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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君 Blues...
내 십자수에는 철칙이 있다. 절대로 결과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 취미생활에 무슨 철칙까지 세우며 요란을 떠냐고 한소리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철칙’이라는 것이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껏 십자수를 해오면서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에게 다 선물로 줘버린 탓에 생긴 습관에 가깝다. 이런 습관이 생긴 것은 무엇보다 실용적인 이유가 크다. 십자수로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게 기껏해야 쿠션이나 시계, 액자 정도인데, 그걸 다 내가 꾸역꾸역 갖고 있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당장 내가 못 버틴다. 1년에 4개 정도를 완성한다고 치면 내 방에는 매년 시계와 쿠션과 액자가 하나씩 추가된다는 뜻이다. 십자수 쿠션과 십자수 시계와 십자수 액자가 막 서너개씩 있는 노총각의 방... 아, 그것은 ..
중국 당나라의 작가 심기제沈旣濟가 지은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한단邯鄲의 한 주막에서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고 한다. 여행길에서는 누구나 마음(과 입)이 열리는 법이라서 그런가, 처음 만난 사이에 나이 차이도 꽤 났지만 노생과 여옹은 곧바로 속내를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여옹의 옹翁과 노생의 생生이 반드시 이름은 아닐 것이다.) 노생은 야심만만한 젊은이였지만 타고난 가난 때문에 좀처럼 출세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사람이었나보다. 천하가 난세였으면 또 모를까, 『침중기枕中記』가 쓰여진 당나라 중기처럼 평화로운 시대에 그런 기회가 흔할리가 없지. 그렇게 신세한탄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고 한다. 한참 수다를 떨고, 대충 화젯거리가 떨어질 때쯤..
타고난 눌변이다.특히 임기응변이 잘 안 되는 편이어서 미리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면 더 말이 꼬인다. 낯가림도 심하다.처음 만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잘 없다. 인생의 첫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런 성격을 고치려고 애썼다.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연극을 했고, 일부러 사람도 많이 만났다. 사람 성격이라는 것이 의외로 쉽게 바뀌는 것이라서, 그런 식으로 의식적으로 두 학기 정도 살고 나니말수와 말주변이 꽤 늘었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간혹 들었고, 달변이라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났다. 낯가림이 심한 나,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둘 모두 내 인격의 일부가 됐다. 친한 사람을 만나면 수다 떨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동시에 가..
1-1.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 안,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싱숭생숭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해서 이 나이를 먹도록 해외에서 열흘 이상 머물러 본 적도 없는 내가, 난생 가 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 8개월도 넘게 머무를 계획으로 떠나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겠다고 본 영화는 공교롭게도 ‘퍼스트맨’이었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개인사를 다룬 영화인데, 달로 떠나는 닐 암스트롱의 마음이나 외국으로 떠나는 나의 마음이나 매한가지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도리어 마음이 더 울적해지고 말았다. (유튜버 발없는새가 매우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이 영화는 달착륙으로 거대하게 도약한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게 한 걸음을 내딛은 한 인간에 대한 ..
1. 명색이 경제사를 공부한답시고 깝치고 다니지만 경제에 대한 내 앎의 깊이는 끔찍한 수준이다. 경제 전반적으로 다 문제인데, 그 중에서도 주식이라는 것이 특히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언젠가 증권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붙들고, 아니 어째서 주식 시장이라는 것이 가능한 거냐고, 주식회사가 자본금 확보를 위해 발행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증권이 어째서 회사의 운영상황과 연동돼서 가격이 오르내리는지, 어떤 순간에는 기업의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이 주식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불균형 때문만으로 가격이 오르내리기도 하는데 어째서 그게 기업의 경영상황을 반영하는 거냐고, 기초 중의 기초 같은 질문을 마구 던진 적도 있다. 물론 그 때 내게 돌아온 것은, 뭐 그런 당연한 거를 굳이 물어보고 그래... 하는 차가운 ..
0. 읽는다고는 읽었고, 인상적인 부분에 밑줄도 그어뒀지만 글로 추려낼 정도로 감상이 정리되지는(혹은 내용이 이해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이렇게 어려운 텍스트였던가?!) 남자로서, 경상도 출신으로서, 이성애자로서, 한국에서는 명백히 다수자의 범주 안에서 평안히 살았던 내가 외국생활 꼴랑 몇 주 했답시고 (충분히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소수자가 어쩌고 이방인이 저쩌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도 정말 꼴불견이다. 일단 밑줄 그은 부분만 정리해두고 다음에 시간이 될 때 종이책으로 한번 더 읽어야겠다. 아마 연말쯤에 재독할 것 같고, 재독하는대로 업데이트하기로 다짐한다. (2024.9. 재독) 아마 이 책의 독자가 가장 많이 가질 의문은 '무조건적인 환대가 과연 가능한가?'일 겁니다. ..
이번에도 제목은 '달리기 근황'이지만 실제로는 걷기 이야기. 입국한 날을 제외하면 7월 4일로 유럽에 온지 꼭 100일째가 됐다. 아이폰 '건강' 앱에 따르면 지난 100일 동안의 총 걸음수는 1,520,388. 하루 평균 15,204. 대략 15,000걸음 정도에 평균이 맞춰지고 있다.
누구도 속시원히 답해주지 않는 사소한 질문에 답하는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잡글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이에 관해서 미리 꼭 말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해석문제는 여전히 이견의 여지가 많은 문제라는 점입니다. 앞의 글에서 제가 “역사학계의 정설定說”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역사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완전히 통일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꼭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차이로만 이해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해석 문제가 대체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과 100%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커피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었지만 자료를 모두 한국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바람에 이를 어쩌나 하고 어리버리 하고 있다가 생각난 주제, 남북관계 한창 좋을 때 물들어온 김에 노젓는 마음으로 잡은 주제, 오늘은 이른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이 기사부터 읽어보시죠. [조선일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뺀 교과서 집필진의 이상한 해명 한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후 유엔이 결의안을 통해 남한정부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역사학계에서는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도 이 내용을 자꾸 빼려고 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신문기사나 칼럼, 사설..
어쩌다 잠시 프랑스에 갈 일이 있었고, 잠시 짬이 나길래 혹시나 싶어서 파리의 십자수 가게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꽤 유명한 가게가 하나 나온다. 간판에는 그냥 'Sajou'라고 되어 있지만 구글 지도에는 'Maison Sajou'라고 나온다. 파리를 여행하는 십자수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것 같고, 한국 웹에서도 관련된 글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십자수 키트 뿐만 아니라 오거나이저나 실패 같은 주변용품도 꽤 많고 기성품 악세사리도 이것저것 많은 편. 특히 가위 같은 건 장식이 화려한 고급품이 많아서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끝이 뾰족한 가위를 정말 싫어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덥썩 살 뻔 했다. (공항 수하물 검사에서 귀찮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쫄보 근성도 좀 작용했고.) 뭐 암튼 그러하..