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서경식 다시 읽기 (윤석남 외, 연립서가, 2022.) 본문
저는 미술에 대해 참말로 까막눈입니다. 서경식도 잘 알지 못합니다. 꽤 인기있는 저자인 것은 알지만 특별히 그의 글을 열심히 읽은 적은 없습니다. 『고뇌의 원근법』(돌베개, 2009.)을 읽었지만 하얀 건 종이요 까만건 글자요, 하며 힘들어했던 것만 기억납니다;;; 아, 하나 더 있네요.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그게 언제적이여...) 그의 형이 쓴 『서준식 옥중서한』을 읽다가 포기한 기억도 있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서간문에 녹아있는 소소한 통찰과 깨달음들을 이해하기에 그때의 저의 세계관은 너무 단순했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완전한 자의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분의 사인을 받게 됐고, 기왕 책장에서 꺼낸 김에 한 번 읽어나 보자...는 마음 정도였거든요. 물론 막연한 궁금함은 있었습니다. 이른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장기복역 중인 두 형(서승, 서준식)이 있고, 그 와중에 부모님마저 여읜 자이니치 서경식은 왜 그렇게 미술을 파고들었을까, 하는 궁금함 말이죠.
이 책은 서경식에 대한 책입니다. 그와 협업했던 사람, 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 소설가, 문학평론가, 출판인 등 참 다양한 사람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이렇게 두툼한 책을 냈다는 것은 그만큼 서경식의 영향력이 컸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이런 책까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글쎄요, 미술도 모르고 서경식도 모르는 제 깜냥으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서경식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서경식의 글이 줄곧 강조하는 마이너리티로서의 정체성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낯선 감정을 느끼게끔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막연한 감상 정도만 감히 말해봅니다. 서경식이 미술을 통해 우리에게 했던 말들은 사실 자기의 소수자성에 대한 절절한 호소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호소를 통해 우리는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 더 나아가 마이너리티의 문제가 지금 당장 우리 곁에 실재하는 문제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겠죠. 서경식이 일깨워준 그 감각은 단지 타인을 향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역시 언제 어느 순간에나 마이너리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바로 그럴 때, 서경식을 통해 깨달은 그 감각이야말로 우리를 지키는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겠죠.
(...) 나는 한때 그를 향한 어깃장에 가까운 반감을 품은 적이 있었다. 알다시피 그의 두 형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서슬 푸른 유신 시대에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결국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후 한참 뒤에야 그들은 가까스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 갇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도 모를 아들을 위해 일본의 부모는 온갖 곳을 뛰어다니며 구명운동을 벌였고 끝내 두 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광주에서의 그 일이 일어난 해에 어머니가 먼저, 그로부터 딱 3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에 관한 글에서도 서경식은 이때 일에 대해 말한다. "1983년 가을, 나는 난생처음 유럽 여행을 떠났다. 1980년 5월, 어머니가 무자비한 암의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다. 광주 5·18 학살이 진행되던 바로 그때이기도 했다. 그 3년 뒤의 5월,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을 지켜본 뒤 나는 아무런 구체적인 목적도 없이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많은 성당, 교회, 수도원, 미술관을 돌아보며 서양 기독교 세계 특유의 죽음의 도상들과 조우했다. 아니 그보다는 무의식 중에 나 자신이 그런 것을 갈구하며 방황하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바로 그것이 그를 한국에 처음으로 알린 책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모태가 된 '그림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를 향한 나의 어떤 위화감 역시 바로 그 책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자신의 두 형을 감옥에 두고 팔자 좋게(?) 해외여행, 그것도 유럽을 쏘다니며 호사스럽다 해도 좋을 미술관을 전전한 그의 행적을 선뜻 지지하기 어려웠다. 방금 인용한 글에서 나오듯이 그의 여행이 얼마나 그에게 절박한 것이었는지 눈곱만큼도 짐작하지 못한 채 시건방진 예단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나는 그의 『디아스포라 기행』이란 책을 구해 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큰 고통에 직면해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고 그의 서양미술 '순례'가 말 그대로 순례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 (서동진, 「서경식 선생과 로얄 밀크티」, 80~82쪽.)
'고난의 공동체'는 새로운 집단을 상상했던 서경식이 실패를 자인했던 오래된, 말하자면 거듭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고난의 공동체를 상상하기 위해 낱낱의 인생이 자신을 통해 드러나도록 하는 증언의 언어를 선택했다. 송신도 할머니를 향한 공감을 위해 그녀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았을 어머니의 삶을 송신도 할머니의 삶 위에 포개거나 누명을 쓰고 필요 이상의 처벌을 받았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어느 사형수의 삶을 불러내는 식으로. 그들의 삶이 그 자체로 사료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실재했었다는 사실이 그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고난을 함께하는 것만이 고난의 공동체가 허락하는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아니다. 고난의 공동체는 동일한 아픔의 교집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아픔과 자신을 연결할 수 있는 수많은 통로를 상상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아픔의 능력'이라 부른다 해도 과장된 호명은 아닐 것이다. (박혜진, 「번개 같은 직감」, 139쪽.)
'독일적' 아름다움과 힘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의 영상미를 완벽할 정도로 계산해서 만든 이 영화에서 나는 광기를 느꼈다. 나치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몰랐을 리 없다. 레니는,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무관심했고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닫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나치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치 제복이 멋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자신이 안전한 위치에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이 학살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다는 전제는 다수자이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나치 제복을 멋지다고 느끼는 그 감정에 공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제복은 결코 '단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늘 프로파간다이며 사회적 행위다. 단순하고 순수한 예술 표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지점과 위치를 되물어야 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명령에 충실'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했고, 그렇게 수많은 상상력의 차단이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하마무, 「소녀의 눈물」, 232쪽.)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작품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깊은 친교를 맺었던 두 예술가. 유대계였던 쇤베르크는 나치가 대두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유대인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쇤베르크를 존경했던 칸딘스키는 그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고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유대인을 핍박하던 사회 분위기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그래도 나는 그런 이유로 당신을 차별하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쇤베르크는 "칸딘스키! 당신이 관심 없노라고 말한 것은 사회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는 일이나 다름없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조차 알지 못하는 거요?"라며 칸딘스키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리고는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유유자, 「안으로부터의 굴레, 밖으로부터의 굴레」, 249쪽.)
교정. 1판 1쇄
78쪽 12줄 : 영화 들로 -> 영화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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