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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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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드 풋 스트라이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실 내 블로그는 (아무래도 내 직업상) 책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데 정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는 글은 그 글이다;; 나는 달리기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보통 동네 아재 러너인데, 왜 그 글을 그렇게들 읽으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암튼. (그만큼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나이키런클럽에서 블랙레벨 정도면 경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혹시라도 정보와 경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계신 분께 도움이 될까 해서 한 가지 글을 더 써볼까 싶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운동화(러닝화).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꼽자면 단연 운동화(러닝화)다. 장비타령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조차도 운동화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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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술에 대해 참말로 까막눈입니다. 서경식도 잘 알지 못합니다. 꽤 인기있는 저자인 것은 알지만 특별히 그의 글을 열심히 읽은 적은 없습니다. 『고뇌의 원근법』(돌베개, 2009.)을 읽었지만 하얀 건 종이요 까만건 글자요, 하며 힘들어했던 것만 기억납니다;;; 아, 하나 더 있네요.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그게 언제적이여...) 그의 형이 쓴 『서준식 옥중서한』을 읽다가 포기한 기억도 있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서간문에 녹아있는 소소한 통찰과 깨달음들을 이해하기에 그때의 저의 세계관은 너무 단순했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완전한 자의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분의 사인을 받게 됐고, 기왕 책장에서 꺼낸 김에 한 번 읽어나 보자...는 마음 정도였거든요. 물론 막연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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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책이죠. 저자인 천현우는 페이스북에서 널리 공유된 글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현장 노동자의 현장감 넘치는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꽤 좋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도 꽤 존중할만한 글을 몇 번 더 읽었고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정리한,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봤던 글들은 아니더군요;;) 워낙에 문장도 좋고 구성도 깔끔해서 그런가, 읽는 재미로만 따지면 여느 소설 못지 않습니다. 현장노동자가 글을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일입니다. 흔히들 '글을 쓰는 것이 곧 권력'이라고 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후대에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특권인 것은 사실이죠. 그런 점에서 언제나 객체로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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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낸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중인, 서얼, 무반 등을 '제2신분집단'으로 묶은 다음 이들 집단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의 신분변동을 다뤘습니다. 이 책의 가장 적절한 요약(비유)은, 제가 어느 블로그에서 본 "한국의 근대는 임꺽정의 난이 아니었다"는 문장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소설 임꺽정에 등장하는 길막봉(중인)이나 이봉학(향리), 배돌석(무반) 같은 이들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제2신분집단'이죠. 소설 임꺽정은 이들과 농민 출신의 다른 의적 패거리들이 힘을 합쳐 봉건지배질서에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는 이런 식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2신분집단'은 전근대의 관료제 하에서 저 나름의 지위와 입지를 공고하게 다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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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이하 서리북) 7호를 받아보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기다리던 서평이 많았습니다. 지난 호에서 예고했던 '유유의 귀향'과 '가짜 남편 만들기'의 서평을 비롯해서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의 서평도 (이번 호에 실린다는 이야기를 조금 일찍 전해 들었거든요) 무척 기다렸습니다. 아무래도 제 전공이 역사다 보니 기대감이 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아우, 덕후 냄새...) 이 둘은 다른 지면에서도 서평(비평)을 더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것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전자는 '역사비평' 139호에, 후자는 '역사문제연구' 48호에 각각 평이 실렸죠. 제 개인적으로는, 서리북의 서평은 상대적으로 텍스트 바깥에 대해서도 약간 더 주목을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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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0호를 받아보았습니다. 이번 호는 무엇보다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라는 제목으로 준비된 능력주의 특집이 눈에 띕니다. 최근 얼마 사이에 '능력주의'가 무척 뜨거운 키워드가 되었는데요, 여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모후의 반역'에 대한 오수창 선생님의 서평입니다. 사료의 인용과 해석에 대한 디테일한 논평에 (그건 제가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내용이네요...) 더하여, '충'과 '효'를 대립시킨 이 책의 기본적인 구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왕실 내에서도 거의 절대적인 지위를 누린 대왕대비를 논하면서 '충'과 '효'를 굳이 분리시키고 대립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이 때의 '효'를 사회 일반의 원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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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강의를 나갈 때가 있다. 대개 직장인이 대상이고 (학교 강의 경험 0...) 거의 대부분은 타의에 의해 끌려온 사람들이다. 신입사원인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지못해 앉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입으로서의 열정은 있기에 일단은 참고 들어줄 자세는 갖춘 청중이다. (직장인 대상 강의를 해 보신 분은 알 거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훌륭한 청중이다.) 그런 청중들 앞에 서면 늘 고민이 된다.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역사학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설모모 같은 현란한 언변이 있다면야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강의를 휘어잡을 수 있겠지만 그건 연극영화 전공인 설모모의 몫이고, 역사공부을 업業으로 삼은 나의 몫은 다른데 있을 것이다. (애초에 현란한 언변도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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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난 그녀와 키스했다(Toute premiere fois)'(2015)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럭저럭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보통의 로맨틱코미디 영화였다. 평범했던 그 영화에서 유독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주인공 제레미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의 "번지르르한 속물 결혼은 반대지만 용감한 게이 결혼은 찬성"이라는 대사다. 프랑수아즈는 아들 제레미의 커밍아웃과 동성결혼을, 자신이 "번지르르한 속물"이 아니며 넓은 이해심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즉 그에게 소수자의 삶과 그에 대한 태도란 남의 눈에 '힙'해 보이기 위한 치장 정도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물론 남의 신념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또 프랑수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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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슨 말을 보태려고 한참 읽고 한참 밑줄 긋고 한참 생각했다. 『역사문제연구』 48호에 실린 저작비평회 내용과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에 실린 김두얼의 서평까지 챙겨읽었다. 다 읽고 난 첫 번째 느낌은 '고양'. 학위논문에 싸질러놓은 똥 같은 이야기들을 다듬을 때 이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내가 발을 담근 분야의 관점에서 이 책의 논점도 살펴보면 일치하는 부분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찬찬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막막'. 특히 『역사문제연구』와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서평은 하나 같이 묵직한 문제제기들이라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때보다 버겁고 막막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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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구(崔承九)라는 사람이 있다. 1892년에 태어난 시인으로, 호는 소월(素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10년대부터 저항정신이 뚜렷한 시를 여럿 발표했다고 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가 1970년대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2년에야 작품집이 간행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런 성과들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할만한 사람이겠으나 사실 그보다는 나혜석의 연인이라는 점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최승구도 그렇고, 나혜석도 그렇고, 이런 신변잡기만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싶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머 암튼 그게 본론은 아니니까 각설하고. 그런데 최승구가 세상을 떠난 해가 언제인지 자료마다 다르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