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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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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김재원, 빅피시, 2022.)

Dog君 2022. 7. 16. 10:26

 

  김재원이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를 읽었습니다.

  역사학 연구자가 꺼리는 일 중 하나는 통사通史를 쓰는 것입니다. 학문이란 것이 본디 전문화와 세분화를 전제로 하는지라 각각의 학문 연구자 역시 각자의 전문영역을 깊숙하게 파고 드는 식으로 자기 연구를 하기 마련이고 이는 역사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수천 년의 역사를 한 권(잘 해봐야 몇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그와는 상반되는 일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단번에 꿰뚫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방대한 작업인데다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반화와 추상화는 학문, 특히 역사학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던 방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갑자기 망원경을 들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그러한 태도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러다보니 생긴 부작용도 있습니다. 역사 입문서로 쓸만한 통사 서술이, 정작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그다지 많이 생산되지 못한 것이죠. 그러다보니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읽어볼만한 통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말로는 역사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란다고 하고, 술자리에서는 '역사 엔터테이너'들 뒷담화 열심히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정작 독자에게 권할만한 입문서 하나 골라들지 못하는데요. 역사책을 읽고 권하는 것을 부캐로 삼은 저조차도 한국사 입문서를 선뜻 고르기 쉽지 않습니다.

 

  저자인 김재원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팟캐스트의 진행자 금강경으로 더 유명합니다. 홍진경의 유튜브 '공부왕 찐천재'에서도 얼굴을 제법 알렸죠. 역사학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본캐라 하겠습니다. 아직 정립된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 '역사 커뮤니케이션' 혹은 '역사 커뮤니케이터'라는 개념을 상정할 수 있다면 그에 가장 걸맞는 사람이 아마도 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표현은 자연과학계에서 통용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science communication'에서 빌어왔습니다.)

 

  그런 그가 한국사 전체를 다룬 (입문서 느낌의) 책을 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의 지향점이나 논조 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가능한 쉬이 읽히는 문투를 사용합니다. (저자도 인정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라는 제목과 달리 분량이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수천 년의 한국사를 최대한 짧게 느껴지도록 노력한 흔적이 책에서 역력히 드러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의미가 단지 한국사의 전체요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것은 감정이입 내지는 역지사지입니다. 저자는 줄곧 현재의 관점 혹은 결과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맥락 속으로 들어가서 판단해볼 것을 주문합니다. 천추태후를 예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에 대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과 평가는 금욕주의적인 젠더 관념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이후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 대부분이죠. 이에 두고 저자는 고려시대 나름의 젠더 관념과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하면서, 천추태후에 대한 또다른 해석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태도는 저 역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평가하고 이해할 때 결과론적이고 현재적인 해석이 아니라 당대의 상황과 맥락을 모두 염두에 두는 것 말이죠. 이것은 비단 역사적 대상에 대한 평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다른 사회구성원을 이해하고 공존할 때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은 있습니다. 세부적인 표현이나 문단 간의 이음매 등 전체적인 만듦새 측면에서 다듬을 부분이 몇몇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증쇄하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니 치명적인 흠결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잘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곁에서 피식 피식 웃으며 농담도 잔뜩 섞어가며 들려주는 한국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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