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야마시타 영애, 한울아카데미, 2012.) 본문
0. 뭔가 해명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을 때 때마침 그 부분만 북북 긁어주는 것 같은 책을 만나게 되면 그 때 책 읽기의 오르가즘희열 비슷한 걸 느끼게 된다. 알고 보니 나온지 꽤 지난 책인 경우에는 '아, 나보다 먼저 이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까지 더 해져서 희열이 좀 더 커지는데, 재작년엔가 '읽었던 '한중일 인터넷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가 그랬고, 이 책이 또 그렇다.
1-1. 한 2000년 정도를 전후로 해서 'post'나 '탈脫' 같은 접두어가 엄청 유행했던 것 같다. 문사철 전체적으로 다 '포스트모더니즘'부터 해서 '탈식민주의', '탈근대', '탈구축' 등등 하도 말들이 많아서 인문대 앞 주차장에서 발에 툭툭 치이는 게 포스트고 탈이고 막 그랬더랬다. 서구에선 벌써 70년대부터 핥아먹고 빨아먹고 끓여먹고 우려먹다 못해 아침마다 우유 말아먹던 말들이 한국에선 Y2K 즈음해서야 유행했던 것은 아마도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변화와 IMF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가 아이겠나 싶기는 한데...
포스트 포스트 많이 했지만 여전히 인문학에 호랑이 기운은 안 난다.
1-2. 그런데 문제는 주체의 죽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들을 태평하게 하기에는 아직 한국사회가 (먹물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후졌다는 데 있었다. 아직도 70년대의 망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섣불리 주체의 죽음이니 해체니 하는 소리를 꺼내는 건 결과적으로는 앉은 자리에서 멀쩡히 현실을 초월하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궁극적으로는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강화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최종욱)에 따르면, '포스트' 담론은 서양의 철학에서 '주체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 표출되었고, 그 결과 윤리와 책임의 문제가 실종되었으며, '진리의 포기'와 '저항의 부정'이라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것이 한국에서 수용되었을 때 폐해는 더욱 더 큰 것이어서, 포스트주의 자체가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바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체주의는 "수구/진보, 독재/민주, 외세/반외세로 양극화된 우리의 왜곡된 현실 자체를 실천에 의해 해체시키지 못하면서, 말로만 해체를 외치는 행위란 결국 허공을 향해 고함지르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관점에서, 포스트주의는 결국 쾌락주의와 소비문화만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p. 118. (큰따옴표 안은 최종욱, 「포스트주의는 무엇을 포스트했는가?」, 『열린지성』창간호, 1997.에서 인용됨.)
1-3. 물론 그게 포스트니 탈이니 하는 말을 꺼내선 안 된다거나 그걸 꺼낼 타이밍은 따로 있는 거라는 식의 말은 아니고, 포스트니 탈이니 하는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미묘한 어떤 지점을,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역사적 행위나 책임의 주체를 단순하게 국가나 민족으로 세워버리는 기존의 관점을 반성하자는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을 둘러싼 현실의 권력관계와 그 주장이 공공의 영역에서 발화되었을 때의 효과, 그리고 그것이 비판하고 싶은 기존의 주장이 수행했던 역사적 의의와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단 거지.
1-4. 작년에 한참 시끄러웠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내 불만 중 하나가 이런 것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 주장이 다 맞다고 쳐도(물론 나는 그 주장이 맞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한 주장이 가져올 현실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자면... 하 이거 마 생각만 해도 갑갑한기라.
1-5. 그런데 그렇다고 욕만 실컷하고 한편으로 살짝 갑갑해하면서 그냥 멈춰버려도 되는걸까. 졸라게 까고 판매금지까지 시켜놨으면 그 다음 칸에는 '그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뭐냐'는 질문이 놓여야 하지 않나. 작년에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나서 한참 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것저것 책을 골라보던 중에 이 책을 골라보게 됐더라는 거. (아따 서론 길다.)
2. 일단 서장부터가 흥미롭다. 서장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나 여성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와 '정대협'의 설립과 초기 활동에 동참했던 스스로의 경험을 다소 길게 쓰고 있다. 아마도 이 서장의 역할은, 첫번째로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저자 자신의 정체성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일본식으로 읽은 성姓과 한국식으로 읽은 명名이 섞인'야마시타 영애山下英愛'라는 이름에서 벌써 저자의 절묘한 위치가 잘 드러나는 것도 같다!) 거 아닌가 싶다. 재일조선인이자 여성(학자)라는 저자의 정체성이, 민족운동의 바깥에서 위안부 문제를 사고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굳이 하나 더 꼽자면 스스로가 위안부 운동의 내부자였다는 선언은, 외부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신경질적이기 쉬운("네가 뭘 안다고..."하는 식의 반응들.) 한국 사회운동의 특성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인 것 같다.
