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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런던에서 리플리로 가는 방법은 지난 번에 썼으니 그것을 참고하시고... 이번에는 리플리로 간 진짜 목적, 에릭 클랩튼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하필 내가 간 날 날씨가 궂어서 사진 상태는 전반적으로 구리다. 에릭 클랩튼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음악 팬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에릭 클랩튼은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영국을 거쳐간 캐나다 공군의 에드워드 월터 프라이어Edward Walter Fryer와, 마을에 살던 패트리샤 몰리 클랩튼Patricia Molly Clapton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에드워드는 유부남이었던데다가 마을을 곧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패트리샤는 미혼모였다. 1945년 3월 30일 에릭 클랩튼이 태어났을 때 패트리샤는 불과 16살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도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20대 초반부터 에릭 클랩튼에 빠져 살았다. 요즘 트렌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빈티지한 블루스 기반의 늙다리 기타리스트에게 내가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가 한창 우울의 끝을 찍을 때라서, 뭐라도 좋으니 마음 줄 곳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때부터 에릭 클랩튼에게 무섭게 빠져들었다. 하나둘씩 앨범을 사모았고,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다. 2007년과 2011년에 있었던 두 번의 내한공연 때는 연봉 600만원짜리 대학원생 주제에 30만원이 훌쩍 넘는 S석 티켓을 사고 그랬다. 돈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쌩쑈 덕에, 그래도 20대의 우울한 시기를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마치 10대 후반에 이상은에게 빠져들었던 딱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난 여름에 잠깐 파리에 갔다. 나에 대한 두 번의 소매치기 시도를 포함해 내 일행 중 한 사람이 당한 소매치기 때문에 파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나빠졌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장소가 두 군데 있었다. 첫번째는 로트렉이 커리어 초기에 그렸던 인물화를 많이 보유한 오르세 미술관이었고, 두번째는 페르-라셰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페르-라셰즈 묘지가 더 나았다. 페르-라셰즈 묘지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페르-라셰즈 묘지를 계기로 유럽 도시의 공동묘지에 대해 꽤 호감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유럽 여행기에서 공동묘지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조작한 것이 아닙니다. 남이 대신 뛰어준 것도 아닙니다. 한 번에 10km 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맑은 날 아침마다 몇km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몇백km를 뛰어 마일스톤 하나와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몇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퍼플 레벨’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걸 얻느라고 일 년 다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10월 28일 아침의 일이다. 드디어 누적 2,500km 돌파. 10월 초만 해도 10월 안으로 2,500km를 돌파할 것 같지는 않았다. 28일에 출장을 떠날 예정이라 평소보다 한 달이 더 짧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안 되는가 했는데, 막상 2,500km가 눈앞에 오자 어떻게든 무리해서라도 2,500km를 채우고 싶어서 주말에 욕심을 냈더니 결국 출장 떠나기 직전..
春夏以來, 旱勢太甚, 殿下焦勞、勤恤, 避殿、減膳, 祀典徧擧, (...) 理冤獄, 日不暇給봄·여름 이래로 가뭄 기운이 매우 심하여, 전하께서 애써서 노력하시고, 부지런히 구휼(救恤)하시며, 피전(避殿)하시고, 감선(減膳)하시며, 사전(祀典)을 두루 거행하시고, (…) 원통한 옥사(獄事)를 다스리시기에 날로 겨를이 없으십니다.- 각주 : 성종실록 성종1년(1470년) 6월 2일.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의 번역을 내가 약간 다듬었다. 조선시대의 아홉번째 임금인 성종이 즉위한 이듬해는 유독 가뭄이 심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특히 삼남지방의 가뭄이 심했다고 한다. 한창 곡식이 여물어야 할 봄과 여름에 이렇게 날이 가물었으니 문제가 보통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면 그 해 소출에 문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