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928)
Dog君 Blues...
1. 결국 작가는 한 사람이니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다양성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은, 읽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아니, 작가의 게으름에서 비롯한 자기복제...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도 같은 작가의 책 서너권을 연이어 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작가만의 특별한 세계 같은 것이 감지된다...라는 뜻입니다. 야노 씨와는 봄부터 가을까지 만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빠짐없이 만났다. 야노씨는 은백색 테에 둥글고 맑은 유리를 끼워넣은 안경을 끼고 타박타박 걸어다녔다. 다도를 배운 듯 단정한 자세로 앉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가치관이 맞지 않네요,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다. 어떤 면에서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는 것인지 자세한 내용도 듣지 못했다. 가치관이 맞지 않..
1. 널리 알려진대로, 욕 참 찰지게 잘 썼다. 근데 욕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거친 조폭들이 막 나와서 허구헌날 두드려팬다거나, 한도 없이 가벼워서 엄청 웃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2. 요 전의 '百의 그림자' 속 사람들이 다들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던 것에 반해, 이 책 속 사람들은 맨날 때리고 욕하기에 겉보기에 두 소설의 분위기는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두 소설 속 사람들의 본성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니까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선택한 욕설은,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그나마의 방어기제가 아닌가... 마 글타. 그녀는 오늘 검은 집 여자의 방문을 받았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마당과 가장 좋은 나무와 가장 비싼 자재를 들여 만든 집과 가장 검은 대무을 가..
1. 지난 밤엔 숙직을 했다. 숙직실이 있는 정문 앞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여기에서 늘 쏴아쏴아 하는 소리가 난다. 어제처럼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이면, 빗소린지 물소린지 모를 소리가 쏴아쏴아하고 계속 난다. 지난 번 첫 숙직은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고, 살짝 설레기까지 했는데, 이것도 두번째부터는 별로 안 그렇다. 그러면 그렇지, 암만 재미있어도 일은 그냥 일이다. 2. 그리고, 아침엔 회의를 했고, 심각하게 멘붕에 빠졌다가, (원래는 1시 퇴근인데) 꾸역꾸역 일을 하다보니 서너시간을 더 일했다. 점심엔 낙지볶음을 먹었다. 역시 머리 아플 때는 낙지볶음이 당긴다. 3-1. 그래도 어떻게든 원래 퇴근시간보다는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어서, 벼르고 별렀던 코스로 관악산에 올랐다. 생각보다 훠어어어어얼씬 ..
1. 진보든 보수든 알고 보면 마 똑같더라...하는 식의 이야기가 이제는 좀 식상할 때도 되긴 했다. 이런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지도 한 20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정작 나오는 이야기는 20년째 답보 상태라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전에 어디 워크샵에서, 그런 얘기 해서 제일 좋아한게 결국 조선일보 아니었냐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좀 냉소적인 것 같아도 그거만큼 제대로 짚은 이야기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런 비판을 영리하게 내화시킨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이 씨발 왜 내 등에 칼 꽂아"하면서 감정적인 반론 펴기에 바빴으니까. 2. 엉뚱하게 이야기가 샜는데,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주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히는 어렵다는 것.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점을..
1. 우울하다. 매우 우울하다. 2. 사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오늘 상현씨가 내게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말을 했다. 언제는 기분이 성층권 뚫고 돌파하는 새턴V형 로켓트처럼 치솟아 오르다가도, 또 언제는 맨틀 뚫고 외핵 내핵까지 파고 들어가는 모구라 탱크 같다. 정말로 정상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로 심하면 안 될 것 같다만은, 평생 이러고 살았는걸 인자 와서 우짜겠노. 3. 의외로 내 주변에는 독실한 신앙인들이 많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걸쳐 철저하게 냉담자로 살던 기원이가 어느 순간,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기쁨에 차서 내게 말하던 때의 눈빛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보다 조금 더 전의 나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구원할 거라 믿었지만, 그게 ..
