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936)
Dog君 Blues...

역사책 읽는 것은 제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만, 역사책을 읽다보면 종종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역량이나 업적을 쌓았거나 신분이 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저는 대단한 역량도 없고 신분도 낮은 (직장인이란 현대의 노비...) 저는 그저 길바닥에 널린 범인凡人에 불과하죠. 역사책 속 인물과 역사책 바깥 현실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그래서인지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종종 야사野史 같은 것에 마음이 끌리고, 위대한 인물의 위대하지 않은 면에 흥미를 가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다룬..

요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개신교만큼 좋은 소리 못듣는 종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온 사방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들고 다니시는 분들의 배후로 개신교가 지목되는데다가, 나쁜 짓 했다고 뉴스에 나오는 사람 중에 목사나 장로나 집사는 또 왜 그렇게 많으신가요. 이웃한 천주교만 해도 정의구현사제단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활발하게 목소리를 경우가 많이 보이니 더욱 그래 보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개신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개신교가 태극(기)이라는 국가/민족 상징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과정은 곧 개신교가 조선의 민족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연대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개신교가 타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전광훈이니 태극기부대니 하는 것으로 한국의 개신교가 과..

우리나라 지명 중에 '陽'(볕 양)자가 들어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陽'의 뜻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겁니다. 서울의 옛 지명인 '한양(漢陽)'은 '한강[漢水]의 북쪽'이라는 뜻이지만 안양시의 관양동(冠陽洞)은 '관악산(冠岳山)의 남쪽'이라는 뜻이니 '陽'이 어떨 때는 북쪽을 의미했다가 또 어떨 때는 남쪽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하나의 글자가 정반대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고 참. 알고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양지바른 곳'을 뜻하는 '陽'은 강을 기준으로 하면 북쪽을 지칭하고 산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을 지칭하기 때문이죠. 남쪽에서 해가 뜨면 강은 북쪽 사면에 양달이 생기고 산은 남쪽 사면에 양달이 생기잖습니까. 이걸 알고 나면 우리나라의 여러 지명에서 '陽'이 들어간 ..

청-조선 관계를 다룬 이 책은 제목부터 독자의 관심을 끕니다. 한국사를 더 많이 배운 한국인은 '청나라는 조선에게 무엇이었나'라고 묻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그와 반대로 묻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단지 시선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의외의 역사상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침 이 책의 번역자인 손성욱 선생님의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가 좋은 예입니다. 그 책의 3부에서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의 왕세자(왕세제) 책봉 문제를 다루는데요, 여기서는 이 문제를 청나라 내부의 사정을 포함하여 다룹니다. 이렇게 되니 조선의 책봉 문제가 단순히 조선 내부의 정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여진족이 흥기하여 대조선관계를 ..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쓰여졌는지는 굳이 더 말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요. 책 좀 읽으시는 분이라면 저자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충분히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래서 김승섭의 책은 동어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우, 또 이 얘기야?' 하고 말이죠. 새로 나온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차별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 무신경했던 건지를 조금씩 더 알게 되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메시지는 책이 거듭되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기회가 날 때마다 김승섭의 책을 읽는 것은, 그의 글이 제가 처음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를 새삼 되새기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