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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그책, 200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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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그책, 2009.)

Dog君 2015. 2. 14. 17:45



1. 헌책방에서 골라든 얇은 소설. 원작은 1964년 미국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니 발표되고도 꼬박 50년이 지난 소설이다. 연인이었던 짐이 교통사고로 사망한지 오래지나지 않은 어느 하루 동안 조지가 겪는 일들을, 조지의 시선에 따라 그려냈다...라는 것이 가장 간단한 정리 되겠다.


2-1. 결론부터 말하면 '좋다'. 나는 소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소설의 소설로서의 매무새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주인공 조지가 나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감정이입 참 많이 된다.


2-2. 사고로 잃은 연인의 부재에 힘들어하고, 오랜 친구의 술기운을 빌린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한편으로, 미소년 케니에게 은근한 연정을 품지만, 정작 케니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킬까봐 소심하게 굴고(서점 장면은 압권이다), 단둘이 만났을 때는 술김을 빌려서 (여전히 소심하지만 맨정신일 때보다는 더 용기를 내어) 그를 유혹하다가, 결국에는 퇴짜.


2-3.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ㅋㅋㅋ 하고 살짝 비웃고 넘어가려다가도,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 다 그렇지 않나 싶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부초처럼 흔들리는 마음으로 왔다리갔다리 사는 게 나니까. 주변 사람들은 그게 뭐냐고 핀잔을 주곤 하는데, 나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3. 나이를 먹고 사회경제적 위치가 잡히고 나니까, 요새 부쩍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보려다가 퇴짜 맞고, 퇴짜 맞고도 계속 생각하고, 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도 참 복잡하고. 남들은 다들 잘 하는데 나한테는 유독 어려운 일들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디 한군데 뿌리를 못 내리고 물에 따라 떠다니는 개구리밥이나 부레옥잠 같은 심리상태랄까. 그냥 이대로 물 따라 바람 따라 흘러다니다가는 아무 것도 안 될텐데, 그렇다고 마음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하면 할수록 맥빠지는 생각들이다. 나는 이대로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걸까, 다른 사람은 어떤걸까.


4. 나는 책이건 영화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것이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책을 (허은실의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과 함께) 2015년의 책 리스트에 올려둔다.


        잠  에  서  깰  때,  잠에서 깨자마자 맞는 그 순간, 그때에는 '있다'와 '지금'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누운 채 천장을 쳐다본다. 이제 시선이 점점 내려오고, '내가'가 인식된다. 거기서부터 '내가 있다'가, '내가 지금 있다'가 추론된다. '여기'는 맨 나중에 떠오른다. 부정적이라도 안심이 되는 말, '여기'. 왜냐하면, '여기'는 오늘 아침, 내가 있어야 할 곳,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지금이 아니다. '지금'은 잔인한 암시다. 어제에서 하루가 지난 때, 작년에서 한 해가 지난 때, '지금'에는 날짜가 붙는다. 지난 '지금'은 모두 과거가 된다. 어쩌면―아니, '어쩌면'이 아니라―아주 확실히―조만간, 그날이 올 때까지.

  두려움이 미주신경을 비튼다. 저 멀리 어디에서 기다리는, 다가올 죽음이 안기는 메스꺼운 경련.

  그러나 그사이에, 엄격히 훈련을 받은 대뇌는 주도권을 잡고 시험을 하나씩 시작한다. 다리를 뻗고, 허리를 굽히고, 손가락을 꽉 쥐었다가 놓는다. 이제 대뇌는 온몸의 기관에 하루의 첫 명령을 내린다. '일어나'.

  말을 잘 듣는 몸은 침대에서 일어난다. 류머티즘이 있는 엄지손가락과 왼쪽 무릎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유문이 경련을 일으켜서 가벼운 현기증도 인다. 벌거벗은 채 욕실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방광을 비우고 몸무게를 잰다. 헬스클럽에서 그렇게 몸을 움직였는데 아직도 68킬로그램이라니! 그리고 거울로.

  궁지에 빠진 표정밖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 내가 스스로에게 저지른 일, 그 58년 동안 어찌어찌하여 만들어진 뒤죽박죽의 무엇. 흐릿하고 지친 눈빛, 거칠어진 코, 제 시큼한 독에 찌푸린 듯 양쪽 끝이 아래로 내려와 찡그린 입술, 근육이 축 처진 뺨, 쭈글쭈글 주름져서 늘어진 목. 완전히 지친 수영 선수나 육상 선수의 모습. 그러나 포기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동물은 끝날 때까지 계속 싸우리라. 용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대안은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pp. 7~8.)


  조지는 오늘 아침, 거대 도시의 미친 마차 경주 한가운데에서 또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벤허도 놀랄 마찬 경주다. 가장 빠른 속도를 내려고 차선을 옮기고, 빠른 왼쪽 차선에서는 속도를 시속 130킬로미터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으며, 미친 십대가 뒤따라오지 않게 하고, 여자가 앞에 끼어들지 않게 한다(십대와 여자는 진입로에서 따로 보내야 한다). 모터사이클을 탄 교통경찰은 증거 없이도 쫓아온다. 빨간 불을 번쩍이며 뒤쫓아서 길가로 차를 대게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면 경찰은 정중하지만 엄하게 양로원으로 끌어간다. 그곳에서는 '연장자들'(이 공손한 나라에서는 '노인'이라는 말이 '검둥이'나 '유대 놈' 같은 욕이 되었다)이 나이 든 몸을 쉬며, 어릴 적에 하던 놀이를 조금 다르게 다시 배운다. 이제 그 놀이는 '수동적 레크리에이션'이라 불린다. 아, 연장자들도 할 수 있으면 섹스하게 하라. 할 수 없으면, 유치하고 에로틱한 놀이라도 마음껏 하게 하라. 결혼하게 하라. 여든 살이든, 아흔 살이든, 백 살이든, 무슨 상관인가. 연장자들이 고속도로에 나와서 어슬렁거리며 교통을 막지 않도록 그 주의를 끌 만한 일들은 무엇이든 하라. (pp. 32~33.)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친밀하게 씩 웃고 있을 뿐이다. 조지는 이 이중적인 대화가 서로를 더 가까이 이해하게 만들지는 않더라도, 그 '이해 못함'과 서로 엇갈린 목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친밀함으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케니는 연필깎이 값을 치른 뒤, 친구에게 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다.

  "또 뵈어요."

  케니가 서점을 나간다. 조지는 케니를 뒤쫓는 듯이 보이지 않으려고 잠시 서점에서 서성거린다. (pp. 89~90.)


  "아니, 아닙니다! 보들레르가 말하지 않았나요? 애완동물은 악마로 변해서 주인의 삶을 갉아먹는다고?" (p.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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