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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라는 이데올로기 (고영란, 현실문화연구, 20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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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라는 이데올로기 (고영란, 현실문화연구, 2013.)

Dog君 2014. 9. 6. 18:19



1-1. 요 몇 년 사이 일본사회의 우경화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작금의 일본 사회를 두고 '우경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1.5당 체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민당이라는 보수정당의 독식체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의미있는 좌파 운동이 부재한 일본 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오른쪽으로[右] 기울어진[傾]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작금의 일본 사회가 새삼스럽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기보다는, 오른쪽 끝까지 우르르 쏠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까지 풀려버렸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1-2. 사회가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는 말은, 사회 전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모종의 합의 같은 것이 있다는 것으로도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다시 말해, 진영과 이념과 뭐 기타 등등을 넘어서는 어떤 '보수적 합의'가 있다는 건데, 하, 그게 뭐냐 말이다.


2-1. 제목에는 '전후'가 달려있어서 마치 1945년 이후의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1945년 이전에 대해서도 만만찮게 공을 들이고 있다. 저자는 전전戰前의 여러 논의들, 예컨대 문학 등등을 통해, 좌파든 우파든 사회주의자든 안 사회주의자든 내셔널리즘, 그러니까 일본인과 非일본인의 구분이라는 관념을 공유하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2-2. 일본의 국가주의자들이 무력에 의한 침략과 팽창을 통해 제국의 확장을 욕망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반면 일본의 '좌파'들은 비전非戰과 평화를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팽창을 통해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며 국외의 미답지(예컨대 조선이나 텍사스)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도 '일본의 팽창지'나 '신일본'의 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는 그들 또한 제국의 팽창을 추구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이라는 네이션의 틀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가주의자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슈스이가 지지하는 것은 "무력을 앞세운 침략과 약탈"이 아닌 '영국'식 팽창의 방법, 즉 "이동" "각 식민지의 자치"를 통한 "경제적 팽창"이다. 「배제국주의」에서 다루어진 "경부철도 보호" 문제는, 「비전론」(《일본인》, 1903.8.5.)에서 "많은 농부 상인을 조선으로 이동"시켜 대처한다는 식으로, 보다 구체적인 문맥에서 이야기된다. 이것은 슈스이의 '제국주의' 비판이 기노시타 나오에나 시마다 사부로 등의 '평화적 팽창'과 같은 노선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 48.)


  지금까지 서술했듯 《사회주의》의 '비전'적인 '이동'의 언설은 확실히 '주전主戰' 언설에 대항하는, 식민지를 둘러싼 교섭 수단으로 이요오디었다. 대표적 반전론자였던 우치무라 간조가 "가장 만주를 사랑하는 자가 결국은 만주의 소유주가 된다"고 한 것, 그리고 고토쿠 슈스이가 '만주 이주'를 장려한 것처럼, '이동'은 '비전'의 언설에 기입됨으로써 '평화'라는 말을 빌린 또 하나의 '일본 팽창'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비전' 입장을 취했던 《사회주의》지에 그 이전 《노동세계》 시절과는 달리 '민족 팽창'으로서의 '이동' 언설이 등장한 것과 함께 주목해야 한다. (pp. 85~86.)


  실제로는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당시의 언설이 만들어낸 '텍사스'는, 여러 차원의 '이동' 언설들이 만나는 장이다. '텍사스'는 재뉴욕영사, 후기 자유민권 운동가, 시사신보 기자, 사회주의자 등 입장이나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다른 언설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리고 '평화적' 일본 팽창의 대상인 미답의 영토라는 표상으로 기능했다. '일본의 팽창지'로서의 '텍사스', 그리고 그 안의 '일본촌'이 '신일본'으로 표상되는 순간, 문화적·정치적 입장이 다른 언설들 사이에서 협력 및 보완 관계가 생긴 것이다. (p. 92.)


