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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0. 뭔가 해명되지 않는 궁금증이 있을 때 때마침 그 부분만 북북 긁어주는 것 같은 책을 만나게 되면 그 때 책 읽기의 오르가즘희열 비슷한 걸 느끼게 된다. 알고 보니 나온지 꽤 지난 책인 경우에는 '아, 나보다 먼저 이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까지 더 해져서 희열이 좀 더 커지는데, 재작년엔가 '읽었던 '한중일 인터넷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가 그랬고, 이 책이 또 그렇다. 1-1. 한 2000년 정도를 전후로 해서 'post'나 '탈脫' 같은 접두어가 엄청 유행했던 것 같다. 문사철 전체적으로 다 '포스트모더니즘'부터 해서 '탈식민주의', '탈근대', '탈구축' 등등 하도 말들이 많아서 인문대 앞 주차장에서 발에 툭툭 치이는 게 포스트고 탈이고 막 그랬더랬다. 서구에선 벌써 7..
1-1. 정찬 소설 속에서 '현재' 혹은 화자가 몸담고 있는 시간/공간은 늘상 부정적이다.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억압적이고 이해심이 없으며 둘러싼 조건들은 사람들을 억누르기만 할 뿐이라서, 그 모순된 현실은 언제나 부정되거나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보인다. 1-2. 정찬 소설 속에는 대개 시간/공간이 하나쯤 더 등장한다. 액자식 구성 혹은 단순하게 병렬하는 식으로 배치되는 그것은 현재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거나 화자가 놓인 시간/공간을 해석하기 위한 레퍼런스인 경우도 있다. 2. 최근 몇 권의 책에서 정찬은 부쩍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광야'에서 5월 광주를 다룬 것 정도를 넘어서, 이번 소설집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나 용산참사, 굴뚝농성 등을 직접적으로 끌어온다. 꽤 오래 전..
1. 한때는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1인분씩의 하늘과 그늘을 가지고 살고, 딱 그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의 하늘과 그늘을 바꾸는 것은 나의 몫이다. 허삼관네 가족은 이날부터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옥수수죽을 마시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말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움직이면 바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오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없이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며 세월을 보냈다. 허삼관네 가족은 한낮부터 밤까지, 또 밤부터 한낮까지 잠만 자며 그해의 십이 월 칠 일을 맞았다. 그날 밤 허옥란은 옥수수죽을 평소보다 한 그릇을 더, 그것도 훨씬 걸쭉하게 끓였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과 ..
1. 헌책방에서 골라든 얇은 소설. 원작은 1964년 미국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니 발표되고도 꼬박 50년이 지난 소설이다. 연인이었던 짐이 교통사고로 사망한지 오래지나지 않은 어느 하루 동안 조지가 겪는 일들을, 조지의 시선에 따라 그려냈다...라는 것이 가장 간단한 정리 되겠다. 2-1. 결론부터 말하면 '좋다'. 나는 소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소설의 소설로서의 매무새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주인공 조지가 나랑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감정이입 참 많이 된다. 2-2. 사고로 잃은 연인의 부재에 힘들어하고, 오랜 친구의 술기운을 빌린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한편으로, 미소년 케니에게 은근한 연정을 품지만, 정작 케니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킬까봐 소심하게 굴고(서점 장면은 압권이다), 단둘이 만났을 때는 ..
1. 두 권 합쳐 1500페이지는 너끈히 넘어간다. 정말 힘들게 다 읽었다. 헉헉헉. 2. 책 산 것은 지난 근황 글에서 쓴 바 있으니 그건 제외하고... 3.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중학생 때도 느꼈던 거지만 돈 키호테라는 양반, 참 재미있는 캐릭터 맞는 거 같다. 돈키호테형 인간이라고 하면 흔히 햄릿형 인간과 대비시키곤 하는데, 요즘 같은 결정장애의 시대에는 역시 돈키호테형 인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 4. 소설이라는 측면에서도 꽤 재미가 있다. 세르반테스는 여러 겹으로 소설의 안과 밖을 들락날락하는데 이런 화법은 요즘 소설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거 아닌감. 5. ...라고 말하지만, 사실 돈 키호테의 재미는 덤 앤 더머 수준으로 펼쳐지는 두 사람의 몸개그 & 버디무비에 있고, 세르반테스의 저질 말개그도..
