍데기만 남게 되는 거지.
4. 이건 메이지 시기의 정치구조에서 비롯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메이지 체제는 삼권 혹은 민군 분리를 기초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전일적인 통제는 불가능했다는 거지. 물론 천황에게 그런 권능이 몰려 있기는 했는데, 어디 천황은 그렇게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잖아. 즉, 파시즘을 단일한 이데올로기로 강화된 국가주의라고 한다면, 대전기의 일본은 파시즘 체제로 보기가 어렵다는 거지. 내각은 군부를 통제할 수 없는 구조였고, 군부의 전략구상 역시 정치의 영역과 분리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뭐? 근대 일본에게 총력전 체제란 애초부터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고.
5. 아, 더 쓰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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