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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마르크스주의는 한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기본 틀거리로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에 주목했습니다. 생산수단의 소유 및 통제 여부를 중심으로 생산관계가 결정되고, 이에 따라 사회의 하부구조가 조직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문화 같은 상부구조도 결정되는 거구요. 그런데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읽으면서, 어쩌면 탄소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에게도 생산양식과 비슷한 지위를 부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대의 전환점 중 하나가 탄소에너지의 사용(즉 산업혁명)이니까 말이죠.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는 탄소에너지의 사용을 중심으로 서구의 근대사를 되짚습니다. 이에 따르면 근대의 서구에서 노동계급이 조직화되고 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석탄 ..
전작인 『종이동물원』을 너무 인상적으로 읽어서 이번 책도 주저없이 골라들었습니다. 『종이동물원』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SF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역사'라는 양념을 절묘하게 잘 버무려서, 역사학을 공부하는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또 영감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역사'라는 양념의 맛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서는 양념 맛이 많이 줄어들었는데요, 사람 마음이란게 참 간사한 것이 이제는 또 그 양념 맛이 그립네요 ㅎㅎㅎ (그런데 의외로 「회색 토끼, 진홍 암말, 칠흑 표범」에 눈길이 갑니다. 아마 '민들레 왕조 연대기'의 일부를 떼어온 것 같은데 『삼국지』나 『은하영웅전설』, 『라마』 같은 소설을 좋아했던 20년쯤 전의 저였다면 틀림없..
민주화진영과 집권세력이 현실에서는 치열하게 대립했지만 인식론적으로는 동일한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포스트 어쩌고저쩌고 주의들이 이미 한참 전에 그런 주장을 주구장창 이야기했었다는 사실과, 그런 주장들이 압축적으로 결정화된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의 문제의식에 가장 크게 공명했던 이 중 하나가 저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죠. 더욱이 이 책은 저본인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 나오고 꼬박 10년이 지나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독자는 책을 읽기도 전에 벌써 시큰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다 아는 얘긴데...)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의외로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듭니다. 오히려 한두 걸음 정도는 ..
이 책의 소재인 푸순 탄광은 아시아 최대의 노천 탄광으로 알려진 거대 광산입니다. 2019년 폐광되기까지 푸순 탄광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추동하는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당장 1930년대에 일본 제국이 그토록 만주를 확보하고 싶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푸순 탄광으로 대표되는 풍부한 지하자원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런 욕망이 일본 제국의 것일리는 없습니다. 탄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것이 곧 근대문명이기에 중국 국민당이건 중국 공산당이건, 막대한 양의 탄소 에너지가 제공할 물질적 풍요에 눈독을 들인 것은 매한가지였을 겁니다. 이들 국가는 더 많은 탄소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석탄을 중심으로 한 기계화된 대량 추출(채광) 체계와 이를 통해 획득된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중..
서리북에 관해서는 늘 비슷한 상찬을 반복하게 됩니다. 저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통찰과 풍성한 지식으로 빚어낸 서평을 이만큼 밀도 높게 모아둔 지면이 어디에 또 있겠나 싶습니다. 이번 호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알아야 할 필요는 크지만 막상 각 잡고 제대로 공부할 자신은 없는 이야기들, 예컨대 이번 호의 유상운, 정우현, 김두얼의 글은 배움의 재미가 쏠쏠한 서평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홍성욱의 서평은 답답함과 먹먹함, 그리고 딥빡침으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는 내내, 서리북 정기구독을 신청한 저 자신에 대해 새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ㅋㅋㅋ 다만 이번 호는 특집에 관해 한 마디 보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글과 기획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특별히 아쉬운 ..
하와이 사진신부들은 그랬다. 언어도 체제도 낯선 사회에서 고된 노동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다음 세대 아이들을 낳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아무리 쪼개도 부족하기만 한 돈과 시간을 모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들은 결혼 시장에서 사진 한 장을 근거로 얼마간의 여비와 교환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인생을 개척해 낸 선구자들이다. 작가 이금이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사진신부'라는 단어 뒤에 숨겨져 있는 도전과 용기와 모험, 그리고 애국의 정신을 독자 앞에 망라한다. (...) (심채경, 「하와이에 산다면 이런 비쯤 아무렇지 않게 맞아야 한다 - 『알로하, 나의 엄마들』」, 203쪽.)
일본. 참... 애증의 이름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이웃입니다만 '이웃사촌'이라 할만한 관계는 또 아닌 것 같습니다. 가깝게는 식민지배의 역사가 있고, 좀 멀리 가면 임진왜란의 경험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고, 조선 초에도 대마도 정벌이 있었습니다. 하나 같이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잖습니까. 그런데 또 양국의 역사가 갈등과 충돌로만 점철된 것도 아닙니다. 고대 이래로 누천년간 축적된 한일 교류의 경험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이후 수백년간 꾸준히 파견된 통신사(通信使)의 존재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과 일본은 갈등과 화합을 거듭하며 여태 이러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는 일본을 말할 때 마냥 객관적이고 엄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치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사피엔스를 '가장 잔혹한 종'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가짜 뉴스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문제작이다. 그래서 독자는 뿌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가 한편으로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존재인지를. 장애자들을 거세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선진 유럽이었다. 죄를 지으면 돌로 쳐 죽이고 사지를 찢었던 때가 불과 500년 전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동물들을 보라고 한다. 그들의 세계는 더 끔찍하다고. 그런 끔찍한 정글에서는 문명이 피어날 수 없다고. 우리가 지구상의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명을 이룩한 종이라는 사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경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는 뜻이다. 남을 누른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했었더라면, 즉 타인이나 타 집..
여름 휴가철에는 역시 이런 추리&스릴러가 제격이네요. 소년탐정 김전일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이럴 땐 아가사 크리스티가 떠올라야 좀 더 고상해 보일텐데 ㅋㅋ;;) 살인이 발생했다. 누군가 그의 목을 졸라서 살해했다. 그 누구도 인생을 살면서 감히 경험할 것이라 상상치 못할 대사건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건 살인이 아니다. 우리는 살인보다 훨씬 큰 위기에 봉착했다. 오히려 그가 살해당한 것을, 꽉 막힌 상황을 돌파할 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산속에 묻힌 이 화물선 같은 지하 건축물에서 탈출하려면 아홉 명 중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니까. 우리는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선택할까? 아홉 명 중 죽어도 되는 사람은, 죽어야 ..
빌 게이츠는 자신의 블로그인 게이츠 노트(http://www.gatesnote.com/)를 통해 종종 책을 추천하곤 합니다. 대중적 영향력도 그렇지만 골라주는 책도 대체로 다 재미있는 편이어서 저도 종종 들여다봅니다. 여기서 추천된 책은 거의 예외 없이 국내에도 곧장 번역되어 나오는데요, 『본 인 블랙니스』는 2023년에 휴가 추천 도서로 선정된 책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는 유럽 근대의 형성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추동한 힘도 아시아와 아메리카보다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찾는 것이 더 옳다...는 정도로 책 내용을 정리합니다. 실제로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아프리카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컨대 카이로를 방문한 말리 제국 황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