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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근대 국가에서 '인구'란 단지 여러 사람을 뜻하는 집합명사가 아닙니다. 국부의 증대를 위해 인구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한 중농주의 이래로 인구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권력이 개입하여 조정할 수 있는 통치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죠. 물론 ‘권력’ 같은 거창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가의 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서는 인구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관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을 모색하던 1960년대에 가족계획을 통해 인구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가족계획의 역사에도 온갖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피임으로 산아를 조절한다는 것은 전통적 농경사회의 관념에 배치되는 데다가,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것 역시 여러 가지 현실적..
델리아 오언스가 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었습니다. 성장소설로나, 스릴러소설로나, 경이로운 자연풍경에 대한 묘사로나, 대체로 다 만족스럽습니다.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카야는 갈수록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갈매기한테만 이야기했다. 아버지한테 배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려면 어떤 거래를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습지에 나가면 깃털과 조개껍데기를 모으고 가끔은 그 소년을 볼 수도 있을 텐데, 카야는 친구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친구가 왜 필요한지는 알 것 같았다. 매혹적인 이끌림이 느껴졌다. 강어귀도 함께 돌아다니고 소택지를 샅샅이 탐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은 카야를 그저 꼬마라고 생각할 테지만, 습지를 빠삭하게 꿰고 있으니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69쪽.) 다음 날은 보통 ..
역사학은 여러 전문분야 중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TV와 스크린에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가 넘쳐나고, 서점에는 소설과 만화가 가득하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박물관 혹은 문화재 안내판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솔까말, 과거를 다루기만 하면 거의 다 '역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역사가 소수의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닌지는 한참 됐습니다. '공공역사public history'라는 개념은 이처럼 학계 바깥에서 이뤄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일련의 실천들을 지칭합니다. 그러다보니 공공역사의 범위는 무척 다양하고 넓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단번에 아우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 저자에 의해 쓰여진 첫 공공역사 책인 『공공역사를 실천 중입..
매년 보는 한가위 보름달이 조금 지겹게 느껴진다면 망원경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같은 보름달도 새삼스럽다. 보름달에 방아 찧는 토끼가 보였던 것이 실은 달 표면의 높낮이와 밝기 차이로 인한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자연이나 사물에서 익숙한 패턴을 찾아내는 심리 현상으로, 변상증이라고도 한다)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역사도 이와 비슷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도 새로운 렌즈를 들이대면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지역’이라는 렌즈가 있다. ‘한국사’의 범위를 ‘한국’ 대신 ‘지역’으로 좁혀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에 끝난다. 하지만 당시 경남 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