1. 내게 있어서 올해(부터)의 학문적 화두는 단연 '경제'다. 전공이 경제학에 어느 정도 걸쳐 있다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거니와 작년에 도서계에 불었던 경제학 바람(피케티, 장하준, 장하성 등등...)에 자극 받은 것도 조금씩 있다. 그래서 2014년 마지막이자 2015년 첫 책이 요 책. 좀 더 길게 보면 작년에 읽었던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의 뒤를 잇는다고 할 수 있겠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2. 저자가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본래는 영어로 나온 책. 원서 제목은 (표지에도 떡 하니 박혀 있듯이) Economics: The User's Guide. 한국어 제목도 그렇고 영어 제목도 그렇고, 이 책의 지향점을 꽤 정확히 알려주는 것 같다. "여러분, 알아야 면장을 합니다." 전문 지식..
1. 이렇게 읽다가 '헉' 소리 나는 소설도 참 오래간만이다. 흔히 쓰는 의미의 '재미'라는 점에서 근래 읽은 책 중에서 제일 낫다. 성탄절 연휴를 꼬박 투자한 보람이 있다. 2. 소설 쓰기에 대한 메타 소설 같은 느낌도 있는데,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역사 쓰기도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역사가에게 텍스트 만들기의 윤리성은 무엇일까. 3. 문장은 섬세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화두는 묵직하다. 빨리 세실리아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침내 로비는 욕조에서 일어서서 몸을 떨면서 자신에게 커다란 변화가 닥쳐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벌거벗은 채로 서재를 지나 침실로 갔다. 어질러진 침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옷들, 바닥에 던져진 수건, 적도처럼 뜨거운 열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관능..
1. 조르바에 대해서는 '자유'가 어떻고 등등의 이야기가 더 많지만 소설 잘 못 읽는 나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뭐랄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이 뭔지, 인간답다는게 뭔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식이나 이념이나 논리나 신앙 같은 것들을 사용하곤 하지만, 글쎄 꼭 그게 그렇게 해야만 가능한 걸까. 그냥 좋은 건 좋은 걸로만 남겨둬도 괜찮겠지. 우리에겐 좋은 게 왜 좋은지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좋은 건 그냥 좋은 거다. 2. 암튼, 조르바는 돈 키호테 만큼이나 재미있는 캐릭터 맞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런 사람을 상당히 싫어하고, 내 성격에 이런 사람이랑 같이 다니라고 하는 것도 절대 사양이다. ㅋㅋㅋ 「두목 말씀이 옳으신지도 ..
1. '공장'이라는 단어는 내게는 무척 친숙하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부터 이미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계셨고, 좀 더 철이 든 다음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공장'에 계셨다. '공장' 덕분에 우리 가족은 부족하나마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공장'은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단어 중 하나였다. 그러고보면 이미 나 스스로가 '메이드 인 공장'인지도 모르겠다. 2. 공장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냄새로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커다란 기계 속에서는 연신 쇳덩어리들이 고속회전하고 있었고, 그 쇳덩어리보다 더 단단한 커터가 쇳덩어리에 닿으면 꼭 무슨 도자기처럼 어떤 모양이 깎여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얀 우윳빛깔의 윤활유들이 쉼 없이 끼얹어졌다. 그 윤활유 냄..
1. 거대한 배가 침몰했고, 국가는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그 배에서 살아나온 것은 "가만히 있으라"던 지시를 거부한 사람들과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갖추지 않은 선원들이었다. 2. 내가 전공하는 현대사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라서 내 부모세대의 경험과도 겹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도 언젠가 역사연구의 대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사는 이 시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가라앉은 배와, 그 배 옆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나중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아니, 만약 내가 수십년 뒤에도 여전히 역사학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