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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인구를 다해봐야 30만 남짓 되는 작은 도시다. 그곳에서 나서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다 보냈다. 서울로 올라온 것은 스무살짜리 대학 새내기가 된 해의 늦겨울이었다. 변화를 싫어하는 천성은 그때도 마찬가지여서 서울로 삶터를 옮긴다는 것이 이만저만 걱정되는 일이 아니었다. 경상도에서 신입생이 올라오면 선배들이 빙 둘러싸고는 막대기 같은 것으로 쿡쿡 찌르며 “말 해봐, 말 해봐” 하며 놀린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은 참이었다. 내 서울 생활은 그렇게 걱정 반 스트레스 반으로 시작되었다. 내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서울은 모든 것이 낯설고 놀라웠다. 말투는 어색했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울에서 처음 알았고, 1년에 두 번 이상 눈이 ..
스무살이 넘은 한국 청년은 으레 한번쯤 술독에 빠진다. 천성적으로 술을 아주 싫어하거나 알콜분해능력이 아주 낮다면 모를까 20대의 첫 몇년동안 술 앞에서 (되지도 않는) 객기를 부리는 것으로 일종의 성인식을 치른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돈 없는 대학생에게 술만큼 값싸게 하룻밤 즐길 수 있는 것이 또 없었으니까. 술이 술을 부르다 못해 소주 안주로 맥주를 마시는 지경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며 치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알콜에 찌들어 있는 와중에도, 단 한가지만큼은 술에 관해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목이 마를 때 맥주 생각이 난다는 말. 나도 잘 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다음에 들이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얼마나 시원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증이 날 때 맥주가 가장 먼저 떠..
1-1. 제목이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이니까, 일단 내 기억 속 ‘제국’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제국’이라고 했을 때는... 음...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언덕의 도시에서 시작해 몇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지중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크기로 성장한 로마제국... 음... (나는 한 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한참 빠졌었다. 1판 1쇄를 구한답시고 온 시내를 다 돌아다녔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하면 흑역사지만.) 몽골초원의 작은 평범한 유목민족이 인류사상 최대의 포텐을 터뜨리며 유라시아 전체를 호령했던 몽골제국... 음... (몽골제국에 대해서는 예전에 잭 웨더포드의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었다.)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은 반복..
내 십자수에는 철칙이 있다. 절대로 결과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 취미생활에 무슨 철칙까지 세우며 요란을 떠냐고 한소리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철칙’이라는 것이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껏 십자수를 해오면서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다 선물로 줘버린 탓에 생긴 습관에 가깝다. 이런 습관이 생긴 것은 무엇보다 실용적인 이유가 크다. 십자수로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게 기껏해야 쿠션이나 시계, 액자 정도인데, 그걸 다 내가 꾸역꾸역 갖고 있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당장 내가 못 버틴다. 1년에 4개 정도를 완성한다고 치면 내 방에는 매년 시계와 쿠션과 액자가 하나씩 추가된다는 뜻이다. 십자수 쿠션과 십자수 시계와 십자수 액자가 막 서너개씩 있는 노총각의 방... 아, 그것은 ..
중국 당나라의 작가 심기제沈旣濟가 지은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한단邯鄲의 한 주막에서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고 한다. 여행길에서는 누구나 마음(과 입)이 열리는 법이라서 그런가, 처음 만난 사이에 나이 차이도 꽤 났지만 노생과 여옹은 곧바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여옹의 옹翁과 노생의 생生이 반드시 이름은 아닐 것이다.) 노생은 야심만만한 젊은이였지만 타고난 가난 때문에 좀처럼 출세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사람이었나보다. 천하가 난세였으면 또 모를까, 『침중기枕中記』가 쓰여진 당나라 중기처럼 평화로운 시대에 그런 기회가 흔할리가 없지. 그렇게 신세한탄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고 한다. 한참 수다를 떨고, 대충 화젯거리가 떨어질 때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