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허삼관 매혈기 (위화, 푸른숲, 1999.) 본문

잡冊나부랭이

허삼관 매혈기 (위화, 푸른숲, 1999.)

Dog君 2015. 2. 22. 12:10



1. 한때는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1인분씩의 하늘과 그늘을 가지고 살고, 딱 그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의 하늘과 그늘을 바꾸는 것은 나의 몫이다.


  허삼관네 가족은 이날부터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옥수수죽을 마시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말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움직이면 바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오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없이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며 세월을 보냈다. 허삼관네 가족은 한낮부터 밤까지, 또 밤부터 한낮까지 잠만 자며 그해의 십이 월 칠 일을 맞았다.

  그날 밤 허옥란은 옥수수죽을 평소보다 한 그릇을 더, 그것도 훨씬 걸쭉하게 끓였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불러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맛있는 거예요."

  허삼관과 일락, 이락, 삼락이 형제가 모두 식탁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허옥란이 들고 오는 걸 바라봤다. 하지만 손에 받쳐 든 것이 역시나 옥수수죽인 걸 보고는 일락이가 실망감에 볼멘소리를 냈다.

  "뭐, 옥수수죽이네."

  이락이와 삼락이도 똑같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따라 외쳤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잘 봐라. 이 옥수수죽은 어제보다 그저께보다 그 이전의 죽보다 훨씬 걸쭉하잖니."

  허옥란이 말했다.

  "한 모금 마쳐보면 알 거야."

  세 아들 모두 한 모금씩 마셨지만 눈만 깜빡거릴 뿐 도무지 무슨 맛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뒤따라 허삼관까지 한 모금 마시자 허옥란이 물었다.

  "죽에다 뭘 넣었는지 알겠니?"

  세 아들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사발을 받쳐 들고 후후 불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정말 점점 바보가 돼가는구나. 단맛도 모르니 말이다."

  이때 일락이가 죽에 뭘 넣었는지 알아채고는 갑자기 소리쳤다.

  "설탕이다. 죽에 설탕을 넣었구나."

  이락이와 삼락이는 일락이가 소리치는 걸 듣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히려 입은 사발에 딱 붙인 채 키득대며 죽을 마쳤다. 허삼관도 따라 웃으며 아들들처럼 후루룩 소리를 내며 죽을 마셨다.

  (중략)

  이날 밤, 온 식구가 침대에 누웠을 때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 제일 원하는 게 먹는 거라는 거 나도 안다. 밥에다 기름에 볶은 반찬, 고기며 생선이며 하는 것들이 먹고 싶겠지.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너희도 같이 즐거워야겠지? 설탕을 먹었어도 뭔가 또 먹고 싶다는 거 내 안다. 뭐가 또 먹고 싶으냐? 까짓 거 내 생일인데 내가 조금 봉사하지. 내가 말로 각자에게 요리를 한 접시씩 만들어줄 테니 모두 잘 들어라. 절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면 안 돼. 입을 열면 방귀도 못 먹는다구. 자 다들 귀를 쫑긋이 세우도록. 그럼 요리를 시작하지. 뭘 먹고 싶은지 주문부터 해야지. 하나씩 하나씩, 삼락이부터 시작해라. 삼락아, 뭘 먹고 싶으냐?"

  "옥수수죽은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요. 밥을 먹고 싶어요."

  "밥은 있는 걸로 하고, 요리 말이다."

  "고기요."

  "삼락이는 고기가 먹고 싶단 말이지. 자, 그러면 삼락이한테는 홍사오러우(기름에 튀긴 돼지고기에 간장, 설탕, 오향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 요리) 한 접시다. 고기에는 비계와 살코기가 있는데, 홍사오러우는 반반 섞인 게 제 맛이지. 껍데기째로 말이야. 먼저 고기를 손가락만큼 굵게, 손바닥 반만큼 크게 썰어서……. 삼락이한테는 세 점을…."

  "아버지, 네 점 주세요."

  "그럼 삼락이한테는 고기를 네 점 썰어서…."

  "아버지, 하나만 더 썰어주세요."

  "넌 네 점만 먹어도 배가 꽉 찰 거야. 너 같은 꼬마가 다섯 점을 먹으면 배 터져 죽는다고. 자, 우선 고기를 끓는 물에 넣고 익히는데 너무 많이 익히면 안 돼. 고기가 다 익으면 꺼내서 식힌 다음 기름에 한 번 튀겨서 간장을 넣고, 오향을 뿌리고, 황주도 살짝 넣고, 다시 물을 넣은 다음 약한 불로 천천히 곤다 이거야. 두 시간 정도 고아서 물이 거의 졸았을 때쯤…. 자, 홍사오러우가 다 됐습니다…."

  허삼관은 아이들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뚜껑을 여니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자,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고…."

  허삼관은 침 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걸 느꼈다.

  "삼락이 혼자 삼키는 소린가?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게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 거야. 삼락이만 침 삼키는 걸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사오러우를 훔쳐먹는 거라구. 다른 사람들 요리는 나중에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지들 말라구. 먼저 삼락이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 요리는 따로 만들어줄게. 삼락이 잘 들어라. 한 점 입에 넣고 씹으니까 맛이 어떠니? 비계는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 게…. 내가 왜 약한 불로 고았는지 아니? 맛이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야. 삼락이의 홍사오러우는…. 삼락아, 천천히 먹어라. 자,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저도 홍사오러우요. 전 다섯 점 썰어주세요."

  "좋았어. 이락이한테는 다섯 점을 썰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씩 해서 물에 넣고 쌂은 다음, 식혀서 다시…."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삼킬 차례가 아니잖아."

  그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pp. 158~165.)


  "원래는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친자식으로 쳐주질 않으니까 하소용을 찾아간 건데, 하소용도 싫다기에 안 돌아오려고…."

  허삼관은 일락이의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런데 왜 돌아왔어? 지금이라도 다시 나가. 지금 다시 나가도 된다구. 나가서 아주 안 돌아오면 딱 좋겠다."

  일락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배고프고 졸려요. 뭘 좀 먹고 자고 싶어요. 절 친자식으로 여기지는 않아도 하소용보다는 아껴주실 것 같아서 돌아온 거예요."

  이렇게 말하며 일락이는 벽을 짚고 이어나 다시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 거기 안 서! 이 쪼그만 자식이 정말 가려구 그러나…."

  걸음을 멈춘 일락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허삼관이 일락이 앞에 쪼그려 앉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업혀라."

  허삼관은 일락이를 업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을 지나 큰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바로 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 옆으로 난 길이었다. 걸어가는 중에도 허삼관의 입은 일락이에게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pp. 190~19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