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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1-1. '고전'이라는 말의 뜻을 열거하다 보면, 저 아래 13번쯤에 "누구나 말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책"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고전'이란 대체로 두께도 두껍고 문장도 난해하기 마련이어서 읽기엔 엄청 짜증나지만, 여기저기서 말들은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들만 주워들어도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은 것만 같은 착각을 주는 책이다. 그런데 뭐 흥부가도 아니고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 보면 '고전'이 본디 가지고 있던 풍부한 가능성 같은 것들은 사라져버리고, 키워드 한두개만 남아서 텍스트를 앙상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도 생기고 그런다. (물론 그렇게 해도 들킬 염려는 없다. 어차피 남들도 안 읽었으니까.) 1-2. '감시와 처벌'도 그렇다. 푸코 책이 좀 어렵냐. 누구나 푸코를 ..
1.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었던 경험을 유형별로 정리해서 순위를 매기면, '아빠가 말 안 해주고 그냥 먹여서'가 제일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고 하니까. 그냥 좀 노린내가 많이 나는 돼지고기인가보다 하고 처묵처묵하다가 갑자기 '그거 사실 개고긴데' 하는 소리 들을 때, 그동안 내가 알아오던 맛과 지식과 세계가 붕괴하는 것만 같은 불쾌감과 짜증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맛있음 등등이 짬짜면곱빼기로 나온 그 기분, 다들 아시지? 책을 읽다가도 그런 기분 들 때가 간혹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로 말하는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을 때가 그와 비슷한 상황 아닐까. (...라고 쓰고보니 전혀 맞아떨어지는 사례 같지 않아서 민망하다;;;) 2. 어쩌다가 한성훈의 을 찰쌈스트롱의 바..
세 권을 샀다. 한 권은 내가 읽고,한 권은 지인에게 선물,한 권은 지리산 자락 어느 마을 도서관에 기부. 사놓고 1년 넘게 책꽂이에만 꽂아두었다. 내 처지가 너무 민망하기도 해서 감히 읽을 엄두가 안 났다. 지난 주에 비로소 용기를 내어 책을 읽었는데, 예상대로 책장 넘기기 만만찮았다. 좀 읽다가 울컥, 좀 더 읽다가 와락. 그렇게 꾸역꾸역 읽어서 1/3 정도를 넘기니 본격적으로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한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즈음 문득 '이런 식으로 무뎌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뎌지면 안 되는데, 이 감정을 잊으면 안 되는데, 생각했다.
1. 재환(무력)이가 책을 냈다. ‘언던 사이언스’. 나 같은 사이언스 문외한이 들으면 자칫 ‘엉덩 사이 빤쓰’로 기억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이라는 꽤 멋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년 가을께에 나왔는데 원체 게으른 탓에 얼마 전에야 다 읽었다. 특별히 어려운 용어나 개념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고등학교 입학하고부터 매년 과학탐구를 한 과목씩, 물리-화학-생물 순서로 포기했던 나 같은 놈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네이버에서 ’패러다임(paradigm)’을 검색해보면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라고 나온다. 토마스 쿤이라는 사람이 ‘과학혁명의 구..
1-1. 라디오나 책이나 신문이나 테레비에서 심리학자 내지는 심리상담 전문의가 하는 상담을 들어보면 어릴 때의 체험이라거나 가정환경 같은 것 이야기를 꼭 넣는다. 그 분들한테는 학문적 단군할아버지쯤 된다고 하는 (아니면 어떡하지;;;) 프로이드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어릴 적부터 우리는 거세공포니 구강기니 항문기니 하는 것들을 겪었노라고 말했던 것도 아마 그런 거랑 비슷한 것이지 싶다. 그런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지금의 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은 일단 설득력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석가모니가 아닌 다음에야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 1-2. 어디 사람 크는 것만 그..
