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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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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이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를 읽었습니다. 역사학 연구자가 꺼리는 일 중 하나는 통사通史를 쓰는 것입니다. 학문이란 것이 본디 전문화와 세분화를 전제로 하는지라 각각의 학문 연구자 역시 각자의 전문영역을 깊숙하게 파고 드는 식으로 자기 연구를 하기 마련이고 이는 역사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수천 년의 역사를 한 권(잘 해봐야 몇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그와는 상반되는 일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단번에 꿰뚫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방대한 작업인데다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반화와 추상화는 학문, 특히 역사학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던 방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갑자기 망원경을 들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랄까요. 그러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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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39호가 어김없이 도착했다. 식민지기부터 현대 영국까지 부동산과 주식 등을 통해 본 '투자 권하는 사회' 특집(벌써 2회째...)과 세종 대를 다루고 있는 장기연재(이건 4회째...)가 여러 독자의 관심을 끌 것 같다. 하지만 저로서는 무엇보다 공공역사(public history)를 주제로 한 기획에 가장 눈이 간다. 역사를 모두의(public)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나의 욕심(인지 야심인지 허세인지)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가짜 남편 만들기』와 『유유의 귀향』의 서평에도 밑줄을 긋게 된다. 좋은 서평이란 대상 텍스트의 의미를 더 도톰하게 만들어주는 것일텐데, 이 서평을 통해 우리는 두 책에 젠더의 관점을 조금 더 보탤 수 있게 됐다. (...) 역사영화에서 핍진성이 아무리 중요하고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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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특집 키워드가 살짝 뜬금없다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런 책은 두고두고 읽을 거니까 그건 별 문제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서평. 신문화사 이야기를 좀 더 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평자가 사상사 전공이시니까.) 아주 살짝 맛만 보여주고 말아서 뭐랄까 좀, 이야기를 하다 마는 것 같은 찝찝함이 남는다. (몰라서 안 쓰셨을리도 없고.) 하지만 이 서평이 제 이목을 끈 진짜 이유는, 다음 회에 ‘가짜 남편 만들기’와 ‘유유의 귀향’ 서평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럼, 2022년에 뜬금없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끄집어낸 이유가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나.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책들을 묶어서 비평한 최초의 것은 역사책 읽는집이라는 것을! (음화하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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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과 어색한 표현이 너무 많다.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교정할 부분도 너무 많아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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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서구가 거둔 성공과 그 외 지역의 정체停滯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꽤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이들 질문에 대한 그간의 답변은 대체로 서구인의 자아도취 퍼레이드였던 것 같습니다. 서구에는 있는 무언가가 다른 지역에는 없었기에 그랬다는 식의 답변들이었으니까요. (좀 더 노골적이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요.) 조영헌의 '대운하시대 1415~1784'는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변입니다. 방송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책의 접근법에 대해 저는 무척이나 호의적입니다. 무엇보다 주어가 '서구'가 아니라 '아시아'라는 점이 마음에 들고, 중간 과정을 우연이나 행운이 아닌 의식적인 판단과 정책으로 해석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만, 비로소 지금의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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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역사 대중화'의 상징과도 같은 책이다. 한국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100쇄를 돌파했고 지금까지 누적 판매부수도 200만 부를 너끈히 넘겼다고 하니 비전공 독자에게 이보다 더 친숙한 역사책도 없을 거다. 역사책 좀 읽는다고 하시는 분은 누구나 한 권쯤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고, 역사학 연구자의 책장에도 어김없이 한 권씩 꽂혀 있는 책이다. 꼭 판매부수가 아니라더라도 600년이 넘는 조선시대의 방대한 역사를 단 한 권으로 꿰뚫을 수 있다니,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기획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에 대한 전문적인 서평은 전무하다. (조선시대 관련 출판 상황을 다룬 지두환 선생님의 1997년 글에서 잠시 언급된 적은 있다.) 책은 많이 팔렸지만 정작 그 많은 독자들에게 믿을만한 가이드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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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사전에 따르면, 'fail'은 자동사로 쓸 때만 '망치다'의 의미가 있다. 즉, 지금처럼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으로 번역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물론 전문번역자가 이렇게 번역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니 이걸 무작정 오역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생각에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해서 "저버리다' 정도로 쓰는게 내용상 가장 무난하지 않나 싶다.) 하필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되고 반향이 일던 즈음에 문학사상사의 판권 계약이 종료되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것을 순전히 책방이음의 호의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소설로서는 가장 중요한 세일즈 타이밍을 놓친 듯하다.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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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글을 읽으면, 상상력이 자극되고 나도 덩달아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좋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자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게다가 자신과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경우는 정말 드물지 않습니까?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 죽은 사람의 얼굴과 맞닥뜨릴 일은 거의 없죠." "맞는 말이지만 죽은 사람 얼굴을 보는 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그건 데이브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죽은 사람들은 마지막 얼굴로 자신의 모든 인생을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괴로웠던 시절의 고통, 마지막 순간의 회한이 그 얼굴에 다 들어 있어요. 얼굴 하나로 최소한 230년의 시간을 표현하는 겁니다. 볼 수 있으면 봐야죠. 커튼 하나만 열면 수십 년을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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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커피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상념이나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이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개인적인 수준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의 작물이라면 생산지와 소비지가 대체로 일치하기 마련이지만 커피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적도 부근의 농업국가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커피는 무역망을 따라 다른 부유한 국가들로 수송된다. 그러다보니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적어도 20세기 이후에는) 세계무역과 불평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일이었다. 시야를 한국으로 좁혀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도 1920년대 이후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1940년대 이후 커피 관련 업자들의 행보도 그러하다. 또한 최근 들어 커피 소비와 관련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