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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 이봉규는 오늘날 저명한 사회과학자들의 1960년대 초 중반의 근대성 모색이 어떠했나를 잘 보여준다. 윤천주, 차기벽, 이만갑 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가들이 등장하는데, 그 이름만으로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이들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대 존재했던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추구한 근대성이란 결국 산업화가 우선시되는 발전이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서구'라는 수식이 붙어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되며, 전통 역시 발전주의에 호응하는 요소들만이 재전유될 따름이다. (...) (한봉석, 「책머리에」, 7쪽.)
(...) 이론적 논의에서 실천의 기술까지 아우르면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학회 설립 및 저널 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다른 역사학 분야와 달리 공공역사 연구에서는 역사학자, 공공역사가, 역사애호가들까지 아우르는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쓸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용에 따라 학문적 글쓰기보다는 비평적 글쓰기(critical review)가 더 유용할 수 있다. 1987년 창간된 『역사비평』이 초창기에 가졌던 콘셉트, 곧 대중들도 읽을 수 있는 역사 이슈에 대한 비평지로서의 정체성이 점차 희미해지고 최근으로 올수록 다른 학술지와의 차별성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정량적 평가가 잣대가 되는 한국 학술계 전체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역사학계는 비평적 글쓰..
학술지를 읽는 것은 늘 즐겁습니다. 동료 연구자들의 최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더러 연구자로서 자극도 많이 받거든요. 『역사비평』 147호의 특집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비판 너머의 역사쓰기'와 148호에 게재된 김태현·김재원의 「학교에서 태어나 미디어가 키운 '공공역사', 중국을 혐오하다」를 함께 읽으면서는 이들 문제를 말할 때 이제는 논점이 좀 더 확장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둘이 대상으로 삼은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미디어 비평이, 여전히 민족주의적 편견에 대한 비판에서 머무는 것 같거든요. 이러한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뭐랄까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데다가 논평이 계속 제자리를 맴돌다가 고인물이 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147호에 게재된 기경량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