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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경향신문] “한강의 기적 만든 건…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1. 이 책의 '야마'를 '박정희 정권기 경제성장은 미국 덕분이었고 박정희 덕분이 아니었다.' 정도로 잡는다면, 이 책의 주장이 사실 아주 새롭지는 않다. 이런 정도의 주장은 80년대 이래로 박정희 정권기를 평가하던 논자들이 오랫동안 주고 받은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장들의 크기가 엄청나게 큰데다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했거나 치밀한 논증 과정을을 거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주장들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작업이 될 수는 있다.) 나도 처음에 이 책 이야기를 듣고, 아 그냥 그런갑다 하고 약간 냉소적이었는데 오늘 오후를 꼬박 투자해서 책을 읽고나니 그렇게 쉽게 치부할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더라는 게 ..
1-1. 이상하게 일본에서 나온 학술서에는 손이 잘 안 간다. 어딘지 모르게 의뭉스러운 문장이 좀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정도는 덜 하지만 영미권에서 나온 책도 약간 그런 걸 보면 기본적으로는 내 독서근육의 문제겠지만은, 아니 그래도 잘 안 읽히는 건 우짤 수 엄는 건 엄따. 거기에 사학사라니. 수없이 많은 이름과 제목과 주장이 난무하는 사학사의 특성을 생각하면, 내가 이 책을 내 자의로 고를 일은 0에 수렴한다고 하겠다. 직장에서 하는 독서모임이 아니고서는 전혀 읽을 일이 없는 책. 그러니까 눈에 띄는 곳 몇 군데를 옮기고 간단한 인상만 덧붙이기로. 따라서 일본의 '동양사학'은 중국한테서 배우기보다는 중국사 지식이나 중국사 상을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중국사 연구를 통해 배우는 경향이..
1-1.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자연수명에서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할 때까지 쓰는 처음 십 몇 년과 몸의 기력이 쇠해서 죽음을 기다리느라 쓰는 마지막 몇 년을 빼면 길어야 60~70년 정도 되지 않을까.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수천 년에 달하는 ‘역사적 시간’에 비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다. 임기 5년 짜리 대통령은 12~14명 볼 수 있고, 가계는 자기 할아버지부터 자기 손자까지 본다고 치면 5대를 본다. 운이 좋으면 핼리혜성은 2번 볼 수 있고, 2월 29일은 20번을 채 못 본다. 요새 들어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정보화도 엄청나다고는 하지만, 주어진 시간 자체가 짧다보니 우리가 보고 겪을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적다. 1-2. 역사 공부의 장점은 바로 거기..
1. 음악은 음악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내게 이 사실을 처음 일깨워 준 것은 김기원이다.) 몇 번씩이나 거듭 돌려들었던 노래나 CD를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들으면, 한참 그 음악을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들으면 마음 둘 곳을 모르고 배회하던 사근동 언덕길과 그 아래 건강원에서 나던 쌉싸름하면서도 퀴퀴한 냄새 같은 것이 기억나고, 에릭 클랩튼의 “Clapton Chronicles”를 들으면 인문대 5층 동아리방에서 김기원과 함께 기호논리학 문제를 푼답시고 화이트보드에 기호를 써내려가던 보드마카의 촉감이 느껴지고, 정재형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를 들으면 독일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보며 진로를 고민하던 때가 떠오르는 식이다..
1. 겉표지에는 귀향을 선언한 아들인 가즈마사와 작은 마을에서 25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야스히코 사이에 벌어지는 좌충우돌 분투기 같은 것이 주된 내용인 것처럼 써놨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안 그렇다. (누가 쓴 거야...) 그보다는 작은 마을 도마자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해프닝들을 야스히코의 관점에서 찬찬히 써 놓은... 뭐랄까 소설판 '전원일기'라고나 할까. 2. 발전의 전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가 고향인 내가 설날 연휴에 오가는 버스에서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었다. 야스히코는 최근 자신의 편협함을 반성한 터라 어떻게든 순순히 귀 기울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얘기는 20년 전부터 들어왔다. 영화제를 유치하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탄광 박물관을 만들면 관광..