1.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은, 요즘도 여전히 기분은 널을 뛴다. 어느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게 기분 좋고 그러다가도 또 언제는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하고 의욕도 없어지고 힘도 없고 막 그렇다. 이런게 진폭이 커지면 조울증이 되지 싶은데, 아직은 그렇게 진폭이 안 크다. 오늘은 후자의 날이다. 2.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조지 레이코프의 '폴리티컬 마인드'를 집어들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과학... 뭐 그런 공부를 한 사람이라는데, 서문만 본 지금으로서는, 책이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동시에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기대가 된다.
1. 어떤 논증을 하는데 있어서 이렇다할 근거를 대는 것이 아니라 뜬금 없이 민족성을 들먹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걔네들은 그냥 원래부터 그래'라는 식의 전가의 보도 같은 것에만 의지해서 근거를 댄다면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그래서 그것은 매우 게으른 논증이 된다. 더욱이 거기에 감정이 들끓는 표현들까지 더해지면 안 된다. 진짜 그러면 안 된다. 2. 모름지기 학문이란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끓어오르는 감정의 언어들을 꾹꾹 억누르면서, 차갑고도 정확한 언어만 고르고 또 고르고, 다듬고 또 다듬은 후에 쓰는 것이어야 한다. 3. 그러지 못하다면, 글 속에서 저자 자신의 입장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글을 읽는 사람이 그것을 통해 과연 얼마나의 통찰을..
1. 황정은 소설 속의 세계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고 냉정하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여리고 착하고 순하다. 세상에 대해 비관하고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에 대해서만은 희망하고 낙관하고 싶어하는, 그런 악착 같은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진다. 2. 이런 식의 소설/글을 읽다보면, 늘 한 가지 질문이 공통적으로 떠오른다. '대체 어디까지가 자기 자신의 경험일까?' 3. 책을 읽다가 표현이 좋다거나, (별 이유 없더라도) 인상에 남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어딘가에 정리해두고 싶은 부분을 블로그에 갈무리해둔다. 다른 때는 안 그랬는데, 유독 황정은의 글은 일단 인용하면 두세 페이지씩 길게 인용하게 된다. 뭔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경우엔 다른 사람의 종이에 이름을..
1-1. 밤이든 낮이든 별은 그 자리에서 그 밝기 그대로 떠있건만, 우리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그 별들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왜냐고. 낮에는 해가 너무 밝으니까. 졸라짱 밝은 거 옆에 있는데, 어떻게 빛이 나겠냐고. 1-2. 개발독재 시기 노동운동의 역사에는 '전태일'이라는 큰 태양이 빛나고 있다. 그 태양의 뒤에는 청계피복노조를 중심으로 한 YH무역 등 비숙련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 설마, 그걸로 끝인가? 당연히, 그럴리가 없다. (전략) 이 책이 소개하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은, 1960년대에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을 꽃피운 특별한 역사를 지녔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국가에 대한 일관된 전망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들은 일반 사회에서 널리 수용..
1. 이번 소설 선정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라디오와 팟캐스트와 그 외 각종 기타 등등에서 좋은 소설가라고 말들이 자자하기 때문에 선정한 작품 되겠음. 그러고보면 나의 소설책 선정 기준은 거의 전적으로 저자의 이름을 따르는 것 같다. 2. 최근작에서는 그렇게나 욕을 찰지게 잘 쓴다고 하는데, 이건 첫 소설집이라서 그런지 거친 단어들은 거의 안 나온다. 3-1. 실존하지 않는 상황/사건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얼핏 김중혁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김중혁의 상상력이 여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반면, 황정은의 상상력은 무슨 초현실주의 그림 같다. 사람이 갑자기 모자가 된다니, 그게 뭐야 대체. 3-2. 그리고 훨씬 더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이대로 이야기가 계속 흘러간다면 소설 속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