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외, 문학동네, 2014.) 본문
1. 거대한 배가 침몰했고, 국가는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그 배에서 살아나온 것은 "가만히 있으라"던 지시를 거부한 사람들과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갖추지 않은 선원들이었다.
2. 내가 전공하는 현대사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라서 내 부모세대의 경험과도 겹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도 언젠가 역사연구의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사는 이 시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가라앉은 배와, 그 배 옆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나중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아니, 만약 내가 수십년 뒤에도 여전히 역사학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막막하다.
(전략) 이제 다시 세월호는 사고다, 라는 명제로 돌아가보자. 자꾸 사고, 사고, 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 이제 겹쳐진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中, p. 56.)
팽목항.
그 장소에서 칠십여 일 동안 바다를 향해 밥상을 차리고 그 밥을 먹을 딸이 뭍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남자가 있었다. 마침내 그의 딸이 뭍으로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그간에 수고가 많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쉬라고 말했다.
돌아가다니 어디로.
일상으로.
사람은 언제까지고 슬퍼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고 끔찍한 것을 껴안고 살 수는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지. 잊을 수 있지. 그런 이유로 자 일상이야, 어떤 일상인가, 일상이던 것이 영영 사라져버린 일상, 사라진 것이 있는데도 내내 이어지고 이어지는, 참으로 이상한 일상, 도와달라고 무릎을 꿇고 우는 정치인들이 있는 일상, 그들이 뻔뻔한 의도로 세월을 은폐하고 모욕하는 것을 보고 들어야 하는 일상, 진상을 규명하는 데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 마련되지 않는 일상,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일상, 거리에서 굶는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일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과 같은 마음으로 초코바, 초코바, 같은 것을 자신들에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는 일상,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느냐고 아니 그보다 내가 좀 살아야겠으니 이제는 그만 입을 다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일상, 밤이 돌아올 때마다 그처럼 어두운 배에 갇힌 아이를 견져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일상, 4월 16일 컴컴한 팽목항에서 제발 내 딸은 저 배에서 좀 꺼내달라고 외치던 때의 통증에 습격당하곤 하는 일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이, 거듭, 거듭, 습격당하는 일상.
왜 그런 일상인가.
그의 일상이 왜 그렇게 되었나.
그의 일상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
그 세계에서 내 처지는 어떤가.
세월은 돌이킬 수 없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 나 역시 그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세계를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라고 묻는 입장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中, pp. 92~93.)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앞에서 정신분석학은 무능했다. (중략) 멈춘 시간 속에서 미래가 사라질 때, 배 유리창 한 장도 깨부수지 못하는 이 쓸데없는 말들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었나? 나는 여태껏 무슨 말들을 지껄여온 것인가?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막힌 시간을 뚫어내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오히려 정신분석이, 그 판단 없는 경청과 드넓은 이해로 이해하면 안 되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준 적은 없었나? 성욕설, 남근선망,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엘렉트라콤플렉스...... 도대체 이 단어들로 무엇을 할 수 있나? (김서영, <정신분석적 행위, 그 윤리적 필연을 살아내야 할 시간> 中, pp. 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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