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문학동네, 2013.) 본문
1. 널리 알려진대로, 욕 참 찰지게 잘 썼다. 근데 욕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거친 조폭들이 막 나와서 허구헌날 두드려팬다거나, 한도 없이 가벼워서 엄청 웃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2. 요 전의 '百의 그림자' 속 사람들이 다들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던 것에 반해, 이 책 속 사람들은 맨날 때리고 욕하기에 겉보기에 두 소설의 분위기는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두 소설 속 사람들의 본성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니까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선택한 욕설은,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그나마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마 글타.
그녀는 오늘 검은 집 여자의 방문을 받았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마당과 가장 좋은 나무와 가장 비싼 자재를 들여 만든 집과 가장 검은 대무을 가진 그녀는 해가 지고 난 뒤에 컨테이너를 방문해 자기네 담 바깥으로 늘어진 감나무 가지에서 감을 훔쳐가는 손에 관해 말했다. 며칠을 두고봣는데, 라는 말로 시작해서, 막대를 사용해 막무가내로 가지를 두드려 감을 떨어뜨리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년에 관해 침착하게 설명했다. 별다른 대꾸도 없이 그녀가 하는 말을 흥미롭게 들은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그녀가 돌아간 뒤 별다른 감흥 없이 앨리시어의 뺨과 목에 때려 컨테이너에 가둔 뒤 검은 집 여자, 고상한 척을 하는 그년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년은 일부러 그랬어 애새끼 하는 것을 두고보고 내가 난감해하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 집으로 찾아왔을걸? 씨... 발... 년이 사람을 가르치려 들고, 응? 새끼가 교수라고 어느틈엔가 저도 교수다 못 배우고도 교양 있는 척 여우를 떠는 위선적인 년 그런 년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세상이라니 응? 잘난 것도 없이 잘났다고 떠드는 걸 내가 들어가지고 씨발, 하고 말한다. 앨리시어와 앨리시어의 동생이 씨발을 듣는다.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씨발을 그냥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년을 씨발 년이라고 말할 때 그년은 진정 씨발이 된다. 백 퍼센트로 농축된 씨발, 백만년의 원한을 담은 씨발, 백만년 천만년은 씨발 상태로 썩을 것 같은 씨발, 그 정도로 씨발이라서 앨리시어는 그녀가 씨발, 하고 말할 때마다 고추가 간질간질하게 썩는 듯하고 손발이 무기력해진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로부터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앨리시어는 그를 생각한다. 씨발 속에 잠자코 누워 있을 그 남자를 생각한다. 그는 벌써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잠들었으므로 말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잠들었다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오고 말 날에 관한 꿈을 꿀 것이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는 조만간 완성될 새집을 가장 적당한 가격으로 공사에 팔게 될 날을 소망하고 있다. 그는 꿈에서 그 순간을 볼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그게 모두 얼마일지 꿈속에서도 궁금할 것이다. (pp. 26~27.)
(전략) 거기까지만 해도 재미 이상은 아닌 듯했는데 저녁에 다시 시작했다. 뭐가 유별나게 거슬렸는지 그를 도로 마당으로 끌어내서 몸을 밀치고 당기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럴 때가 있고 그럴 땐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마꾼다. 씨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소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 앨리시어가 그녀의 씨발됨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나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반영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너무너무 배우기를 원했으나 배우지 못했고 그녀 자신도 가장으로부터 누구 못지않게 맞으며 자란 뒤엔 요릿집 주방으로 보내졌으며 월급을 매달 아버지에게 빼앗겼고 참다못해 벌인 첫번째 월급 투쟁에서 발가벗겨져 집밖으로 쫓겨나 눈 속에 서 있어야 했다. 그녀는 그걸 잊지 못해 괴로운 것이다.
웃기시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앨리시어는 꺼져라.
그렇게 할 때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니까. 그런 순간에 그녀는 한 점 빗방울처럼 투명하고 단순하다.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거야. 때리니까 때리고 싶고 때리고 싶으니까 가속적으로 때린다. 참지 못한다기보다는 참기가 단지 싫은 것이다. 때려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내면에 쌓는 일이 귀찮고 구차해 이것도 저것도 마다하고 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pp. 40~41.)
아버지가 형제도 없고, 외로워서 자꾸 거기 가는 것이냐고 앨리시어의 동생이 묻는다.
아버지는 유쾌해지려고 거기 가는 것이라고 앨리시어의 어머니가 말한다.
복수다.
그년은 입맛이 쓸 것이다. 시중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 손님으로 찾아온 머슴의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하는 팔자가 된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불편하고 속이 쓰릴 것이다. 너는 옛날에 내 집 마루로 발도 올리지 못했던 머슴이었는데 말이야, 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다. 그 늙은 년이. 아버지는 그것을 보려고 그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자신을 머슴으로 고용하고 외양간이나 다름없는 헛간에 머물게 하고 남은 밥이나 남는 옷가지나 던져주며 무시하던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방문해서 돈을 쓰고 돌아오는 이유란 그것말고는 있을 수 없다. 아니라면 상병신이지, 응? 혹은 이럴 것이다. 일부러 멸시를 받으려고 아버지는 그 집을 방문하는 거다. 옛 주인으로부터 멸시를 당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픈 욕망을 키웠을 것이다. 두고봐라, 하고 분발하고 분발해서, 집을 사고 땅을 살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남 보란듯 살겠다는 의지를 길렀을 것이다. 고아에 머슴이라고 자신을 멸시했던 사람들의 입맛을 쓰게 만들려고 말이다. 그러려고 가는 것이다. 머슴으로서 멸시를 당하려고 부득부득 말이다, 라고 앨리시어의 어머니는 말한다. (pp. 48~49.)
(전략) 아니 그 수고를 뭘 그렇게까지 했느냐면 내 큰아버지라서 할말은 아니지만 죽창을 가지고 이웃들을 막 찌르고 다녔던 개망나니 같은 놈이라도 지 어미한테는 그렇게 귀하고 가치 있는 놈이었던 거야. 알겠냐. 이 나이 되도록 인생을 살고 보니 그렇더라. 사람이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네 어미도 그렇고 다 그렇게 귀하고 불쌍한 거지. 세상 나고 세상 나고 자란 목숨 가운데 가치 없는 것은 없는 거다.
알어?
가느다랗게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뒤 그는 보랏듯 웅덩이를 향해 양동이를 엎었다. 낚싯바늘에 주둥이를 찢긴 물고기들이 피로 탁해진 물과 함께 웅덩이로 주르륵 흘러들었다. 앨리시어는 낚시의자 뒤편에 서서 노인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잡은 물고기 가운데 두 마리나 세 마리 정도를 남겨 그 자리에서 배를 가르고 햇볕에 말렸다가 집으로 가져갔다. 반나절 햇볕에 마른 물고기를 그가 직접 기름에 튀기거나 불에 구웠다. 구정물 냄새가 나서 한 점도 먹고 싶지 않은 요리였다. 알아? 너는 모르고 나는 안다는 식으로 그는 말하고 그게 그의 입버릇이지만 앨리시어가 보기에 그는 미개하다. 입을 찢었으면 먹든가 죽이든가. 입을 찢어놓고 도로 놓아주며 가치 있는 목숨 운운하는 인간은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p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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