1. 안도현은 시인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름 석자는 몰라도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는 싯구를 아니 본 사람은 없을게다. 2-1.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에는 눈이 잘 안 간다. 돈 주고 산 시집은 지금까지 딱 한 권인데, 아주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두 페이지씩 들추다보니 산지 10년이 넘었는데 여태 반이나 읽었나. 그러니까 나에게 시詩라는 것은 기껏해야 학교 다닐 적 교과서에서 보고 다른 글쪼가리에서도 좀 보는 정도. 2-2. 시는 잘 안 보지만 시인이 쓰는 글은, 읽기 전에 일단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 얹어주고 시작한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쓰기 전에 일단 대상을 다섯 시간씩 뜯어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1-1.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양 극단 사이를 폭넓게 오간다. 도저히 존속할 수 없을 것 같은 체제와 그 속에서 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오른쪽 끝에 있다면, 깔끔하게 친일파를 청산하고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토지개혁을 완수하여 사회주의의 이상을 그나마 현실에 가깝게 (잠시나마) 구현했던 국가라는 이미지가 왼쪽 끝에 있다. 오른쪽 끝의 이미지는 냉전을 통해 형성된 시각이었고, 왼쪽 끝의 시각은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제 부역자들이 다스리고 영화를 누리는 남한에서 자란 청년들이 반공 파시즘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런 정통성에서 우월한 북한체제에 호감을 갖는 건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었다.") 1-2. "양 극단 사이"라고 써놓고 보니, 그러면 그 사이의 스..
1-1. 어느 학과나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학과도 학교 처음 입학하면 '이 (자본의) 시대에 역사학의 필요는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질문부터 던지고 시작한다. 이렇게 좀 거창한 질문을 던져줘야 선배고 교수고 좀 멋있어 보이잖아. 거창한만큼 진부하기도 한 질문이다. 질문이 진부하니까 답도 뻔하다. "과거는 있잖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주거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과거 역사를 잘 알아야 되는거란다. 하하하." 1-2. 이런 답변이 멋있어 보이는 건 대학 신입생 때 정도까지만이고 짧게는 한 학기 아니면 암만 길어봐야 2년이 채 안 돼서 이게 거짓말과 아주 가까운 말이란 걸 알게 된다. 아니 시발 사마천이 '史記'를 쓰고나서도 벌써 수천년동안 그 많은 역사..
1-1. 책이 책인만큼 신앙고백을 먼저 해야 될 것 같다. 대대로 우리 집안은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집안이었다. 사실은 무관한 정도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편에 가깝다. 할머니는 에이 교회쟁이들...하시면서 일주일 중에 하루를 교회에 꼬박꼬박 투자하는 것을 무척 못마땅해하셨고, 젊은 시절에 잠시 성경공부에 빠져들기도 했다는 아버지는 제사 안 지내는 것이나 '하나님 아버지' 같은 개념들에 대한 거부감을 끝내 접지 않으셨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나도 비슷하다. 성탄절 즈음해서 군것질거리 나눠준다는 말에 동네에 있던 교회에 잠시 기웃거렸던 정도를 제외하면 교회와 나는 대체로 무관하다. 음... '신앙고백'을 쓴다고 했는데 막상 쓰고 보니 이건 '신앙이 없다는 고백'이네. 1-2..
1.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결기를 품었던 적이 잠깐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그 이후로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났다. 그때 가졌던 결기도 조금씩 깎여나가고 지금은 남은 것이 얼마 안 되지만 그 중 얼마라도 남겨보려고 아둥바둥한다. 처음에는 '아이, 이게 뭐얔ㅋㅋ'하면서 손발 오그라드는 마음이었지만, 책장 덮을 즈음에는 울컥했다. 2. 어떤 사람은 (그때부터) 냉소적으로 비웃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일도 있었던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건 다 엄연히 있었던 일들이다. 희화화하지도 낭만화하지도 않은 채로 다른 사람의 글을 빌어 그날들을 돌아보고 싶었던 작은 욕심을, 추석날 고향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채웠다. 후일담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시절이지만, 내가 보고 겪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