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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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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형은 신체에 형벌을 가하는 야만적인 제도로, 갑오개혁 이후에도 미처 폐지되지 않았는데, 총독부가 일본에서는 이미 폐지된 이 제도를 한국에서는 법령으로 공식 채택한 것이다. 일제는 그 이유로 '민도의 차이'를 내세웠다. 감옥 시설의 미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핞편으로 공포심과 수치심을 유발시켜 범죄 감소 효과를 거두려 한 것이지만, 이른바 '조선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차별과 멸시가 짙게 깔린 지독한 악법이었다. (...) 태형은 한국인에게 수치감과 모욕감, 분노를 안겨주었고, 이는 3·1운동 당시 각 지역 주민들이 헌병과 순사 주재소를 습격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일본인의 토지 집적과 농장 개설은, 곧 한국 농민의 토지 상실과 소작농으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농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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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원이처럼 술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화상실에서 보낸 포스트모던한 밤은 끔찍했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기억이 툭툭 끊기는 경험도 끔찍했고, 다음 날의 숙취, 숙취로 인한 두통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인간이 아니라고 혼자 조용히 이를 갈았다. (...) 하지만 나는 술꾼의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2주 정도 지나자 입가에 맴돌던 술맛과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의 엷은 흥분, 들떠서 떠들던 분위기들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술 생각이 났다. (...) (29~30쪽.) 비슷한 맥락에서 만취해 돌아오는 길에 내일 해장할 생각으로 라면을 샀고, 후후, 이렇게 취했어도 내일을 준비하다니, 나는 정말 프로 술꾼!이라는 우쭐함과 함께 잠들었는데, 다음 날 끓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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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참석은 단지 작고한 은행가에 대한 우정의 표시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르셀 페리쿠르와 함께 〈프랑스 경제의 한 상징이 사라지다〉라고 일간지들은 이번에도 절도 있게 제목을 뽑았다. 반면 〈그는 아들 에두아르의 비극적인 자살이 있은 지 7년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논평한 신문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상관없었다. 마르셀 페리쿠르는 이 나라 금융계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의 서거는 이 1930년대가 다소 어두운 전망 속에 시작되고 있기에 더욱 불안한 어떤 시대적 변화를 나타낸다고,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12쪽.) 그러자 정원사 레몽이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휠체어가 너무 갑작스레 움직이는 바람에 첫 번째 계단을 지나자마자 사람들은 참사의 규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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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그 행사를 통해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때 만난 두 명의 입양인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한 명은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덴마크 국적의 수지였다. 언제나처럼 밤 산책을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오자, 수지의 침대는 비어 있는데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수지가 수도를 틀어 놓은 채 잠시 외출한 거라 여기고 무심코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이미 반쯤 물이 찬 욕조에 외출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수지가 보였다. 수지는 갓 스무 살로 열다섯 명의 입양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고 발랄했으며, 한국에 있는 가족도 쉽게 찾아서 그때까지 거의 매일 생모와 언니들을 만나러 외출을 나가곤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제야 수지가 날 올려다봤다. 물이 찬지 입술이 파랬다. 나는 일단 욕조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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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존재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작가들이 현실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행한 현상은 인류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비극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난 유미주의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지나치게 경멸한 나머지 예술을 현실에서 분리시켰습니다. 그것이 작가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유미주의자들의 정신과 대척점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 바로 무명작가의 문장입니다. 자신의 언어에 책임을 지고 완전한 실패를 통절하게 받아들이는 작가가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작가가 얼마나 우리를 지탱시켜줄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