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웅진지식하우스, 2017.) 본문

잡冊나부랭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웅진지식하우스, 2017.)

Dog君 2022. 7. 16. 10:04

 

  (이른바) '역사 대중화'의 상징과도 같은 책이다. 한국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100쇄를 돌파했고 지금까지 누적 판매부수도 200만 부를 너끈히 넘겼다고 하니 비전공 독자에게 이보다 더 친숙한 역사책도 없을 거다. 역사책 좀 읽는다고 하시는 분은 누구나 한 권쯤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고, 역사학 연구자의 책장에도 어김없이 한 권씩 꽂혀 있는 책이다. 꼭 판매부수가 아니라더라도 600년이 넘는 조선시대의 방대한 역사를 단 한 권으로 꿰뚫을 수 있다니,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기획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에 대한 전문적인 서평은 전무하다. (조선시대 관련 출판 상황을 다룬 지두환 선생님의 1997년 글에서 잠시 언급된 적은 있다.) 책은 많이 팔렸지만 정작 그 많은 독자들에게 믿을만한 가이드는 제공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참으로 불만족스럽다 ㅎㅎㅎ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하루종일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을 거다. 제목은 "조선왕조실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실록과 다른 부분이 꽤 있다는 제목 낚시나, 이미 수십 년도 더 전에 논파된 이야기를 개정판을 두 번씩이나 내고도 업데이트하지 않은 게으름이나, 일관되지 못한 관점에서 드러나는 사관史觀의 부재不在 등등... 마음 먹고 들이파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역사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좋은 역사책을 고르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하고.) 가장 간편한 방법은 각주가 있느냐 없느냐, 즉 출처를 밝히느냐 밝히지 않느냐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저자가 자기의 견해에 대해 비판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혹은 독자에게 더 많은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두느냐의 여부이다. 저자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밝힌다면, 독자는 그 근거를 찾아보고 저자의 주장을 검증할 수 있다. 독자는 그로부터 전혀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다른 주장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주장에 도전하는 새로운 주장을 이야기할 때 종종 다윗과 골리앗의 비유를 사용한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기존의 주장이 거구의 골리앗이라고 한다면, 그에 도전하는 새로운 이론과 주장은 흡사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 같다는 거다. 이 '다윗과 골리앗'은 책을 쓰는 저자가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기존의 상식(골리앗)을 새로운 책을 통해서 업데이트하거나 대체하는 것(다윗). 이 책의 가치를 굳이 부여해야 한다면, 이 책은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골리앗과도 같을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단 한 권의 결정판 같은 책은 없다.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과 주장을 끊임없이 허물고 수정하고 새로 쌓아가는, 그렇게 해서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지성을 갖춰가는 장기적인 과정의 일부다. 좋은 독서란 세상의 지식을 단번에 전달해주는 단 한 권의 책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겠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