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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톈위빈, 글항아리, 20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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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톈위빈, 글항아리, 2024.)

Dog君 2024. 12. 3. 17:24

 

  어느 자리에서 다른 분의 강의나 발표를 들을 때 탕수육은 종종 '다른 건 모르겠고, 저 사람이 저 주제를 참 좋아하긴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 전공이 아닌지라 발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발표자의 말투나 표정에서 그이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냥 직업으로서의 관성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온전한 애정과 즐거움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거요. 그런 느낌을 받으면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걸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이유 없이 저도 막 힘이 나는 것 같고 즐겁고, 뭐 그렇습니다.

 

  탕수육은 미술사에 대해서는 정말로 문외한입니다. 미술에 대해서도 정말 아는 것이 없다시피 하고 미적 감각도 거의 0에 수렴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 책에 대해서 드릴 수 있는 말도 특별히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이 그림을 참 좋아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청명상하도가 아무리 큰 그림이라 해도 수십 년째 이 그림 하나만 들여다보면서 아주 작고 사소한 힌트라도 찾아내려고 애쓰는 건, 정말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고보면 저도 종종 이렇게 한 가지 대상에 무한히 몰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무수히 작은 이야기들에 불과한 역사학이 저는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벌써 죽고 없어진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 불과한 사료史料를 읽을 때 저는 왜 그렇게도 즐거울까요. 그럴 때만은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물론 그 후에 그걸 정리해서 글과 논문으로 정리하는 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만...) 그런 저를 바라보는 타인의 생각도 아마 또 그러하지 싶습니다. ㅎㅎㅎ 저거 뭐, 돈도 안 되고 딱히 유용해 보이지도 않는 저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탕수육은 이 책을 읽으며,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지만, 누군가의 순수한 즐거움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책 읽는 내내 그냥 이유 없이 괜히 막 힘이 나는 것 같고 즐겁고, 뭐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그렇게 여러분을 순수하게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 「청명상하도」는 위대한 두루마리 그림 중 하나로,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찬 만큼 사랑하는 그림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써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 (10쪽.)

 

  두루마리 그림을 감상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요즘 박물관에 전시된 것처럼 완전히 펼쳐서 한눈에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 한 단 펼쳐서 보는 것이라고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화권을 B의 위치까지 펼쳤을 때는 A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B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화권을 C의 위치까지 펼치고 나면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A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의 시선은 B뿐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C도 볼 수 있다. 즉 A 위에 있는 사람은 C가 처한 위험부터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B의 노 젓는 사람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C를 향해 힘껏 노를 젓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C는 자신이 처한 위험(구체적인 상황은 뒤에서 상세히 설명하겠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B와의 충돌을 피할 겨를이 없다. A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고함을 지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86~87쪽.)

 

  (...) 장택단은 여러 곳에 위험한 상황을 그려놓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고는 단 하나도 없다. 전체 그림을 통틀어, 화가는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의 순간만을 그렸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장택단이 얼마나 천부적인 이야기꾼인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활을 쏘기 위해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시점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한 풍선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또한 길게 줄지어 만든 도미노는 블록 조각 하나가 쓰러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긴장된 상황 아래에서는 감정과 의미를 비롯한 모든 것이가장 충만하다. (110~111쪽.)

 

