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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역사비평 140호를 받아보았습니다. 이번 호는 무엇보다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라는 제목으로 준비된 능력주의 특집이 눈에 띕니다. 최근 얼마 사이에 '능력주의'가 무척 뜨거운 키워드가 되었는데요, 여기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모후의 반역'에 대한 오수창 선생님의 서평입니다. 사료의 인용과 해석에 대한 디테일한 논평에 (그건 제가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내용이네요...) 더하여, '충'과 '효'를 대립시킨 이 책의 기본적인 구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습니다. 왕실 내에서도 거의 절대적인 지위를 누린 대왕대비를 논하면서 '충'과 '효'를 굳이 분리시키고 대립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이 때의 '효'를 사회 일반의 원리로서..
간혹 강의를 나갈 때가 있다. 대개 직장인이 대상이고 (학교 강의 경험 0...) 거의 대부분은 타의에 의해 끌려온 사람들이다. 신입사원인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지못해 앉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입으로서의 열정은 있기에 일단은 참고 들어줄 자세는 갖춘 청중이다. (직장인 대상 강의를 해 보신 분은 알 거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훌륭한 청중이다.) 그런 청중들 앞에 서면 늘 고민이 된다.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역사학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설모모 같은 현란한 언변이 있다면야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강의를 휘어잡을 수 있겠지만 그건 연극영화 전공인 설모모의 몫이고, 역사공부을 업業으로 삼은 나의 몫은 다른데 있을 것이다. (애초에 현란한 언변도 없고...) ..
예전에 '난 그녀와 키스했다(Toute premiere fois)'(2015)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럭저럭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보통의 로맨틱코미디 영화였다. 평범했던 그 영화에서 유독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주인공 제레미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의 "번지르르한 속물 결혼은 반대지만 용감한 게이 결혼은 찬성"이라는 대사다. 프랑수아즈는 아들 제레미의 커밍아웃과 동성결혼을, 자신이 "번지르르한 속물"이 아니며 넓은 이해심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즉 그에게 소수자의 삶과 그에 대한 태도란 남의 눈에 '힙'해 보이기 위한 치장 정도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물론 남의 신념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또 프랑수아즈..
무슨 무슨 말을 보태려고 한참 읽고 한참 밑줄 긋고 한참 생각했다. 『역사문제연구』 48호에 실린 저작비평회 내용과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에 실린 김두얼의 서평까지 챙겨읽었다. 다 읽고 난 첫 번째 느낌은 '고양'. 학위논문에 싸질러놓은 똥 같은 이야기들을 다듬을 때 이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내가 발을 담근 분야의 관점에서 이 책의 논점도 살펴보면 일치하는 부분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찬찬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막막'. 특히 『역사문제연구』와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서평은 하나 같이 묵직한 문제제기들이라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때보다 버겁고 막막하다. 그래서..
최승구(崔承九)라는 사람이 있다. 1892년에 태어난 시인으로, 호는 소월(素月)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1910년대부터 저항정신이 뚜렷한 시를 여럿 발표했다고 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가 1970년대에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2년에야 작품집이 간행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런 성과들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할만한 사람이겠으나 사실 그보다는 나혜석의 연인이라는 점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최승구도 그렇고, 나혜석도 그렇고, 이런 신변잡기만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싶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머 암튼 그게 본론은 아니니까 각설하고. 그런데 최승구가 세상을 떠난 해가 언제인지 자료마다 다르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