3-1. 이런 "내셔널리즘의 함정"(p. 92.)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이다. 전쟁이 끝나고 또 구구절절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가해자로서의 식민지 기억을, 피해자로서의 미군정 기억으로 대체하는 과정이 있었음은 우리도 다 잘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비교대상으로 인용된 것은 1904년 '한일의정서'라니, 뭐지 이 씨발됨은... 싶어서 좀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식민지 가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뭐 그러거랑은 밥풀떼기만큼도 관련이 없고, 단지 일본/미국의 관계를 비유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1904년 「일한의정서」를 증거로 제출한 것은 곧, "피압박 민족이 된 일본인의 오늘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었던 일본/조선 관련 기억을 소환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일한의정서가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일안보조약 이후의 '일본'은 1945년 이전의 '조선'과 같은 '식민지'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p. 210.)


3-2. 그러면 일본의 전쟁 책임을 참회하는 듯한 언설들은 어떤가. 그냥 읽으면 아 그냥 그렇구나...하고 읽힐 수 있는 반성의 글들이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아까 위에서 이야기했던 "내셔널리즘의 함정"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그런 글들에서도 뭔가 또 새로운 맛이 우러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즉,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와중에 등장한 '알고보니 우리도 전쟁 때매 동원되어 죽고 피보고 힘들었구만요' 언설은 일본인을 피해자의 위치로 스리슬쩍 옮겨놓는다.


3-3. 이건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가해자로서의 천황과 군국주의자들을 자기들과 분리시키는 것까진 좋은데, 여기서 다시 '일본인'이라는 '당구공 모델'[각주:1]식 호명을 사용하면, 그 '일본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천황과 군국주의자가 다시 그대로 보존되는 거 아니냐 말이다. 둘째, 어쨌거나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성립하게 되는 식민/피식민 혹은 가해/피해의 관계에, 갑자기 '피해자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를 불러내면, 이건 결국 전쟁 책임 논의 자체를 무화無化시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면서 '선량한 개인으로서의 개별 병사'를 불러냄으로써 결과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트렸던 게 생각나는구만.) 아니 씨발, 맞은 애는 있는데 때린/책임질 놈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셋째, 그러면 피해자로서의 '아시아인'은 제대로 호출되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해자에 천황이나 경찰, 군부 등을 놓고 피해자에 보통의 일본인, 병사 개인 등을 놓게 되는 순간 일본인 바깥에 대한 생각의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된다. '일본인'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 들어있는데, 피해자로서의 '아시아인'의 자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겠냐 말이다. 아, '대동아'전쟁을 했는데, 일본인들끼리 가해하고 피해하고 그랬다는데 이거 진짜 말 안 되는 거 같은데.


  "일본이 행한 전쟁은 야만스럽고 비열한 전쟁이었다"는 표현에는 그 전쟁이 '아시아 여러 민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타국을 침략하는 동시에 자국민도 노예로 만드는 전쟁이었다"고 진술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나카노는 "동시에"라는 말로 "아시아 여러 민족을 노예로 만든다"는 문장과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다"는 문장을 연결하는데, 이 구도는 '아시아 여러 민족'과 '자국민'이 똑같이 피해자의 자리에 놓이면서 성립하는 것이다. (중략)

  글의 제목과 같이 "일본이 패배한 것의 의의"를 묻는다는 것은 '8·15'를 전쟁이 종결된 '패전일'로 의미 부여한다는 것이고, 전쟁이 시작된 1931년 만주 침략 이후의 기억을 구축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1931년을 기원으로 하는 전쟁 기억의 편성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고 전쟁에 동원된 구식민지의 기호가 사라진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이 글에서 구 일본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식민지'는, '아시아인'으로부터도 '자국민'으로부터도 배제되는 자리에 놓여 있다. (pp. 219~221.)


4-1.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다가, 어떤식으로든, 어느쪽이든, 일본의 전쟁 책임은 제대로 반성이 안 됐심다... 이런 얘기까지는 알겠다. 스스로를 피해자/피식민인으로 만들었다는 고영란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여전히 문명화의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미야지마 히로시의 그것과는 상충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나도 좀 갸웃했는데.


4-2. 생각해보니 두 사람 사이에 더 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이 스스로와 아시아를 계속 분리하려고 한다는 것.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만 해두자.

  1. 국가나 민족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의 '당구공 모델'은,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에서 인용했다. http://www.cyworld.com/rvqo3/34707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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