  그림 2-102를 보면 오른쪽 모퉁이의 길가에 면한 상점(이 점포의 바닥은 벽돌 두 개 높이로 돋워져 있다)에 네 사람이 한가로이 앉아 있다. 화가는 각 인물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왼쪽에 있는 3명은 일행인 듯하고 흰옷을 입은 A는 B와 C보다 지위가 높다. A는 B, C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거리를 향하고 있다. 그는 왼손으로 지나가는 짐꾼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는 듯하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봐, 너희는 다 내 덕분에 잘 먹고 잘살잖아. 내가 아니었으면 저 짐꾼처럼 힘든 일을 하며 살았을걸?" C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B는 "그럼요, 맞는 말씀이십니다!"라며 A에게 굽실거린다. C는 아직 젊어서인지 별말 없이 A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있다. C의 앉음새를 유심히 보면 오른쪽 다리를 나무 의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게 왠지 건달 같은 느낌이다. A의 앉음새 역시 오른팔은 탁자 위에 걸치고 왼쪽 다리는 의자 위로 세웠다. 점잖지 못하고 거만한 인상이다.
  옆 탁자에 혼자 앉아 있는 D를 보자. 그는 무엇을 하는 중일까? 짐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A의 말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짐꾼 쪽을 바라보는 중일까. 그러나 보는 둥 마는 둥 멍하니 있는 것 같다. 그의 손을 자세히 보면 턱을 괴고 있다. (...) 외톨이 손님의 앞에는 찻잔조차 없다.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해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장택단은 인물의 시선을 활용해 인물들의 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설명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음 장면을 예로 들어보겠다. D가 E를 쳐다보고 E 역시 고개를 돌려 D를 보고 있다. 옆 사람이 E에게 얼른 가자고 재촉하자 "잠깐만,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라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인물 관계나 대화는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니 여러분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이 장면을 글짓기 주제로 삼는다면 많은 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125~126쪽.)

 

  다리 양쪽의 난간(그림 2-140)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그들은 풍경을 감상하거나 물속의 물고기를 구경하는 중이다. 강물 속 물고기가 보이는가? 장택단이 그린 이 민물고기는 중국회화 역사상 가장 간략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일 것이다. 물고기를 구경하는 다섯 명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황을 재연해보자. A가 "저기 봐, 물고기다!"라고 말하자 B는 "응......"하고 대답한다. 물고기가 아니라 강물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는 중인 B는 마지못해 콧소리로 A에게 대꾸한 것이다. C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젊은 사람들이란'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어느 가게의 뚱보 점원인데 잠깐 짬이 나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그 옆의 E가 강물 속 물고기를 가리키며 "여섯 마리인 게 확실해! 맞지?"라고 크게 외치자, D가 사나운 얼굴로 "무슨 소리야? 일곱 마라지"라고 대꾸한다. E는 부아가 치민 표정이다. (157~158쪽.)

 

  일반적으로 옛사람들은 글자가 쓰인 종이를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송 신종 때 곽희郭熙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의 그림은 활기와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기운이 가득하며 세속과 민생에 대한 관심과 제세濟世의 마음을 화폭에 담아내곤 했다. 이후 곽희의 화풍을 싫어한 휘종은 화원의 화공을 시켜 곽희의 비단 산수화를 찢어 걸레로 만들었다. 지금 성문을 나서는 수레에 씌워진 점포 역시 조정에서 권세를 얻었거나 잃은 관원들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오랜 세월 북송의 조정은 변법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과 안정과 보수를 주장하는 세력 간의 신·구 당쟁에 시달려왔다. 양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았고 한 당파가 집권하면 상대 당파를 탄압했으며 그들의 작품마저 폐기해버렸다. 그렇다면 독륜천차의 점포는 파면당한 관원의 서적이나 작품이 수레에 실려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로 가져가는 걸까? 아마 교외로 가져가 불태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 전체에 산재한 여러 위기 장면들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도입부의 놀라 날뛰는 말, 줄기 끊어진 버드나무, 중반부의 홍교 아래에 있던 배들, 좀 전에 살펴본 나태한 체포의 관원, 각종 교통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장택단의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북송은 앞서 요나라와 대치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금나라에 멸망당했으니 '국제적 환경'은 지속적인 위기에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정 내부의 분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관원들은 해이해졌고 도시 관리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태평성세의 분위기에 취해 나라를 방비하는 데 소홀하고 있으니, 장택단처럼 식견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애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62~163쪽.)

 

교정. 초판
30쪽 5줄 : (1106~1085) -> (1067~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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