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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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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당시의 조선이 나름대로 전쟁을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 참담한 패전의 원인을 오직 조선 위정자들의 잘못에서 찾는 전쟁 서사에는 그런 준비에 대한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존재하기 어렵다. 결국 무용지물이 된 전쟁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참담한 결과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사가 다 그렇듯이, 오직 최악의 전쟁준비만이 최악의 전쟁 실패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다. 최악의 준비가 최악의 결과를 낳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최선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결과에 봉착할 수 있다. (...) (13쪽.) 홍타이지가 병자호란에 얼마나 많은 병력을 투입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홍타이지는 팔기만주·팔기몽고에서 약 1만 명을, 우전 초하에서 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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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접종의 전신前身은 종두법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활용되어온 방법인데, 영국의 시인 겸 서간문 작가인 메릴 워틀리 몬터규Mary Wortley Montague에 의해 유럽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몬터규 부인은 1714년 천연두에 갈렸고, 그로 인해 여성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가 1717년 투르크 영국 대사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투르크 제국에서 치료사들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을 목격하게 되었다. 투르크의 치료사들은 천연두에 걸린 환자들 중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의 수포에서 액체를 뽑아낸 뒤 이를 건강한 이의 피부에 주입했다. (...) 투르크 제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몬터규 부인은 종두법을 옹호하고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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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역병이 돌 때 한성부에서 환자나 주검을 적발하여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바로 성 밖에 있는 동서활인서에서는 역병으로 생긴 기민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았다. "(...) 윤질이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 활인서, 혜민서에 구료를 맡겨 삼군문(三軍門)으로 움막을 짓도록 하고 진청(賑廳)으로 하여금 식량을 공급토록 하라"는 1815년의 『순조실록』의 기록은 당시 서울의 각 기관에서 어떻게 전염병 환자를 처리했는지 잘 보여준다. 동서활인서의 주요 기능은 병자에 대한 약물치료보다 기민들에게 죽의 형태로 최소한의 영양가를 공급하여 단지 사문(死門)을 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다.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면 할수록 구휼 대상자가 많아지고 정부에서 줄 수 잇는 곡식에도 한계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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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나무 위에서 살던 시절부터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킨 압력으로 작용했다. 유인원과 다름 없었던 시절에는 인류를 나무 위에서 내려와 대지에 서게 했고, 선사시대에는 인간의 활동 반경을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확장시켰으며, 중세에는 종교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근대에는 행정과 학문의 발달을 추동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하는 것이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역시 인류 사회를 크게 바꿀 것이라는 전망하다. 과거에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알면, 코로나19로 새롭게 다가올 인류 사회에 대해서도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질병의 또 다른 일면은 사회적인 부분에 있다. 기본적으로 질병은 각 개체가 걸린다. 하지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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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민중 의식은 신분과 분야를 뛰어넘어 성장하면서 불평등과 압제를 벗기려는 봉기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 봉기가 지역 단위로만 전개된 게 아니라 직업적 봉기꾼에 의해 다른 지역과도 연계되면서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음 시기의 더 큰 변혁 운동을 예고한 것이다. (174쪽.) 1908년 겨울, 운명의 계절이었다. 그는 옛 부하이자 고종사촌인 김상열(金相烈, 일명 김자성(金子聖))을 만나러 영덕 눌곡으로 갔다. 그를 맞이한 김상열 형제는 음모를 꾸몄다. 신돌석의 시체를 일본군에 바쳐 상금을 타내려는 속셈이었다. 신출귀몰의 장수는 많은 술을 들이켜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때 김상열 형제가 도끼를 들고 그의 몸을 내리쳤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274쪽.) 교정. 36쪽 9줄 : 야로를 부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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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형은 신체에 형벌을 가하는 야만적인 제도로, 갑오개혁 이후에도 미처 폐지되지 않았는데, 총독부가 일본에서는 이미 폐지된 이 제도를 한국에서는 법령으로 공식 채택한 것이다. 일제는 그 이유로 '민도의 차이'를 내세웠다. 감옥 시설의 미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핞편으로 공포심과 수치심을 유발시켜 범죄 감소 효과를 거두려 한 것이지만, 이른바 '조선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차별과 멸시가 짙게 깔린 지독한 악법이었다. (...) 태형은 한국인에게 수치감과 모욕감, 분노를 안겨주었고, 이는 3·1운동 당시 각 지역 주민들이 헌병과 순사 주재소를 습격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일본인의 토지 집적과 농장 개설은, 곧 한국 농민의 토지 상실과 소작농으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농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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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원이처럼 술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화상실에서 보낸 포스트모던한 밤은 끔찍했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기억이 툭툭 끊기는 경험도 끔찍했고, 다음 날의 숙취, 숙취로 인한 두통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인간이 아니라고 혼자 조용히 이를 갈았다. (...) 하지만 나는 술꾼의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2주 정도 지나자 입가에 맴돌던 술맛과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의 엷은 흥분, 들떠서 떠들던 분위기들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술 생각이 났다. (...) (29~30쪽.) 비슷한 맥락에서 만취해 돌아오는 길에 내일 해장할 생각으로 라면을 샀고, 후후, 이렇게 취했어도 내일을 준비하다니, 나는 정말 프로 술꾼!이라는 우쭐함과 함께 잠들었는데, 다음 날 끓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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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참석은 단지 작고한 은행가에 대한 우정의 표시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르셀 페리쿠르와 함께 〈프랑스 경제의 한 상징이 사라지다〉라고 일간지들은 이번에도 절도 있게 제목을 뽑았다. 반면 〈그는 아들 에두아르의 비극적인 자살이 있은 지 7년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논평한 신문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상관없었다. 마르셀 페리쿠르는 이 나라 금융계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그의 서거는 이 1930년대가 다소 어두운 전망 속에 시작되고 있기에 더욱 불안한 어떤 시대적 변화를 나타낸다고,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12쪽.) 그러자 정원사 레몽이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휠체어가 너무 갑작스레 움직이는 바람에 첫 번째 계단을 지나자마자 사람들은 참사의 규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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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나는 그 행사를 통해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때 만난 두 명의 입양인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한 명은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덴마크 국적의 수지였다. 언제나처럼 밤 산책을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오자, 수지의 침대는 비어 있는데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수지가 수도를 틀어 놓은 채 잠시 외출한 거라 여기고 무심코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이미 반쯤 물이 찬 욕조에 외출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수지가 보였다. 수지는 갓 스무 살로 열다섯 명의 입양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고 발랄했으며, 한국에 있는 가족도 쉽게 찾아서 그때까지 거의 매일 생모와 언니들을 만나러 외출을 나가곤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제야 수지가 날 올려다봤다. 물이 찬지 입술이 파랬다. 나는 일단 욕조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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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존재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작가들이 현실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행한 현상은 인류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비극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난 유미주의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지나치게 경멸한 나머지 예술을 현실에서 분리시켰습니다. 그것이 작가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유미주의자들의 정신과 대척점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 바로 무명작가의 문장입니다. 자신의 언어에 책임을 지고 완전한 실패를 통절하게 받아들이는 작가가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설령 우리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작가가 얼마나 우리를 지탱시켜줄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