1-1. 때마침 명절이다. (요즘에는 덜 하긴 하다만은) 집에 가면 유독 자기 집안 내력을 줄줄 늘어놓으시면서 '우리 집안이 말이야, 언제언제 무슨무슨공 할아버지 몇 대손으로 뼈대 있는 집안인데 말이야, 누구누구 때 멸문지화를 입어서 집안이 홀딱 디비져서 지금 집안 꼬라지가 이리 됐니라...'하는 분이 한 분 정도는 계시지? 나는 한 번 뵌 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삼촌의 오촌당숙 되는 분이 정승 벼슬을 지내고 오랑캐를 몰아낸 게 지금 내 먹고사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은, 그래도 그런 '신화'가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1-2. 단군할아버지가 세우셨다는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1. 소설을 읽고 나서, 그 소설에 대해서 말하고 쓰는 건 (나한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읽다 보면 '와 이거 참 좋다'는 느낌까지는 드는데, 그게 왜 좋은지 설명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그나마 역사 공부 좀 했답시고 역사책에 대해서는 그게 좀 되는데, 소설은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고 읽은 책도 많지 않아서 그런지 말이나 글로 뭐라뭐라 말을 보태기가 참 어렵다. 좋다는 느낌은 직관의 영역이지만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은 비평의 영역이라서 그런가보다. 2. 황정은 소설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이름을 검색해서 신간이 나오면 빠짐없이 사서 보는 편이다. 무슨 뭐 독자와의 대화에 참석한다거나 예약 구매를 한다거나 인터뷰 기사를 챙겨 읽는다거나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쓴 글이 책..
1. 김중혁을 그저 위트 있고 재기 발랄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고 이 책도 역시 그런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이렇게 콧날 시큰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보태야겠다. 2.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건 뭘까. 전세계 인류가 단체로 엑스맨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아니면 교육과정이 혁신적으로 개혁되어서 독심술을 초등학교 필수과목으로 배우거나 하지 않는 이상,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결국 ‘언어’다.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또 언어를 통해야 한다. 왜 저기 ‘언어적 전환’이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구조 자체를 규정짓는 것이 곧 언어라고 주장한 그 뭐시기 소쉬르인지 소실점인지 이름만 들어서는..
1. 처음으로 바깥 세계를 여행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겪은 일화들은, 이런저런 책이나 다큐멘터리, TV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 일화들 말고 좀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당대 조선의 위치를 가늠하고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는 사실 역시 아주 딱히 새롭다고는 말 못한다. ‘서구중심주의’니 ‘사회진화론’이니 하는 키워드로 정리한 그런 이야기들, 아이고 뭘 또 여기서 더 쓰겠나. 2. 나에게 더 재미있는 것은 그것 말고 다른 이야기들이다. 처음으로 바깥 세상을 경험한 김기수의 반응, 그리고 당대의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압도되어 정신 못차리고 어버버-하는 와중에도 그것의 이면을 비교적 정확히 꿰뚫어본 나혜석의 이야기. 요 두 가지..
1. ‘뉴라이트’가 다른 우익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전향’한 사람이 많다는 거 아닐까 싶다. 80년대 중반 정도까지만 해도 진보진영의 결속력은 꽤 단단했던 것 같은데, 87년에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90년에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이탈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재오, 김문수, 하태경 등등 요즘도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락내리락 하시는 분들 아이냐. 2-1. 학계에서는 유독 경제사 분야에서 그런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이영훈, 안병직 등이 대표 케이스 되겠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실제로 숫자를 따져보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2-2. 내가 전공으로 삼은 경제사가 그렇단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당장 나만 해도 내가 쓰는 글과 내가 하는 생각이, 성장지상주의에 갇혀서 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