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역사비평 139호 (역사비평사, 2022.) 본문
역사비평 139호가 어김없이 도착했다. 식민지기부터 현대 영국까지 부동산과 주식 등을 통해 본 '투자 권하는 사회' 특집(벌써 2회째...)과 세종 대를 다루고 있는 장기연재(이건 4회째...)가 여러 독자의 관심을 끌 것 같다.
하지만 저로서는 무엇보다 공공역사(public history)를 주제로 한 기획에 가장 눈이 간다. 역사를 모두의(public)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나의 욕심(인지 야심인지 허세인지)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가짜 남편 만들기』와 『유유의 귀향』의 서평에도 밑줄을 긋게 된다. 좋은 서평이란 대상 텍스트의 의미를 더 도톰하게 만들어주는 것일텐데, 이 서평을 통해 우리는 두 책에 젠더의 관점을 조금 더 보탤 수 있게 됐다.
(...) 역사영화에서 핍진성이 아무리 중요하고 역사 해석자로서 역사영화를 상정한다고 해도, 역사영화가 실은 과거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역사영화가 두 개의 배치되는 과제를 동시에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는 과거를 오늘날의 대중 앞에 시각적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과제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이야기에 현재적 감수성을 불어넣는 과제이다. 소재는 과거에서 빌려왔으나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단지 과거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재 관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이거나 시대의 공감을 일으킬 만한 주제, 혹은 오늘날의 대중들에게 제작인이 던지고 싶은 의미심장한 메시지이다. (...) 역사영화는 과거를 빌어 현재의 욕망과 꿈과 문제의식을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므로, 과거의 충실한 재현만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재적 문제들을 과거에 투영하여 오늘을 사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된다. (...) (이하나, 「공공역사로서의 역사영화와 개연성으로서의 역사」, 188~189쪽.)
역사영화는 사실의 역사라기보다는 '개연성(probability)으로서의 역사'이다. 그때 그 사건의 주역이었던 인물의 심리상태, 시대와 인물 사이의 갈등과 같은 내밀한 점들, 그때 그 장소에서 있었을 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를 재현하고 묘사하는 데 영화는 탁월한 장점을 발휘한다. 어쩌면 진실은 거기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대중문화에서 '역사의 공공성' 회복은 오락성이나 상업성을 무조건 배제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과의 경합, 혹은 조화를 통해 어떻게 현재적 관점으로 역사를 재조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역사는 많은 경우 역사학계의 학문적 성과에 빚지고 있지만 때로는 그와 동시에, 혹은 그보다 앞서서 진실에 다가서기도 한다. 진실을 향한 여정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다. 공공역사는 그간 그 경로를 독점해왔던 역사학과 역사학자에게 시고도 달콤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하나, 「공공역사로서의 역사영화와 개연성으로서의 역사」, 193쪽.)
조선 사회가 특히 후기로 갈수록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다는 상식이 때로 조선 여성들은 모두 인형같이 수동적인 존재로 살았다는 잘못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유연전」에서 이씨가 남편의 무고를 밝히기 위하여 직접 발로 뛰거나, 혹은 백씨가 집안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취햔 전략들을 보면, 조선의 절반은 여성이었고 이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역동하는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백씨의 행동을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욕망'이라는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가짜 남편』과 『귀향』의 관점에는 다소 아쉬운 감도 있다.
채응규의 진위 여부를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고 유연을 살인자로 고발한 백씨의 행위를 남편의 빈자리를 보충함으로써 집안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한 시도라고 설명한 『가짜 남편』과 마찬가지로 『귀향』도 이를 "총부권과 형망제급의 관행이 대립했던 시대"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면서도, "그녀의 욕망"을 가족의 비극을 초래한 요소로 평가한다. 여기서 당시 여성의 당사자 능력과 행위제약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모든 전략적 선택 또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사대부 여성은 평민 여성보다 많은 '도덕적' 제약을 받았으며 그것은 종종 특권과 구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행위자는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실리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경제적이거나 제도적인 요소뿐 아니라 '도덕'과 '명분' 또한 충분히 고려할 때 우리는 특정 시공간에서 행위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들을 그저 파괴적인 '욕망'에 추동되는 악녀로 분류하는 것은 물론,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정위하는 일 또한 이들의 행위 역량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일일 터이다. (이송희,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읽는 법-『가짜 남편 만들기』와 『유유의 귀향』이 던지는 질문」, 416~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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