그 당시 이 회합에서 정체성이나 이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했을 때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의 어떤 사람이 "'야마시타 영애'라는 이름은 어때요?"하고 제안했다. 호적상의 한자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에이아이'가 아니라 '영애'라고 바꿔 읽기만 하는 것이다. 이 이름이라면 내가 양친에게서 받은 일본의 성과 조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식이냐 조선식이냐'의 양자택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거기서 나는 곧바로 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본과 한국은 양국 모두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민족을 표방한다. 많은 재일조선인은 사회적 차별을 조금이라도 면하기 위해 일본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그 때문에 재일조선인 2세, 3세가 민족성을 내세우려면 '본명'을 당당히 써야 했고, 그런 경우 특히 성이 중요하며 이름은 어느 정도 일본적이어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와 같은 이중의 이름, 특히 성(씨)이 일본식이라면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조선, 일본 양쪽 사회로부터 하나의 이름을 선택하라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중략)
하지만 그런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도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일본 이름을 이어받은 아이에게 '조선인 성을 붙여야 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민족성이 아니라 아버지의 민족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아버지 쪽 조선 성을 붙이지 않고 어머니 쪽 일본 성을 고집한 것도 단순히 호적상의 이름이어만이 아니라 이런 남성우선적인 '민족'의 사고방식에 대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pp. 27~29.)
3-1.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폭로하고 위안부 여성이 겪어야 했던 참상을 드러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분노가 단지 분노로만 머무를 때 문제의 본질이나 진상을 향한 걸음은 느려질 수밖에 없고, 흥미 본위 폭로 위주의 자극적인 이야기들만이 남게 마련이다. 가부장제 질서를 내면화한 내셔널리즘이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주된 무기가 될 때, 그것이 지향하는 위안부 문제의 해법이 과연 올바른 해법일까.
3-2. 그러니까 우리는 위안부 문제, 더 나아가 역사에 던지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단언컨대 역사는 "어떤 놈이 나쁜 놈이고, 어떤 분이 좋은 분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좋은 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고, 나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이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이다. 다시 위안부 문제 앞에 섰을 때, 가부장제라든지 그것이 깔려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위안부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위안부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몇몇 씨발놈들을 쳐죽이고 나면, 이제 인류역사에서 위안부 같은 끔찍한 것은 영영 사라지게 될까.
물론 한국인이 정신대 문제를 피지배민족으로서의 관점에서 대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의 유린이라는 측면에서도 다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이 경우의 민족은 종래의 성차별적 남성중심적 혈통주의를 기저에 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점에서 접근하여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즈음 정신대 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대응이나 언론의 대처방식은 애당초 여성들에 의한 문제 제기를 올바로 받아들인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p. 45.)
4. 그런 점에서 보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몇몇 논점들은 문제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재고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늘상 쟁점이 되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여부를 예로 들어보자.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이었기 때문에 문제라는 말은, 거꾸로 강제가 아니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여성들의 선택가능항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식민지 상황에서 강제 여부를 논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인간을 그 욕망의 처리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인식 자체가 더 큰 문제 아닐까.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공창(매춘부)의 형태로 위안부가 되었던 일본인 위안부들이나 가난한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일본군을 따라 나선 (물론 그 경우에도 위안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우는 위안부 문제의 범위에 포함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확인해두고 싶은 바는 위안소제도의 '범죄성'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당시의 국내법이나 국제조약에 비추어 범죄인가 아닌가를 묻는 일에 앞서서, 일본군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군인의 성욕 처리 등을 위해 정책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을 비롯하여 점령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것 자체에 있다. 즉, 위안부의 동원방식이나 대우 여하가 아니라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발상 자체가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의 극한이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등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등의 진상규명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어디까지나 '범죄성'을 인식한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p. 130.)
(전략) 여성을 매춘부와 정숙한 여성으로 이분화하는 민족논리 위에 구축된 인식은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한 남성(가부장적)논리이며 여성을 포함한 열린 민족주의가 아니다. 페미니즘 시점에 기초한 위안부 문제로의 접근은 민족논리에서 소외되어 온 피해자(여성)를 포괄하고, 더 나아가 식민지나 전쟁이라는 경험을 공유해온 남녀노소를 감싸 안음으로써 역사에 보다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교훈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p. 136.)
이와 같은 움직임은 태평양전쟁 중에 피해를 당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로 확산되었으며 이런 흐름 가운데 1992년 12월 일본에서 획기적인 국제공청회가 열렸다. 이곳에는 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필리핀, 타이완, 중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단체와 피해 당사자가 초청되었다. 하지만 이 공청회에 일본인 위안부는 초대되지 않았다. 시로타 씨의 경우 병상에 누워 있기는 했지만 아직 생존하고 있었다. 설사 출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영상 또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소개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터이다. 주최 측의 의식에 일본인 위안부 생존자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중략)
운동 속에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여성·민족·계급차별이 중측적으로 작용한 문제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었는데, 이 경우의 민족이란 피지배민족임을 암묵적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또 한국과 타이완의 운동가들도 창기 출신의 일본인 위안부를 자국의 피해자들과 동렬에 놓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운동은 아시아 모든 나라의 피해자들을 위주로 한 지원활동이 중심이 되었고, 일본인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과 일본인 생존자의 신원을 드러내도록 촉구하는 운동은 일어나지 못했다. 덧붙여 1995년에 일본 정부가 민간과 더불어 입안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도 그 사업 대상에 일본인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pp. 258~259.) 1
5.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국민기금'에 대한 태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국민기금'이라는 것이 일본 정부가 공식사과를 무마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점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그런 식의 해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했어야 옳지만, 당장 당면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처지도 고려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이라는 대의에 매달린 나머지 '국민기금'을 받은 피해 여성을 모금운동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한 결정은 운동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다.
(전략) 일본의 '국민기금'에 대항하여 전개된 모금운동이 보여주듯이 지식인들에게는 이 문제가 단지 피해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은 피해에 대한 자신들의 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운동의 주된 목적을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민족 자존심의 회복과 유지에 두며, 이것은 일본의 '국민기금'을 받은 피해자들을 국내 모금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했다.
제외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또 하나의 한이 되었으며, 이는 운도을 주도하는 지식인 활동가들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었다. 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이런 모금운동이 결과적으로 일부 피해자들 사이에 혼란과 불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피해자와 활동가들 모두에게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생존자들은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고, 이 문제를 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고 있다. 한편 활동가들 역시 피해자들을 돕고 감싸 안으려 하지만 일부 피해자들에 의한 지속적인 불신과 오해 속에서 고뇌하며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물론 일본 정부에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책임을 인정하든 안 하든 피해자로서 받은 고통을 스스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될 운동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피해자와 활동가들 사이에 보다 나은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새로운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문제해결과 피해의 치유가 가능한 운동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pp. 160~161.)
6-1. 물론 이러한 주장이 반대 극단으로 튀게 되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제국의 위안부' 같은 결과가 되고 말겠지만, 저자는 그러한 반대 극단과도 분명한 선을 긋는다. 그러니까 (기존의 위안부 담론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는) 정대협을 국가권력이나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틈새와 쉽게 등치시켜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해를 위해서'에 대해 거의 장 하나를 통째로 할애하고 있는데, '화해를 위해서'의 문제의식에 일면 공감하면서도 '화해를 위해서'가 진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면서 섬세한 결을 짚어내지 못함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화해를 위해서』 제2장에 대한 나의 복잡한 감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박유하가 한국 측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거의 공감하면서도, 한국 측의 대응을 논할 때 한국의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담론과 운동권('정대협')을 좀 더 구분하여 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p. 217.)
6-2. 그 장에서 야마시타 영애는 위안부에 가해진 폭력과 그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으면서 박유하에 대해서도 신중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섬세한 비판은 '제국의 위안부'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제국의 위안부'를 넘어서 위안부 문제의 새로운 지평을 고민해야 한다면 아마도 이 책에 담긴 섬세한 결들이 그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7. 다시 반복하자면, 우리가 역사적 범죄를 연구하면서 해야 하는 질문은 "누가 나쁜 놈인가"하는 식의 단죄의 물음이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성찰이 되어야 한다. 오래간만에 참 좋은 책 읽은 것 같다.
어쨌든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운동의 목적을 재발 방지에 둔다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한 입법운동 하나를 싲가한대도 입법화 자체는 시작에 지나지 않으며, 법적 토대 위에서 어떤 작업을 하면 좋을지 그 내용을 논의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위안부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 문제가 여성을 병사의 성적 위로자로 삼은 일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하여, 성적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어떻게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p. 233.)
*. 참고삼아 옮겨두는 구절 하나 더.
현재 한국에서는 '윤락'이나 '매춘(賣春)', '매매춘(賣買春/買賣春)'이라는 용어를 바꾸어 '성매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원미혜가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원미혜는 「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한국성폭력상담소 편, 1999)에서 매춘이나 매매춘이라는 용어에 들어간 '춘(春)'이라는 글자에 대해, 매매의 대상인 '성(性)'을 새로 생명이 싹트는 봄에 비유하여 '춘'이라고 표현한 것이 성매매에서 초래되는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성매매'는 성의 매매나 취급 측면을 부상시킨다. 또 성매매자라는 어휘가 성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이들을 중개하는 사람, 성산업 등 성매매의 보다 총체적인 맥락을 명확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는 '여연' 등 여성단체가 추진하여 제정된 성매매 관련법(2004년)에도 반영되었다. (후략) (p. 165.)
- 한국의 '정대협'은 1993년에 발표된 고노 담화에 대한 성명에서, 매춘부 출신의 일본인 위안부와 강제적으로 연행된 조선인 위안부를 동렬에 두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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